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시간의 기록자, 영화감독·사진가 최원준

이미지 과잉의 시대엔 눈이 멀기 쉽다.
유행을 좇는 카메라들 틈에서 치열하게 세상의 진실과 마주한 젊은 작가들이 있다.
미술가 장민승과 포토 저널리스트 양영웅, 다큐멘터리 사진가 홍진훤, 영화감독·사진가 최원준.
우리의 부주의한 시선이 놓쳐버린 삶의 풍경을 포착해온 소외된 시간의 기록자들이다.

 

경계 너머의 세계

영화감독이자 사진가인 최원준은 수도권 주변의 군사시설물과 북한이 아프리카에 만든 건축물 및 기념비 등 사회·정치적 의미를 지닌 장소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2010 일우사진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에 오른 그는 파리 팔레드 도쿄와 케 브랑리 박물관의 지원 작가로 선정된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014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와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참여했고, 현재 뉴욕의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서 전시 중이다.

Che One Joon

2010년, 문래동에 대한 영화 <물레>를 촬영하면서 독재자의 우상화와 상징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아프리카 세네갈에 북한이 건립한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가 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북한이 만든 건축물과 기념비는 저에게 북한에 갈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만든 건축물과 기념비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아프리카의 토속적 색채와 북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어떤 식으로든 혼성·혼합되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하게 만들었어요. 언제부턴가 ‘북한’ 은 비가시적인 대상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이국성과는 다른 차원이에요. 극장국가만이 할 수 있는 이미지 메이킹이겠죠. 그때부터 리서치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북한의 국가 이미지, 그리고 김씨 일가의 이미지 메이킹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만수대 창작사’입니다. 김일성 동상과 김정일 초상화 등을 전문으로 만드는 이 단체의 해외 개발 부서에선 1974년 에티오피아에 혁명승리탑(Tiglachin Monument)을 무상으로 지어줬어요. 그걸 시작으로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궁과 토고의 대통령 집무실, 기니의 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장 건립을 무상 지원했고, 80년대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의사당과 함께 일명 ‘김일성 경기장’으로 불리는 탄자니아의 곰바니 경기장 등을 지어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부터 북한은 아프리카에 우상화 선전물을 수출해 외화벌이를 하는 중입니다. 이런 건설 사업으로 약 1억6,000만 달러(1,791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이런 사실은 2010년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세워진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네갈의 압둘라예 와데 대통령의 의뢰로 만수대 창작사와 세네갈의 대형 건설사 아테파그룹이 합작하여 만든 이 대형 기념비는 자유의 여신상보다 6m가 높으며, 기념비의 손가락은 대서양과 미국을 가리키고 있죠.

2012년 파리 케 브랑리 국립 박물관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첫 촬영이 2013년 2월에 이뤄졌고, 총 세 차례에 걸쳐 가봉, 세네갈, 에티오피아, 콩고, 보츠와나, 짐바브웨, 나미비아, 남아공 등 아프리카 9개국을 다녀왔습니다. 촬영은 준비하는 과정이 제일 어려운데 인터뷰이 섭외와 촬영 허가서 발급이 가장 까다로웠어요. 이런 문제들을 혼자 해결하긴 너무 힘들다 보니, 작업의 스케일을 키우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일이 커졌어요. 아프리카 시내에서 촬영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아마 가보면 아실 겁니다.

영화와 사진, 아카이브 설치로 구성된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프로젝트는 아프리카와 북한의 비교 문화 작업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있는 북한 건축물과 기념비 등을 통해 북한을 들여다보는 작업입니다. 남한의 미술가가 북한의 흔적을 찾아 아프리카에 간다는 건, 조금 과장하면 비극적이라 할 수 있죠. 실제 아프리카에 있는 북한의 건축물과 기념비는 각 나라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딱히 북한을 표상하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아프리카의 색채보단 북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형식이나 주체 예술 형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흔히 미디어에서 봐오던 평양의 조각과 건축을 쉽게 연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분단 현실에선 북한에 존재하는, 혹은 그들이 창조한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남한과 연결해 해석할 수밖에 없겠죠.

그동안은 미아리 집장촌이나 수도권 주변의 군사시설물의 변화 과정, 그리고 미군기지 문제 등에 관한 사진 작업과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해오며 우리 사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또 다른 공간을 다뤄왔습니다. 그런 이미지 작업을 통해 우리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근대성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어요. 여전히 사진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턴 영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진보다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내러티브를 서술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아요. 사진의 경우도 그렇지만, 영화감독 겸 사진가인 앨런 세쿨라의 사회과학적인 접근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카메라 워크는 독일 사진가들과 뉴 컬러 뉴 워크 시대의 스타일을 지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며 저만의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감독 지아장커의 호흡을 좋아합니다. 최근 3년간은 북한이 아프리카에 만든 건축물과 기념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지난해부턴 북한 화집과 우표를 하루에 몇 번씩 들여다보며 북한의 예술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죠. 올해도 아마 아프리카에 가지 않을까 싶어요.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프로젝트가 분단된 현실과 타자화된 북한을 더 추상화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비가시적인 존재인 북한에게 다르게 말을 걸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될 거라 생각해요. 아프리카라는 거울에 비친 북한의 이미지를 통해 북한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며 다가가고자 하는 남한 미술가의 열망이 담긴 작업으로 보이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