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향을 찾아서

세계적인 퍼퓨머리 아닉 구딸이 제주를 한 병의 향수에 담았다. 녹차의 싱그러움, 감귤의 상쾌함, 우아한 오스만투스가 어우러지며 제주 바람의 자유로움과 서정적인 부드러움을 표현한 아닉 구딸의 전속 조향사, 까밀 구딸을 만났다.

VOGUE KOREA(이하 VK) 제주를 여행하고 그 향을 ‘릴 오떼’란 향수로 만들다니 정말 멋져요!

CAMILLE GOUTAL(이하 CG) 이사벨 도엔(아닉 구딸의 파트너 조향사)과 재작년 10월, 3일 정도 제주도에 머물렀어요. 차를 모티브로 한 향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는데,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작은 조각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죠. 그러던 중 제주도를 만났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고 구름도 잔뜩 껴 있었는데 그 자체로 좋았어요. 그 멜랑콜리한 날씨와 거친 바람! 그걸 향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처음 감귤 밭을 봤을 때도 놀랐죠. ‘제주도에 감귤이 있었어?’ 그리고 박물관에 갔더니 커다란 오스만투스 나무가 있었어요. 큰 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 있었는데 향이 굉장히 좋았어요. 새로운 향수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싶었죠. ‘릴 오떼’는 그렇게 진행됐어요. 제주도에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고,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제 마음속에 무언가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았죠. 제주도는 특별한 곳이에요.

VK 아닉 구딸에 녹차를 이용한 다른 향수가 있나요?

CG 아니요. 처음이에요. ‘릴 오떼’ 노트에 해당하는 시향 보틀을 가지고 왔는데 맡아보시겠어요?(검정 리본으로 묶인 베이지색 상자에서 세 개의 병을 꺼냈다. 첫 번째 병에 시향지를 담갔다 꺼내줬다.)

VK 녹차네요. 은은하고 상쾌해요.

CG 놀랍게도 실론티 추출물이에요. 녹차 추출물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걸 발견했죠. 정말 놀랐어요. 마실 때는 향이 전혀 다른데 추출물 향은 녹차예요. 이건 귤 향입니다. 제주도에서 귤을 먹어보니 프랑스 귤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보통은 상쾌한 향을 위해 베르가모트, 레몬, 오렌지를 이용하는데, 귤 향은 더 부드럽지요. 첫 향은 푸른 느낌인데 점점 더 은은해지면서 과일 향이 나요. 마지막은 오스만투스. 동물적인 향이 나면서도 살구 향도 나죠. 마른 살구요.

VK 제주도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CG 바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강렬한 느낌마저 들었죠. 제게 해안 시골 마을에서 키우는 ‘티아나’란 이름의 검정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말을 타고 달리면 바람이 많이 불거든요. 그럼 저는 행복해서 환호성을 질러요. 바람은 저에게 자유로움 같아요.

VK 저는 이 향에서 피곤할 때 시원한 그린티를 한잔 건네줄 것 같은 친절한 여성이 떠올랐어요. 좋은 향이네요. 이 향을 여자로 표현한다면 어떤 여자일까요?

CG 오늘날 여자들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잖아요. 커리어우먼인 동시에 주부이자, 엄마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도 젊고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 해요. 때문에 향수를 한 명의 여성으로 규정 짓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이 향수에 담고 싶었던 느낌은 안정감이었어요. 향에 담긴 자연을 통해 생명력과 활기를 얻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고민 없이 뿌릴 수 있는 편안한 향기. 너무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면서도 존재감이 있죠.

VK 원래 조향사가 꿈이었나요?

CG 전혀. 열네 살이 됐을 때 카메라를 사달라고 했어요. 사진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프랑스 <보그>에서 패션쇼 담당으로 일하기도 했어요. 제 사진이 잡지 한 면을 채울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제가 회사를 맡아야겠다 결심했죠. 향수를 항상 좋아했지만 직업이 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VK 조향사는 정적이고 섬세한 느낌인데, 사진가로 활동하다가 답답하지 않 았어요?

CG 조향사는 아주 역동적인 직업이에요. 하루 중 연구실에는 1/3 정도만 머물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야 하죠. 마케팅 회의, 조향사 미팅, 출장도 많고요.

VK 제주도처럼 향을 찾는 여행을 종종 하나요?

CG 여행은 많이 다니지만 목적이 있다기보다 여행 자체를 즐기는 편이에요. 그렇게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VK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CG 프렌치 폴리네시아! 두 번 다녀왔고 세 번째 여행을 계획 중이에요. 멀긴 하지만 바닐라밭도 보고 싶고, 이번엔 ‘티아레 아페타히’라는 세상에서 오직 그 지역 산꼭대기에서만 서식하는 꽃을 보러 갈 거예요. 하지만 끔찍할 거예요! 산을 오르는 데 8시간이나 걸린대요. 4시간은 아주 가파른 길을 걸어야 하고요. 저는 말만 타지 평소 운동을 안 해서 체력이 약하거든요.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VK 조향사는 역동적인 직업이 맞네요. 꽃을 찾아 8시간이나 산을 오른다니! 아트 스쿨도 다녔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주로 영감을 얻나요?

CG “항상 우리가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흥미로울 수 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전 그걸 행동에 옮기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어 친구들이 “너는 일이 너무 많아”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작 제가 박물관에 가자, 영화 보러 가자,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너무 피곤해서 못 가겠어, 시간이 없어”라고 하죠. 저도 피곤해요. 그렇지만 저는 살면서 최대한 삶을 누리며 살고 싶어요. 삶은 짧잖아요.

VK 알면서도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해요. 습관적으로 삶이 매일 똑같고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말해요.

CG 물론 시간이 필요하고 피곤하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가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끝에 있는 레스토랑을 굳이 찾아가기도 하죠. 막상 가면 재미있고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걸 알아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예요. 조금 더 마음을 열기만 하면 돼요. 누구나 정신없는 일상을 살고 있는 건 똑같잖아요.

VK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뭔가요?

CG ‘송쥬(Songe)’. 제가 만든 향수인데 해질녘의 꽃을 모티브로 삼았죠. 열대지방 꽃이 지닌 태양과 뜨거운 열기, 동시에 해질녘의 느낌을 담는 게 까다로웠어요. 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예요. 마법 같거든요. 해가 뜰 때는 그날의 새로운 가능성이 가득한 느낌이고, 해가 질 때는 신비로운 일이 시작될 것 같죠. 특히 해가 지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자기를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레어 섬에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죠. 한겨울인데 한밤중에 수영을 하러 가기도 하고요. 뭔가 색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죠.

VK 향수 초심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CG 가벼운 향수로 시작하세요. 처음에는 오 드 퍼퓸보다는 오 드 뚜왈렛을 구입하는 게 좋고요. 저도 송쥬를 항상 뿌리지만 지하철을 탈 때 너무 강한 향을 내고 싶지 않으면 ‘네롤리’를 써요. ‘쁘띠뜨 쉐리’도 시작하기에 좋은 향수예요. 몸에 직접 뿌리는 게 싫다면 빗에 향수를 뿌려 머리카락에서 살짝 향기가 나게 할 수도 있어요. 향은 은은할수록 더 우아한 느낌을 주죠. 진한 향을 좋아한다면 손수건이나 티슈에 뿌려 목에 살짝 묻혀요. 그러면 적당히 향을 낼 수 있어요.

VK 향수를 시작하는 나이는 언제가 좋을까요?

CG 열다섯 살쯤? 소녀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여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화장을 하고 향수도 뿌리고 싶어 하죠. 남자애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향수를 고를 줄 몰라서 처음엔 너무 지독한 향수를 뿌리기도 해요.

VK 딸이 둘 있죠? 딸아이들은 어때요?

CG 흥미로운 점은 청소년들은 향수를 액세서리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패션 향수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트렌디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성인이 되면 다른 사람과 다르고 싶어 패션 향수를 졸업하죠.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될수록 다른 사람을 따라 하지 않게 되잖아요. 그런 변화를 보면 재미있어요. 제 딸들은 다행히 아닉 구딸을 써요. 큰딸 밀라는 ‘오 드 샬롯뜨’를 정말 좋아해요. 딸 친구들도 다 ‘쁘띠뜨 쉐리’를 쓴다며 자랑스러워하죠. 막내딸은 ‘바니유 엑스키즈’를 좋아해요.

VK 아닉 구딸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셀러브리티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요?

CG 너무 많네요. 바네사 파라디 아시죠? 저와 나이도 같고 아이들 나이도 비슷한데, 향수도 저랑 같은 ‘송쥬’를 사용하죠.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오드아드리앙’을 수년간 사용했던 것도 굉장한 자부심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