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섹시한 괴물 래퍼, 랩몬스터

괴물 같은 아이들이 나타났다. 랩이라는 신인류의 언어로 무대를 장악한 이들은 누구보다 자유롭고 개성이 넘친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다섯 명의 래퍼 를 만났다. 뜨거운 비트를 타고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국 힙합 신의 역사는 이제부터다.

실크 소재 집업 점퍼와 팬츠는 모두 에트로(Etro), 안에 입은 화이트 톱은 ADYN(ADYN by Samplas), 실버 네크리스와 볼드 링은 크롬 하츠(Chrome Hearts), 화이트 스니커즈와 양말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거의 매일같이 수선한 동네 힙합 신에서 요즘 가장 시끄러웠던 건 랩몬스터다. 작곡가 방시혁이 꾸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는 데뷔 초기 ‘아이돌이 무슨 랩을 하느냐’는 편견에 시달렸다. 이후 모 공연장에선 다른 래퍼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고, 힙합 신에선 흔하디흔한 ‘디스전’ 역시 무사히 지나가지 못했다. 고작 정규 앨범 한 장을 발표한 그룹의 일원이지만 잡음과 소란은 웬만한 스타급 못지않았다. “저를 잘 모르고,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열등감 아니냐고 했어요. ‘얘 욕구불만 아냐?’ ‘어디서 맞고 왔느냐?’라고요. 전 열등감이라 표현하고 싶진 않은데 어느 정도 맞는 얘기기도 해요.” 가령 이런 가사들이다. “내 인생은 한 부분이 지워진 낙서/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는 파편/ 그것들이 날 더 구석 끝으로 몰아/ 죽일 듯 다가온 어둠은 내 목을 졸라(‘Runch Randa’).”

올해로 스물두 살이지만 랩몬스터는 어둡고 무겁다. 그의 노랫말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증명하다 나온 글귀들이고, 부끄러움, 거짓 하나 없이 뱉은 말들은 지독하리만큼 쓰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쪽팔림이나 저의 좋지 않은 부분도 보여주려고 해요.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분명 부끄러운 부분은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랩몬스터는 지난 4월 첫 번째 솔로 작업 믹스테이프를 발표했다. 믹스테이프는 힙합 뮤지션들이 기존 트랙을 빌려 새롭게 변주해 완성해내는 형식의 앨범인데 그는 재킷을 흑과 백으로 나누어 칠했다. 마치 자신의 절반을 갈라 양면을 노출하듯 말이다. “이중성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랩몬스터는 자신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리고 심지어 욕설까지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는 오뒤르(Odeur by Samplas), 블랙 니트와 팬츠는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화이트 자수 스커트는 KTZ(KTZ at 10 Corso Como), 실버 링은 크롬 하츠.

랩몬스터는 시 쓰는 ‘초딩’이었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길 즐겼고’, 보통의 일과 사물에 대해서도 ‘꼬아서 바라보곤 했다’. “어릴 때부터 시를 매우 좋아했고, 허세스러운 부분이 꽤 있었어요. 그러다 중학교 들어가 음악에 빠졌고, 그게 자연스레 힙합이 됐죠.” 랩(RAP)은 리듬 앤 포이트리(Rhythm & Poetry)의 줄인 말. 혼자 노트에 즐겨 적곤 하던 초등학생의 시구는 자연스레 라임이 됐고, 가사가 됐으며, 플로우를 탔다. 그래서 랩몬스터의 랩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청춘, 기쁨, 젊음을 신나고 활기차게 부르는 방탄소년단의 음악과는 정반의 컬러다. 자학으로 에두른 오기도 느껴지고, 뒤틀린 외로움도 버석거린다.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 간다더니 저도 좀 이름 따라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랩몬스터란 이름은 본래 그가 연습생 시절 부르던 노래의 가사 한 소절이다. 그러다 자연스레 애칭이 됐고, 이제는 어엿한 공식적인 이름이 됐다. “이름이 호감을 부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몬스터?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고 반응하기 쉽거든요.” 그 괴물의 위협적인 태도 뒤엔 외로움도 감지된다. 랩몬스터는 믹스테이프 1번과 2번 트랙 ‘Voices’ ‘Do You’를 각각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 비트와 자신의 목소리로만 완성했다. “외로움이란 키워드를 좋아해요. 증오하면서도 즐기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스스로를 돌연변이, 괴물이라 느낄 때의 외로움이 있는 거죠.” 온갖 욕과 구설수, 그리고 디스 속에서도 그가 자신만의 리듬과 플로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랩몬스터가 거침없는 랩으로만 주목받은 건 아니다. 그는 요즘 심심찮게 들려오는 유행어 ‘뇌가 섹시한 남자’ 중 한 명이다. “학창 시절에 딱 세 가지밖에 안 했어요. 하나는 시 쓰며 음악, 또 하나는 공부,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게임.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았죠.(웃음)” 그 덕에 고교 시절 전국 모의고사에서 상위 1%에 든 적도 있고, 방송이 인증한 그의 IQ는 140대다. 최근엔 ‘뇌가 섹시한 남자’를 컨셉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 <뇌섹시대-문제적남자>에도 출연 중이다. “아직도 저를 왜 캐스팅하셨는지 정확히 모르겠어요.(웃음) 아마도 사전 미팅 때 제가 개인적인 얘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같은 걸 너무 막 하니까 흥미로웠나 봐요.” 프로그램에서 랩몬스터는 아리송한 수학, 물리, 언어 문제에 도전한다. 전현무, 김지석 등 형들과 어울리며 쇼를 끌어가는 모습은 확실히 무대 위에서 거칠게 랩을 뱉어내는 괴물과는 또 다른 ‘이중성’이다. “프로그램 하면서 비호감이 좀 준 것 같아요.(웃음) 다행이라 생각하죠.”

소속사 대표인 방시혁은 여러 자리에서 수차례 “랩몬스터 하나 보고 방탄소년단을 꾸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5월 랩몬스터는 방탄소년단으로 컴백한다. 음악은 여전히 청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예찬하는 댄스 튠이다. 때로는 아이돌의 활기찬 에너지로, 또 때로는 래퍼의 치열하고 논쟁적인 혀로 무대를 달구는 남자. 뇌도, 마음도 뜨거운 랩몬스터는 지금 별로 두려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