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레디 투 메이크업 시대

2016.03.17

by VOGUE

    레디 투 메이크업 시대

    모델의 얼굴이 옷과 보석으로 치장되기 시작했다.
    아니다! 모델의 얼굴에 메이크업 신기술이 도입됐다.
    대체 패션인가, 메이크업인가?
    이름하여 ‘레디 투 메이크업’ 시대!

    백스테이지 뷰티는 우리가 아는 많은 여자들처럼 사랑받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진실을 미화하거나(“일생일대 가장 젊고 아름다워 보인다!”), 몹시 잘난 척하거나(“디자이너 컬렉션 중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 온갖 미사여구로 선언할 때도(“다가올 시즌엔 사랑과 낭만을 부르는 호소력 짙은 색채가 유행이다!”) 허다하다. 어쨌든 백스테이지 뷰티의 임무는 공들인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디자이너의 최신작을 월등히 돋보이게 돕는 것. 하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다 못해 도가 지나쳐 패션과 뷰티의 임무가 서로 헷갈리는 경우가 요즘 부쩍 늘었다.

    메이크업 그루, 팻 맥그래쓰는 갈리아노의 공백을 틈타 지방시와 손잡고 마술 같은 솜씨를 발휘, 패션 영역을 마구 침범하고 있다(그녀가 손 한번 까딱하면 모델의 얼굴은 보석이 됐다가 피카소 작품도 된다). 특히 작년 봄을 위해선 크리스털 조각들을 일일이 붙여 ‘보석보다 찬란한 얼굴’을 창조했다(8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이나 걸렸다나?). 그 얼굴을 캣워크에서 맞닥뜨리는 순간, 어느 기자는 “레디 투 메이크업!”이라고 외쳤을 정도. 팻은 올가을 컬렉션에도 주얼 메이크업을 제안했다. 리카르도 티시가 건넨 ‘Victorian Chola’라는 주제를 위해 고딕 요소와 라틴 스트리트 문화를 표현하며 사파이어나 루비 같은 어두운 보석들을 사용했다. “빅토리아 시대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착용했다는 흑옥과 비슷한 주얼리도 제작했어요.” 여기에 1800년대에 유행했던 얼굴 패치, 펑크 피어싱, 인도 신부의 장신구, 수염 등에서 얻은 영감을 추가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지방시의 레디 투 메이크업이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한 꾸뛰르 드레스라면, 반대편엔 넝마 같은 스트리트 웨어로 유명한 후드 바이 에어가 있다(발칙하고 도발적인 길거리 아이디어를 완성도 높게 표현해 엄격한 패션 전문가들의 마음을 단숨에 흔든 상표). HBA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잉에 그로나드(Inge Grognard)와 함께 모델들의 머리에 비둘기색이나 살색 스타킹을 죄다 씌웠다.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의 모습, 벨트에 묶인 플라스틱 아기 인형, 자물쇠 모양 그릴과 치열교정기에서 힌트를 얻었죠.” 듣기만 해도 소름 돋지만 솔직히 우리 눈엔 몹시 우스꽝스러울 뿐.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벌칙처럼 보이니까. “쇼 전날까지도 메이크업과 헤어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머리에 스타킹을 씌우자는 생각이 즉흥적으로 떠올랐어요.” 그야말로 ‘입는’ 메이크업!

    그러나 올 상반기 가장 기발한 레디 투 메이크업을 꼽자면 단연 ‘Agi&Sam’(맥퀸 디자인실에서 인턴으로 만난 두 청년이 2010년 자신들의 이름을 따다 만든 상표). ‘포스트 팻’에 비유해도 될 만큼 기상천외한 메이크업으로 요즘 확 뜬 이사마야 프렌치(Isamaya Ffrench)의 솜씨 덕분이다. 모델들이 얼굴에 레고를 산더미처럼 붙인 채 출몰했으니까. 아기 므듀뮬라가 네 살 때 그린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사마야는 패션이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를 기발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패션과 장난감이라는 상반된 분야를 혼합했고, 패션 세계의 과도한 진지함에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장난기 많은 모습을 결합했어요.” 3D 디자인을 전공한 어여쁜 그녀는 현재 뷰티 기자로 일하며 꼼데가르쏭과 준야 와타나베 쇼 메이크업까지 진행한다. 특히 올가을 와타나베 쇼에선 보디 페인팅에도 손댔다. 수학 방정식 같은 낙서를 모델들의 온몸에 정밀하게 묘사한 것(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삐죽 내밀고 보지 않았다면 낙서 프린트의 신축성 있는 보디수트를 입은 듯 착각할 정도).

    그나저나 바깥사람들이 레디 투 메이크업에 감탄할 무렵, 무대 뒤에선 스태프들끼리 서로 자기 영역임을 강조하며 기 싸움을 벌이지 않을까? 디자이너는 얼굴에도 옷을 입히고 보석을 치장할 때가 왔으니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뒷짐 지고 물러나 있으라며 눈치 줄지도 모를 일. 혹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디자이너가 손에 쥔 온갖 장신구와 보석을 뺏어와 모델들의 얼굴에 자부심 넘치는 손짓으로 메이크업 신기술을 시연할지 모를 일. 그러거나 말거나 관객들은 애 좀 썼네, 하며 고개만 까딱일 뿐이지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신광호
    사진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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