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시간의 기록자,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진훤

이미지 과잉의 시대엔 눈이 멀기 쉽다.
유행을 좇는 카메라들 틈에서 치열하게 세상의 진실과 마주한 젊은 작가들이 있다.
미술가 장민승과 포토 저널리스트 양영웅,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진훤, 영화감독·사진가 최원준.
우리의 부주의한 시선이 놓쳐버린 삶의 풍경을 포착해온 소외된 시간의 기록자들이다.

 

도심 속 슬픈 열대

홍진훤은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2009년 외신 사진기자 일을 그만두고 개인 작업을 시작한 그는 용산 참사와 도심 재개발 풍경을 기록한 <나르시스의 자학〉으로 그해 사진비평상(제11회)을 수상했다. 사회적 퇴적물의 풍경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온 그는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주 강정마을과 일본 후쿠시마, 밀양, 청도, 그리고 오키나와의 역사적 흔적을 담은 <붉은, 초록> 작업으로 지난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99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Hong Jin Hwon

사진 찍는 홍진훤이라고 합니다. 전 인간의 역사 속에서 누구도 의도치 않았지만 생성되어버린 사회적 파편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발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풍경들이죠. 그 속에서 미처 숨기지 못한 인간의 민낯을 발견하곤 해요. 여기에 소개한 <붉은, 초록> 역시 인간이 모두 떠난 비극의 현장에서 오롯이 기억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는 나무와 풀을 사진으로 담은 작업이고요.

2012년 3월,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가 파괴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제주로 향한 게 이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허망한 순간을 지켜보는 내내 혼란스러웠어요.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 속 현장들을 조사했습니다. 제주의 4·3 사건과 해군기지 건설은 오키나와가 태평양전쟁 이후 미군 기지화되기까지의 과정과 유사해요. 또한 핵 발전소의 전기를 도심으로 보내기 위해 765kv 대형 송전탑이 마을을 관통하는 밀양을 지켜보는 동안엔 후쿠시마와 일본의 핵 발전 정책이 떠올랐죠. 그때부터 제주와 오키나와 밀양, 후쿠시마에 대해 공부하고 날씨와 계절을 고려해 일정을 짰습니다. 촬영은 펜탁스 중형 디지털카메라로 진행했습니다. 1m 이상의 대형 프린트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광각이나 망원 렌즈는 사용하지 않았어요. 다만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최대한 정면에서 보이는 그대로 프레임을 구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풍경 자체의 힘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처음부터 풀과 나무를 중심으로 촬영하려 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보니 이상하리만큼 대부분의 장소가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더군요. 자연스레 인간이 버려둔 터를 지켜온 자연에 눈이 간 거죠. 질기게 버텨온 생명들이 마냥 푸르게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붉게 뒤덮인 초록처럼 느껴졌어요. 그건 누군가의 희생일 수도 있고 강요된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엔 ‘치비치리’라는 동굴(치비치리 가마)이 있습니다. 태평양 전투 당시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죠. 미군의 공습을 피해 숨어 있던 주민들이 집단 자결한 현장입니다. 어미는 제 아이를 죽이고, 아비는 제 어미를 죽일 수밖에 없었죠. 유독 모기 떼가 많았어요. 촬영은커녕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들 만큼 모기들이 달려들었죠. 마치 동굴의 혼들을 수호하려는 것처럼요. 오묘한 느낌이었어요.

2015년의 한국을 설명하는 딱 하나의 풍경을 꼽자면 광화문광장입니다. 국가를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죠. 주미 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을 추고 석고대죄를 하는가 하면 개고기와 미역을 보냅니다. 국가를 생각하는 애잔한 진심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전 요즘 봉제 공장이 빼곡히 들어선 창신동 언덕 어디쯤에서 주로 지냅니다. 뭔가 야릇하게 풍경이 충돌하는 곳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 셈이죠. 지금의 작업실 역시 원래는 봉제 공장이었어요. 젊은 사진가들의 전시 공간으로도 사용되는 탓에 약간의 나무 벽과 조명을 설치했을 뿐,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입니다. 그곳에서 안경수 작가의 동양화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풍경을 대하는 방식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너무나 일상적이라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풍경을 찾고 싶단 욕구는 늘 있어요. 언젠간 눈을 뜰 날이 오겠죠.

일단은 우선 진행 중인 새 작업을 올 안에 잘 마무리해서 개인전을 여는 게 목표입니다. 또 창신동에서 운영 중인 ‘공간 지금여기’에서 유의미한 전시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다른 젊은 작가들에게 힘이 될 만한 일들을 벌이는 게 또 하나의 큰 숙제죠. 그리고 지금까지의 작업을 묶어서 책으로 만들 계획도 있죠. 물론 이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전 미시적으로는 비관론자에 가깝지만 거시적으로는 낙관론자입니다. 어느 시대나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렇기에 미래는 ‘설마 이보다 더 나쁠 게 있겠나’ 싶은 기대를 품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