블로그 분투기

SNS 세계에도 서열과 계급이 존재한다. 어렵게 출간한 책을 홍보할 창구를 찾던 소규모 출판사 대표가 인생 역전의 순진한 희망을 품고 소셜 미디어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나는 SNS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인물이었다. 생업의 영역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뒤늦게 블로그에 절박해진 건, 20년 가까이 해오던 잡지기자 생활을 접고 단출한 출판사를 차린 후부터다. 책을 알릴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수개월간 밤잠 설쳐가며 만든 책은 출간한 지 보름 만에 서점 매대에서 사라졌다. 호기롭게 진행하던 월 40만~70만원짜리 서점 광고마저 거두자 우리 책은 구석진 책꽂이로 옮겨졌고, 아무도 그 표지를 살필 수 없게 됐다. 소규모 출판의 비애를 각오 못한 건 아니지만 눈물이 났다. 작가들에게도 미안했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더 만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그때 자신을 ‘파워블로거’라고 소개하던 후배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더랬다. 어여쁜 사진 몇 장을 나열하고 간질거리는 문장 몇 개를 박아 넣은 그의 포스트를 보기 위해 하루 수백 명의 네티즌이 들락거린다는 사실이 정말 의아했다. 최신 기종 카메라를 협찬 받고, 대기업의 해외 이벤트에 연거푸 초대되고 줄줄이 ‘파워’를 자랑하던 녀석에게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라며 나는 짧게 당부했다. 새삼스레 후배의 블로그를 클릭해봤다. 불과 2시간 만에 방문자 수가 520명! 하루 100명만 우리 출판사 블로그를 방문해줘도 바랄 게 없겠다고 푸념하던 시절, 그의 블로그를 구독 중인 팔로워는 9,500명이 넘었다.

반성했다. 곧장 출판사 블로그의 대문 사진부터 갈아치웠다. 포스팅 ‘꺼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출판과 관련된 이슈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결국 카페부터 공연장까지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단골집과 두텁게 쌓은 해외여행 정보들을 담기 시작했다. 물론 포스트마다 우리가 출간한 책 표지를 노출시키고, 텍스트 안에 출판사 이름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곧 깨알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하루 50명 남짓 다녀가던 블로그는 반년 만에 평균 500명 이상의 방문 횟수를 기록했다. 운영 노하우를 묻는 이웃도 생겼다. 귀띔하자면 꾸준한 업데이트와 포스팅 시간대, 그리고 적절한 검색어를 태그로 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테면 <꽃보다 청춘>이 끝나가는 시각에 맞춰 라오스 여행기를 포스팅하며 제목을 ‘<꽃보다 청춘>이 다녀간 그곳, 루앙프라방’ 정도로 달아주는 센스 말이다. 방문자 수 1,000명을 처음 넘어선 그날, 나는 거의 모든 지인에게 늦둥이라도 낳은 듯 자랑을 했다.

난데없는 메시지들이 날아오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다. SNS를 활용한 바이럴 마케팅이 판을 치는 세상인지라, 운영 초반부터 블로그를 상업적 용도로 구입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쪽지를 받긴 했다. 그런데 처음엔 2만~3만원 수준이던 임대 비용을 월 50만원까지 쳐주겠다는 업자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출판사 사무실 운영비를 뽑겠다는 씁쓸한 농담이 오갔지만, 냉큼 그 메일을 지워버리긴 힘들었다. 이미 작성된 원고와 사진을 그대로 올려만 주면 대가를 ‘다섯 장 더’ 쳐주겠다는 인터넷 홍보 회사의 선정적인 포섭도 들어왔다. 급기야 배너 광고를 부탁하는 사설 복지 단체의 진중한 메일까지 받고 보니 이러다 파워블로거가 되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디지털 시대는 SNS 패셔니스타와 SNS 뷰티 카운슬러를 탄생시켰다. 동시에 누군가를 ‘블로거지’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블로거들은 늘고 있지만, 모두가 성공적인 결과를 얻진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맛집을 권하고 여행 정보를 나열하는 인기 포스트가 과연 출판사를 알리고 책을 홍보하는 데 얼마나 효율적이었을진 의문이다. 블로그 자체가 하나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정도다. 대신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 미래의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업에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중독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상업적인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SNS가 존재하는 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계속된다. 요즘 나는 인스타그램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