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시간의 기록자, 포토 저널리스트 양영웅

이미지 과잉의 시대엔 눈이 멀기 쉽다.
유행을 좇는 카메라들 틈에서 치열하게 세상의 진실과 마주한 젊은 작가들이 있다.
미술가 장민승과 포토 저널리스트 양영웅,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진훤, 영화감독·사진가 최원준.
우리의 부주의한 시선이 놓쳐버린 삶의 풍경을 포착해온 소외된 시간의 기록자들이다.

 

무명씨를 위한 기록

뉴욕에서 활동 중인 포토 저널리스트 양영웅은 카지노를 오가는 왕복 버스를 타며 돈을 버는 아시아 이민자들에 관한 르포 작업을 위해 끝나지 않는 버스 여행을 한다. 국제사진센터(ICP)를 졸업한 후, 세계의 젊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발굴해온 매그넘 재단의 후원을 받아 ‘버스꾼’ 시리즈(yeongungyang.com) 작업을 지속해온 그는 카메라를 도구 삼아 소외된 이들의 현실을 기록하는 성실한 스토리텔러다. 2013년 <뉴욕타임스>엔 그의 사진 에세이가 실리기도 했다.

Yang Yeong Ung

2013년 2월부터 6개월간 매주 같은 시간대에 카지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어요. 그 후로도 수시로 카지노를 찾고 있죠. 그곳에서 게임을 한 적은 없어요. 카지노에선 누가 돈을 잃었거나 벌면 입소문이 금방 나죠. 이름도 모른 채 ‘쪽제비’, ‘배돌이’, ‘로또박’ 등의 별명으로만 서로를 부를 정도로 비밀이 많은 곳이지만 돈에 관해서라면 안 들리는 소식이 없거든요. 도박을 시작했다고 알려지긴 싫었습니다. 대부분 말리기도 했고요. 카지노에서 생활하는 ‘버스꾼’들이라도 노름의 위험성은 인지한다는 거죠.

‘버스꾼’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뉴욕의 한인 언론사에서 노숙자들을 취재할 때였어요. ‘게임을 할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을 텐데 왜 카지노로 갈까?’ 궁금했죠. 펜실베이니아 주 베들레헴 시의 샌즈 카지노는 뉴욕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계 버스 회사와 계약을 맺고, 아시안 밀집 지역인 차이나타운과 플러싱, 브루클린, 총 세 곳에서 30분 간격으로 왕복 버스 노선을 운행해요. 2시간 걸려 카지노에 도착하면 카지노 직원이 하차하는 모든 고객에게 각 45달러 상당의 슬롯머신 게임 머니가 든 쿠폰을 주죠. 한인을 포함한 상당수의 아시안 고객들은 갬블러들에게 그 쿠폰을 현금 38~40달러에 팔아요. 버스비 15달러를 빼면 한 번의 왕복 버스 여정으로 25달러를 버는 셈인데, 이런 식으로 하루에 두 번, 하루 15시간 이상을 카지노와 버스에서 지내는 생계형 무직자들을 ‘버스꾼’이라고 부릅니다.

쿠폰의 현금 교환으로 얻은 돈을 모으기 위해 이들은 게임을 하지 않아요. 뉴욕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5시간이 남는데, 그동안 주위를 배회하거나 잠을 청하죠. 하지만 도박의 유혹에 빠져 결국 돈을 잃고 다시 버스를 타는 악순환에 빠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전 생계를 위해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현실이 어떠한지 직접 경험하며 그 풍경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취재원을 섭외하고 카지노로 가는 버스 티켓을 구하는 게 쉽진 않았어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중국계 제과점엔 ‘버스 차장’에게 표를 구하려는 노숙자들이 이미 줄을 늘어선 상태였죠. 그러던 중 버스꾼들이 찾는 한인이 운영하는 쉼터 ‘사랑의 집’을 찾게 됐어요. 그곳에서 중국 선양 출신의 한인 천해영(58) 씨를 만났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다가 다리를 다치고,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지난 2000년부터 카지노 버스를 탔다고 했죠. 그는 샌즈 카지노 외에도 미 동부 지역의 카지노를 다니는 수백 명을 알고 지내는 이 세계의 터줏대감입니다. 카메라를 꺼내 제대로 사진 찍기 시작한 건 취재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난 뒤부터였어요.

탑승자 대부분은 이름 대신 좌석 번호로 서로를 기억하는 고정 멤버들입니다. 합법적인 신분과 정부 보조금이 있는 중국인들과 달리 제가 만난 한인들은 서류 미소지자가 많았고, 수입원이라곤 카지노 쿠폰뿐이었죠.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주위를 맴돌았어요. 출근 도장을 찍듯 인사를 했어요. 처음엔 저를 못마땅해하고 초상권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분도 있었지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니 신뢰가 쌓였습니다. 대화를 꺼리던 분들도 가끔씩 찾아와 사연을 전했죠. 왜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지, 이 여정은 언제 끝날지 물으면 답은 늘 “몰라요, 안 끝나”입니다. 한인 커뮤니티의 일부 목회자들과 임시 셀터 운영자들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카지노가 편하고 자유롭다고 합니다. 이같은 삶을 그들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죠.

지금까지는 뉴욕 지역을 기반으로 ‘버스꾼’ 작업을 진행해왔지만, 서부 지역 버스꾼들에 관한 취재와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도 준비 중입니다. 기존의 대형 카지노는 도박 문화에 친숙한 아시안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 도시의 차이나타운마다 버스 노선을 운행하고 있죠. 더불어 한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조선족 커뮤니티, 한인 독거노인들의 노후 생활 등을 취재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뉴스 사이클에서 소외된 이들을 지속적으로 다루려고 합니다. 몇 장의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킬(변화해야 한다면) 거라 믿진 않아요. 다만 사진을 본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 수는 있겠죠. ‘버스꾼’ 사진 에세이가 <뉴욕 타임스>에 실렸을 때, 당장 그들의 생활이나 카지노의 시스템이 변하진 않았어요. 답답했죠. 하지만 그 보도로 인해 카지노 인근에 있는 한 극단 대표를 만나게 됐고, 버스꾼을 소재로 한 연극이 제작됐어요. 덕분에 골칫거리로 여기던 버스꾼에 대한 주민들의 선입견이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당뇨로 인해 건강이 많이 악화된 버스꾼 천해영 씨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제 아버지와 같은 나이고, 중국에 있는 천 씨의 아들도 저와 동갑이죠. 카지노에서 저를 소개할 땐 농담처럼 ‘아들’이라 부를 만큼 가족을 그리워했어요. 그의 가족들은 버스 생활이 어떤 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여정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거야”라고 말하던 그가 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버스꾼들의 현실을 알리는 것만큼 그들의 가족과 소셜 워커들이 이들의 처지를 직시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