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골동 원단점

좀이 슬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초라하게 색이 바랜 구닥다리 천 조각? No!
디자이너들은 요즘 세상에선 볼 수 없는 고풍스러운 앤티크 원단의 매력에 사로잡혀 있다.

톰 브라운은 2014 가을 컬렉션의 모든 것은 1930년대 제작된 진짜 빈티지 골드 라메 원단을 발견했을 때 시작됐다고 말했다. “요즘 만들어지는 합성 소재로는 그런 데카당스(퇴폐미)를 절대 표현할 수 없죠.” 지난겨울, 그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가져온 쇼피스 중에 그 빈티지 원단으로 만든 의상이 있었다. 갑옷처럼 빳빳하게 형태를 잡아 재단한 그 옷은 마치 디스코볼처럼 사방의 조명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는데, 마치 금판을 아주 얇게 가공해서 만든 고대 황금상자 같은 섬세함과 호화로운 우아함이 느껴졌다.

매장에 설치할 빈티지 가구까지 직접 고르는 디자이너 톰 브라운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일. 그러나 올봄 컬렉션은 이것이 작지만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유럽 버전의 <화양연화>라 할 만한 프라다 컬렉션을 보자. 연보라색 모래산 옆으로 걸어 나온 프라다의 ‘수 리첸(영화 <화양연화> 속 여주인공 이름)’들은 톤 다운된 피치, 라임, 연한 풀색의 섬세한 브로케이드 천으로 몸을 타이트하게 감싸고 있었다. 미우치아 여사는 이 컬렉션을 위해 총 30여 가지 브로케이드 원단을 특별 제작했는데, 180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직조된 자카드와 브로케이드 원단을 똑같이 복제해 만든 것이었다. “전부 주문 제작했습니다. 정확히 이탈리아 코모 지역에 있는 실크 직조 공장에서 만들었죠.” 프라다 여사는 오래된 옛날천에 집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장인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손으로 짠 원단뿐 아니라 가구에도 깃들어 있는, 그러나 곧 영원히 사라질 정신이죠. 오늘날 우리는 예전에 가능했던 것과 정반대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으니까요.” 사라 버튼에게 영감을 준 것은 맥퀸의 어시스턴트로 막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일본 출장에서 사 모은 빈티지 기모노 컬렉션이다. “리(맥퀸)와 함께 일하면서 일본을 자주 방문했었죠. 갈 때마다 굉장한 원단 제작자들을 만났고, 그때부터 빈티지 기모노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원단 제작자에게 그동안 모아온 기모노 천을 재현해달라고 의뢰했다. 원단은 아주 얇은 오간자 실크에 정교하게 자수를 놓은 전통적인 것부터 뱀피와 가죽 조각을 이어 붙여 벚꽃 문양을 형상화한 응용 버전까지, 다채로운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그녀가 오래된 기모노에서 발견한 ‘포인트’는 이런 것이다. “수공예죠. 겉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안쪽까지 디테일을 꼼꼼하게 고려해서 결합한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거나, 혹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미의 기준이 남아 있는 것들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독특한 빈티지 원단에 의지하는 디자이너들의 의상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막스 오스터바이스와 에린 비티가 디자인하는 수노처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카테리나 가타도 최근까지 1980~90년대 디자이너 의상의 원단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완성해왔다. 발렌티노, 이브 생 로랑, 지아니 베르사체, 지방시, 발렌티노 등등. “원단은 각기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가타는 1970년대 YSL 녹색 드레스를 발견하거나, 10벌의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원단 30야드를 구하기도 했지만(물론 그녀는 보물 같은 원단을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만들 수 있는 양은 언제나 한정적이다. 뉴욕의 앤티크 텍스타일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 티티 할레(Titi Halle)는 이렇게 표현한다. “앤티크 가구와 똑같죠. 앤티크 상점에 가서 “이 의자로 10개 주문할게요”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디자이너들은 원단을 어디서 구하는 걸까? 누구 하나 시원스레 밝힌 적은 없지만, 뉴욕이나 파리 같은 패션의 도시 곳곳에는 빈티지 텍스타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숨은 보석 같은 곳들이 있다. 티티 할레가 설립자의 뒤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코라 긴스버그(Cora Ginsburg)’의 주 고객은 박물관 큐레이터들. 비밀스러운 부티크 같은 이 작은 회사는 박물관 소장품 수준의 18~19세기 의상과 17~20세기 유럽 자수, 실크와 프린트 원단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원단 회사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의 대표 패트릭 프레이는 파리 자콥 거리에 위치한 앤티크 상점 ‘메종 코모글리오’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데, 숍에서 발견한 앤티크 패브릭을 똑같이 복제해서 코모글리오라는 이름의 소규모 컬렉션을 출시한 적도 있다. 디자이너 다미르 도마는 매 시즌 컬렉션을 위해 대부분의 원단을 주문 제작하고 있다. 고객들이 원단 때문에 자신의 레이블을 찾는다고 생각할 정도. 질 좋은 원단이 옷의 완성도나 가치를 높인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전 더 이상 프리미에 비종에 가지 않아요.” 9월에 열리는 박람회에서 원단을 선택할 경우 다음 패션 위크 기간에 맞춰 컬렉션을 완성하기엔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 대신 자신만의 원단을 직조하기 위해 믿을 만한 몇몇 원단 제조업체의 아카이브를 뒤진다. “귀중한 수집물이죠. 특히 요즘 시장에서는 절대 만들지 않는 것들을 발견하는 게 흥미로워요. 그건 가장 창의적인 것들이고, 전 그걸 한 단계 발전시켜 제작하게 합니다.”

무슈 생 로랑의 아카이브를 충실하고 꾸준하게 재해석하고 있는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컬렉션은 언제나 LA나 런던의 중고 옷가게를 뒤져 발견한 것들로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패션계로 복귀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난 항상 옷이 낡은 걸 좋아해요. 내가 직접 고쳐 입어야 하는 빈티지 옷들도 좋아하죠. 특히 LA는 빈티지를 구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에요.” 슬리먼 못지않게 컬렉션 설명에 인색한 피비 파일로도 봄 컬렉션의 구식 꽃무늬 옷에 대한 질문에 미소와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포근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수집할 만한 어떤 것처럼 느껴지길 원했죠.” 패션계의 1년은 수많은 시즌으로 쪼개지고, 그렇게 쪼개진 수많은 컬렉션은 감상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숨 가쁘게 사라진다. 옛날 방식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패션도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사치인 시간에 승부를 걸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