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아주 특별한 경매

2016.03.17

by VOGUE

    아주 특별한 경매

    잘나가는 아티스트의 작품, 혹은 할리우드 스타의 소장품만큼 투자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패션 마니아의 옷장에는 패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아주 특별한 경매에 관한 보고서.

    카라 델레빈의 멀버리 백, 킴 카다시안의 발렌시아가 드레스, 엠마뉴엘 알트의 크리스토퍼 케인 백, 샬롯 데랄의 샬롯 올림피아 슈즈… 패션계의 소문난 멋쟁이들이 손수 구입해서 애지중지하던 아이템을 살 수 있다면? 지난 연말, 더 이상 착용하지 않는 하이패션 아이템들을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사이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vestiairecollective.com)’는 패션 피플들의 소장품을 기부받아 진행하는 자선 경매 프로그램 ‘스타일 사이클(StyleCycle)’을 론칭했다. 더 흥미로운 건 판매 수익금을 각각의 패션 피플이 지정한 자선단체로 전액 기부하는 시스템(포피와 카라 델레빈 자매의 물건을 구입하면 스‘ 타라이트 어린이 재단’에 기부된다)! 입찰이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호응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소장품 한두 가지가 아니라 패션 마니아의 옷장을 통째로 들여다보고 직접 구매할 수 있다면?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특히 패션사의 산증인이자 <보그> 인터내셔널 패션 에디터인 수지 멘키스의 옷장이라면! 2013년 여름, 그녀는 ‘크리스티’를 통해 자신의 옷장을 공개했다. “1964년부터 지금까지 구입한 옷들을 단 한 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모두 옷장 속에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죠.” 멘키스는 경매를 위해 반백 년의 역사가 담긴 옷장 속에서 ‘Suzy’라 적힌 70년대 샤넬 클러치, 무슈 생 로랑의 ‘르 솔레일(Le Soleil)’ 컬렉션 재킷, 에밀리오 푸치, 혹은 크리스찬 라크로아의 컬러풀한 프린트 드레스 등 의미 있는 80가지 아이템을 골랐다. “제 옷장을 무덤으로 하기엔 아까운 옷과 액세서리들이죠. 이번 경매를 통해 빛을 볼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내로라하는 패션 수집가들이 주최하는 이들 경매의 수익금은 대부분 좋은 일에 쓰인다. 팝스타이자 패션 디자이너로서 어마어마한 드레싱룸을 자랑하는 빅토리아 베컴의 경우, 작년 2월 남아프리카 방문 시 수많은 산모들이 HIV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에 자신의 의상 컬렉션 중 600여 벌을 판매해 자선기금을 마련했다. 지난 8월 ‘더아웃넷(theoutnet.com)’을 통해 진행된 경매에는 스파이스 걸즈 시절 콘서트 투어를 함께한 빨강 봄버 재킷(등번호 대신 ‘Victoria’라고 수놓인), 2003년 MTV 뮤직비디오 어워즈에 데이비드 베컴과 ‘커플 룩’으로 입었던 돌체앤가바나의 드레스, 1998년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룩이었던 윌리엄 헌트의 수트 등 그녀만의 추억이 담긴 아이템들이 공개됐다. 각각 300만~500만원 정도에 낙찰됐으니 자선기금 마련은 대성공!

    한편 세상에서 가장 많은 꾸뛰르 룩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프랑스 사교계 명사, 모우나 아웁은 1985년부터 2011년까지 구입한 3,000여 점을 경매 물품으로 내놓으면서, 2억원을 훌쩍 넘는 수익금을 파리의 장식 미술관과 영화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파리 꾸뛰르 기간 중 공개된 그녀의 컬렉션은 500여 점의 샤넬을 비롯, 존 갈리아노, 장 폴 고티에의 에르메스 등 특별한 아이템들이었다. “1991년 지아니 베르사체가 선보인 제임스 딘과 마릴린 먼로 프린트 룩은 특히 아끼던 것입니다. 남편이 보디라인을 드러내는 실루엣을 싫어해 한 번도 입지 못했지만, 마네킹에 입혀두고 늘 감상했죠!”

    그렇다면 가장 많은 자선기금을 마련한 패션 경매는 누구의 어떤 컬렉션이었을까? 8년 전 세상을 떠난 이자벨라 블로우의 방대한 옷장을 통째로 사들인 다프네 기네스는 ‘이자벨라 블로우 재단(블로우 생전에 패션과 예술계의 재능 있는 신인들을 후원하기 위해 만들었다)’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여 벌의 기상천외한 꾸뛰르 룩을 크리스티에 내놓았다. 그 결과는? 블로우와 기네스 모두와 절친이었던 알렉산더 맥퀸의 엠파이어 드레스는 약 1억4,000만원, 크리스찬 라크로아의 스페인풍 레이스 드레스와 투우사 재킷은 약 3,000만원에 팔리는 등 총 8억원이 넘는 엄청난 기부금이 모아졌다(크리스티에서 예상한 수익금보다 4배 이상 많은 금액). 이 중에서 많은 아이템을 레이디 가가가 사들였다는 후문! 하나하나 예술 작품과 다름없는 꾸뛰르 룩들이 블로우에서 기네스를 거쳐 가가의 옷장으로 옮겨진 것이다.

    한편 가장 많은 아이템을 경매에 내놓은 인물은 무슈 생 로랑의 뮤즈, 다니엘 루퀴에 드 생 제르망이다. 2013년 10월부터 ‘그로스&델레트레즈’ 갤러리를 통해 시작된 경매는 총 1만2,000여 점이 모두 팔릴 때까지 2~3개월에 걸쳐 350여 점씩 공개할 예정이다. 무슈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컬렉션에 영감을 준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녀의 소장품 중에는 생 로랑의 핵심적인 룩들은 물론, 파코 라반, 아제딘 알라이아, 크리스찬 라크로아 등의 꾸뛰르 컬렉션도 포함돼 있다. 특히 클로드 몬타나의 초기작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희소 가치가 매우 높은 것들. 그야말로 패션사의 귀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경매다.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난 40년대 여배우 로렌 바콜은 1944년 작 <소유와 무소유>로 스크린에 데뷔하기 전까지는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무척 아끼는 톱 패션모델이었다. 바콜의 뉴욕과 LA 아파트엔 패션을 사랑한 그녀가 생전에 수집한 700여 벌의 드레스를 비롯, 티파니 장 슐럼버제의 손에서 탄생한 수많은 주얼리들이 남아 있었고, 이달 말 뉴욕 ‘봄 햄스’에서 로렌 바콜의 경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녀의 옷장 속엔 또 얼마나 특별한 아이템들이 잠자고 있을지 사뭇 기대된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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