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천재와 여배우의 남다른 우정

천재라 불리는 디자이너와 매혹적인 여배우의 남다른 우정.
패션계 소문난 절친,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제니퍼 코넬리의 끈끈한 우정은 남다르다.

열네 살 소년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가 84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매력적인 소녀를 연기한 열다섯 살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이 아역 배우 출신 할리우드 스타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8년 후, 두 사람은 각각 패션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디자이너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처음 만났다. 물론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셀러브리티에게 레드 카펫 드레스를 만들어주며 친분을 과시하는 건 흔한 관례.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후 10년 이상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니콜라와 저는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둘 다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죠.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클래식과 파격, 새로운 것과 보수적인 것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을 조화시키는 것을 좋아하고요. 그래서인지 니콜라의 옷을 입고 있으면 몹시 편안한 기분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니퍼는 니콜라를 향한 무한 신뢰와 애정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루이 비통의 모든 쇼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물론, 최근작 <노아>의 시사회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와 자선 파티 등 행사에 참석할 때도 언제나 니콜라의 옷을 선택한다. 그녀야말로 루이 비통의 대표적인 뮤즈! 그런 제니퍼가 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 모델이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 세 명의 세계적인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 유르겐 텔러, 브루스 웨버와 함께한 이번 캠페인에는 세 아티스트가 각기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 루이 비통의 봄과 여름이 담겨 있다. 특히 마이애미에서 브루스 웨버의 카메라 앞에 선 제니퍼의 모습은 루이 비통 레이디 그 자체였다. 로스앤젤레스 샤토 마몽 호텔에서 캠페인 촬영을 마친 제니퍼와 니콜라를 <보그 코리아>가 만났다. 따스한 캘리포니아의 햇볕 아래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VOGUE KOREA(이하 VK) 두 사람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JENNIFER CONNELLY(이하 JC)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2002년이었죠. 당시 저는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는데 시상식에 입을 드레스를 찾고 있었어요. 온갖 드레스들을 놓고 고민하던 중, 니콜라를 만나게 됐죠.

NICOLAS GHESQUIÈRE(이하 NG)욕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물론 저는 어린 시절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를 본 이후부터 제니퍼의 팬이었지요.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모두 챙겨 봤으니까요. 특히 <레퀴엠> 같은 작품을 좋아했죠. 그녀와 약속을 잡고 만나는 순간까지 무척 설렜는데, 처음 보는 순간 마치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졌어요.

 

VK 두 사람의 관계는 전형적인 디자이너와 여배우의 관계와는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NG 그럴 수밖에요! 우리는 만난 순간부터 바로 가까워졌으니까요. 시상식을 위한 드레스를 함께 고르면서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고, 서로 말이 통한다고 느꼈죠. 단순히 디자이너와 배우의 관계를 넘어선 무언가가 우리 사이에 공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점에서도 패션은 정말 흥미로워요. 서로 공유하는 가치를 통해 강력한 연결 고리를 탄생시키고 관계를 풍성하
게 만들어주니까요. 드레스를 입는 것에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그저 단순한 행위가 아니죠. 제가 아무리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었다 해도, 그것에 딱 맞는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를 만난 순간 ‘누가 내 작품을 완벽하게 구체화해줄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어요. 솔직히 제니퍼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대부분 셀러브리티들은 본인이 입을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에게 관심조차 없거든요. 레드 카펫 드레스를 위해 만나서 논의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스스로가 아주 자랑스럽게 느껴졌죠.

JC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오스카 시상식은 배우에게 있어 정말 특별한 순간입니다. 니콜라 특유의 미적 감각과 그의 드레스를 입은 제 모습을 통해 특별한 아름다움을 표현해내려는 그만의 방식에 감탄했어요. 저 역시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생각을 나눈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맞아요! 우리는 그 드레스를 계기로 친구가 된 겁니다. 니콜라의 작품을 봤을 때 당연히 진짜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진실하고 순수한 요소 말이에요. 클래식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것 같은 흥미로운 조합이었죠. 완전히 새로운 것이지만 동시에 무언가 익숙한 편안함이 있었어요. 남과 다른 대담한 행동이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우리 두 사람은 닮은 것 같아요.

 

VK 니콜라를 만난 이후 제니퍼의 스타일이 변화했나요? 그의 디자인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하나요?

JC 물론이죠! 이렇게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선물이었어요. 니콜라와 함께하면 좀더 자유로워진 저를 느낄 수 있죠. 제 실제 삶과 공식 행사에 참여해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배우의 삶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의 옷을 입으면 언제 어디서든 한결같이 편안하죠. 세상에 나를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느낌입니다. 이건 순전히 니콜라 덕분이죠. 우리의 우정 덕분이기도 하고요. 니콜라는 분명 제 스타일에 영향을 줬어요. 저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도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도와줍니다. 내면의 틀을 유지하면서 변신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죠. 그 어려운 균형을 항상 지켜내는 것이 놀라울 뿐이에요. 익숙함 속에서 그동안 숨겨졌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 말이에요.

NG 제니퍼가 정확하게 표현했어요. 항상 그런 부분에 관해 고민하고 있죠.

JC 저는 그런 고민의 과정이 좋아요! 창의성과 디테일에 대한 칼날같은 집중! 니콜라의 디자인은 매우 정교한 데다, 니콜라는 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그 시험에 제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죠.

VK 한계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볼까요? 루이 비통에서의 최근 컬렉션은 이전만큼 충격적이지 않았어요.

NG 한동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디자이너의 사명이라 생각했습니다. 늘 제 한계를 시험했죠. 그런데 최근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한계 밖이 아니라 오히려 한계 안에서 작업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친숙하고 가까이할 수 있는, 이전부터 알고 있고 입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옷을 만드는 일이죠. 하지만 직접 입어보면 새로움, 이국적인 요소, 일종의 ‘주느세콰(je ne sais quoi,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은 것)’에 이끌리는 그런 옷을 만들고 싶습니다. 예전엔 새로운 실험을 즐겼고, 또 언제든 그때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이런 작업 방식이 더 흥미로워요. 오랫동안 실험적인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죠. 물론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그것 말고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답니다.

 

VK 제니퍼는 니콜라가 실험적이던 시절, 즉 발렌시아가 시절에도 뮤즈였고, 이제는 루이 비통의 뮤즈입니다. 같은 사람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어떤가요?

JC 마치 친구 관계가 우여곡절을 거쳐 점차 진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 만남은 우연의 결과로 이뤄져 “이렇게 해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래, 그거 재미있겠네!” 식의 대화를 했다면, 이번엔 좀더 심사숙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보다 성숙해진 것처럼 말이죠.

NG 맞아요. 예전에는 단순한 비주얼 프로젝트에 그쳤죠. 루이 비통에서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젝트가 있는데, 제니퍼처럼 저를 진짜 잘 아는 친구가 함께할 수 있어 무척 다행입니다. 그녀는 옷이 가진 심미적 측면을 잘 이해하고 현실에서 그 옷을 아주 잘 활용하는 친구니까요. 어떤 브랜드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기 위해 주어진 옷을 입기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실성이 담긴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2015 S/S 루이 비통(Louis Vuitton).

VK 이번 시즌 광고 캠페인에 참여한 세 명의 사진가 중에서 특히 브루스 웨버와 제니퍼가 함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NG 브루스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굉장히 감각적인 아티스트입니다. 모든 이미지에 시대를 초월하는 느낌을 부여하죠. 화려하면서도 현실적인 그의 이야기 방식을 좋아해요. 브루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동시에 그 이야기 속에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하죠. 아마 이렇게 시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사진가는 브루스밖에 없을 거예요. 제니퍼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두 사람이 한 번도 함께 작업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JC 네, 맞아요. 오래 전부터 브루스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함께 일할 기회는 생기지 않았죠.

NG 제니퍼와 브루스의 만남! 제가 늘 꿈꾸던 조합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 만남을 성사시켜주고 또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즐거웠죠. 제가 틀을 짜긴 했지만, 이후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는 제니퍼와 브루스의 몫이었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것이 된 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건 특별한 경험입니다. 제 이야기가 다른 아티스트들에 의해 어떻게 진화돼가는지 지켜보는 거죠. 결과는 어땠냐고요? 사진 속 제니퍼가 봄 컬렉션 룩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니퍼는 신비로운 묘령의 여인처럼 나왔어요. 브루스 특유의 시적인 이미지와 무척 잘 어울렸죠.

JC 브루스는 니콜라의 컬렉션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비밀스러우면서도 친숙함을 잘 살려냈죠. 움직임과 음악, 대화를 통해 제 안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내줬어요.

NG 촬영 전날이 기억납니다. 제니퍼와 저는 컬렉션 룩이 가득한 작업실에서 어떤 옷을 입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그때 갑자기 브루스가 나타났어요.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사진가는 촬영 전날 세트를 만들고 조명을 테스트하는 등 준비하느라 바쁘거든요. 그는 제니퍼가 어떤 옷을 입을지 보기 위해 온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논의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온 거였죠. 우리의 진짜 모습 말이에요. 브루스는 우리의 우정을 이해하고자 했던 겁니다.

JC 맞아요. 그러고 보니 브루스가 그날 우리 모습을 몰래 찍어서 나에게 보내줬어요. 니콜라, 당신에게도 그 사진을 보내줄게요. 어찌나 열띤 토론 중인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