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니키 리의 별난 집

니키 리는 본래 방 세 개 구조의 공간을 방 한 개와 큰 거실로 개조했다. 실제 평수에 비해 개방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니키 리는 본래 방 세 개 구조의 공간을 방 한 개와 큰 거실로 개조했다. 실제 평수에 비해 개방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무심한 콘크리트에 페미닌한 소품으로 임팩트를 주듯 실내를 꾸몄다.

무심한 콘크리트에 페미닌한 소품으로 임팩트를 주듯 실내를 꾸몄다.

본래 3층 벽돌집이었던 건물은 일부 외관만 남긴 채 모던한 콘크리트-나무 집으로 재탄생했다.

본래 3층 벽돌집이었던 건물은 일부 외관만 남긴 채 모던한 콘크리트-나무 집으로 재탄생했다.

콘크리트 벽에 꽃이 피었다. 아티스트 니키 리의 집엔 의외의 조합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태원 언덕 마을, 스모키하지만 로맨틱한 아티스트의 다소 별난 집.

니키 리는 한때 뉴욕 히피들과 살았다. 한동안은 여고생들 틈에서 놀았고, 또 한때는 동성애자들과 함께 클럽을 누볐다. 2001년 발표된 그녀의 초기 작품 <프로젝트(Projects)> 연작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성격의 특정 무리들과 섞여 살며 사진을 찍어 완성한 이 작품들은 다수의 ‘니키 리들(s)’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히피인 동시에 여고생이었고, 대범한 클럽의 댄서가 됐다가도 전형적인 관광객의 모습으로 도시를 떠돌았다. 자유분방함 속에 단단한 에고가 느껴지는 행보였다. 그리고 지금 니키 리는 이태원에 산다. 주요 활동 무대였던 뉴욕에서 한국으로 들어온지 5년, 두 번의 ‘주상복합 라이프’를 마치고 언덕 마을에 집을 지었다. 주소는 이태원이지만 해거름 녘이면 어김없이 된장찌개 냄새가 흘러나올 것 같은 주택가 한복판이며, 테라스 한쪽에는 소나무 한 그루도 심어놓았다. “제 작품을 보고 다들 저를 그저 자유롭게 살 거라 생각해요. 근데 전 매우 규칙적인 사람이에요. 작업을 할 때도 점심 먹고 1시에 자리에 앉아서 6시까지 딱 하고 손 떼요. 보세요.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살잖아요.(웃음)” 경리단 메인 길에서 급경사의 골목을 걸어 5분쯤. 니키 리의 집은 경사를 등에 업은 코너에 있다. 북적이는 이태원, 경리단과는 달리 좌우 어딜 봐도 평범한 주택들뿐인 조용한 동네고, 야단법석인 장식 하나 없는 깔끔한 콘크리트 집이다. “한국에 들어와 처음 가져본 단독주택이에요. 작년엔 이 집 짓느라 거의 아무 것도 못한 것 같아요.” 본래 3층 벽돌집이었던 걸 거의 허물고 다시 짓다시피 한 이 집의 외관은 건축 사무소 매니페스토의 이상화 소장이 디자인했고, 구조는 그녀의 남편이 짰다. 물론 그 외 전체적인 장식과 치장은 니키 리의 역할이었다.

에스닉한 기분을 내주는 쿠션은 아르헨티나 여행 중 구입한 물건.

에스닉한 기분을 내주는 쿠션은 아르헨티나 여행 중 구입한 물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긴 복도식 주방. 주로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의 공간이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긴 복도식 주방. 주로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의 공간이다.

뉴욕에서 서울로 활동 거점을 옮긴 니키 리는 요즘 직접 연출할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뉴욕에서 서울로 활동 거점을 옮긴 니키 리는 요즘 직접 연출할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니키 리의 이 서울 집은 구조가 제멋대로다. 그녀는 4층으로 올린 이 집의 2층에 사는데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기다란 복도식의 주방이 나타난다. 그리고 너른 거실이, 그와는 완전히 독립된 공간에 침실과 옷방, 샤워 부스와 화장실이 있다. “저나 남편이나 어딘가에 얽매이진 않는 사람들이라서요. 정말 우리 필요한 대로, 평소 집에서의 동선을 생각하면서 짠 거죠.” 평소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자주 열기에 거실은 원래 방이었던 곳까지 공간을 넓혀 확장했고, 그 앞엔 나무 바닥의 테라스를 만들었다. 부부 둘 다 새벽 3시는 되어야 잠을 자기에 침실은 침대 두 개를 붙여 놓아 꽉 채웠으며 짙은 브라운 컬러의 커튼으로 잡광을 가렸다. “거실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남편이랑 같이 영화도 보고, 테이블에 앉아 작업도 하고요.” 그렇게 용도 위주로, 빤한 관습이나 겉치레 없이 집을 꾸미다 보니 좀 난감해 보이는 공간도 생겼다. 이 집엔 화장실에 문이 없기 때문이다. 침실 옆 움푹하게 파인 벽 안에 변기가 덜렁 놓여 있다. “생각해보면 좀 그렇죠? 근데 손님이 그렇게 많이 왔지만 누구 하나 클레임 거는 사람은 없었어요.(웃음)” 3층과 4층을 복층 구조로 합친 뒤 절반으로 나눠 두 유닛으로 꾸민 설계도 흔한 방식은 아니다. “두 유닛 모두 3층과 4층을 쓸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침실에 테라스를 만들었고요. 혼자지만 오피스텔 같이 답답한 집엔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에게 좋아요.” 그러니까 본래 위아래로 나뉘어 있던 공간을 좌우로 나눠 보통 주택에선 갖지 못하는 높은 천장의 공간감을 확보했다. 옥상엔 나무 데크의 너른 공간이 있고 그곳에선 N서울타워와 서울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다소 알쏭달쏭한 구조의 집이지만 필요한 개방감은 적재적소에 모두 갖춘 셈이다.

팬시하게 정리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의자도 제각각으로 갖다놓았다.

팬시하게 정리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의자도 제각각으로 갖다놓았다.

거의 1년 동안 모든 일에서 손을 떼다시피 하며 완성한 집이지만 니키 리는 인테리어에 무심하다. 애써 장식하거나 유명 브랜드의 물건을 가져와 치장하려 한 구석이 거의 없다. 거실의 테이블은 장민승 작가의 작품이지만 거기에 함께 놓인 의자들은 카르텔의 고스트 체어와 이름 모를 싸구려들이 뒤섞여 있고, 하늘하늘한 꽃잎을 닮은 천장의 조명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신혼집의 가구를 디자인한 케네스 코본푸(Kenneth Cobonpue)의 것이지만 바닥에 깔린 카펫은 오래전 친척이 중동에서 사와 창고에 넣어두었던 걸 니키 리가 들고 온 것이다. 심지어 주방 복도에는 80년대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했을 법한 자개 화장대의 거울 파트가 덜렁 걸려 있다. “아버지 집 창고에 갔는데 있더라고요. 그냥 제가 가지고 왔어요.” 니키 리는 장식품을 거의 사지 않는다. 대부분의 소품들은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이거나 우연히 손에 넣은 것들이다. “본래 팬시하게 정리된, 꾸며진 것들 안 좋아해요. 향초 같은 것도 사본 적이 없어요. 저나 남편이나 게토, 네이버(Neighbor) 느낌 그대로인 게 더 재밌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취향인 건 당연히 아니다. 니키 리의 이 이태원 집에는 스모키한 아늑함이 느껴진다. 콘크리트로 페인트칠을 한 벽을 비롯해 대부분 무채색이거나 어두운 톤의 컬러가 실내를 감싸고 있고, 펠트 천의 소품, 보 컨셉(Bo Concept)의 푸짐한 소파, 아르헨티나에서 사온 포대 자루 질감의 쿠션들이 곳곳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사실 취향이란 게 보여주는 건 다 자기 능력 안에서, 가진 돈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잖아요. 제가 정말 돈이 아주 많았다면 마이애미 같은 느낌으로 꾸몄을 거예요. 톰 포드 매장 같은 집으로 가꾸고 싶은 맘도 있고요.(웃음) 행복이 가득한 집이 아니라 퇴폐가 가득한 집인가요?” 확실히 니키 리의 집엔 TV 연속극에서 보던 싱그러운 가정집의 분위기는 없다. 하지만 이곳엔 웬만한 집에선 구경하기 힘든 아티스트의 무드가 있다.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서의 집, 혹은 니키 리가 지금 각색 중이라는 멜로 영화의 시나리오 속 집 같은 것 말이다. 확실히 언젠가 초대받아 함께 파티를 하고 싶어지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