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끈 벨트의 위력!

무두질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가죽 벨트가 원초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리스 수학자들의 계산 아래 몸의 황금 분할을 가능하게 해줬던 가느다란 끈 벨트의 위력!

서양 복식사에서 가장 구조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것은 그리스 복식이다. 아주 단순한 형태로 육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키톤(Chiton)’은 자연스러운 주름이 매력적인 옷. 아담과 이브의 나뭇잎 옷으로 출발해 의복에 기능과 미적 요소가 등장한 건 천 한 장으로 만든 이 키톤 튜닉에 벨트와 핀 장식이 들어가면서부터다. 여기엔 물론 당대 수학자들의 철저한 계산 아래 몸의 황금비율을 나누는 도구로서 벨트가 사용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1:1.618로 정의되는 황금비율이 어깨와 허리선에 적용되면서 안정적인 옷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얇고 가느다란 끈 벨트 하나로 신체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극적인 순간이 운 좋게도 이번 시즌 다시 부활했다. 그런데 수세기를 건너뛴 끈 벨트 스타일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내추럴한 오가닉 소재 밧줄 벨트, 남성복 패턴과의 언밸런스한 믹스매치를 보여준 끈 벨트, 극도의 여성스러운 실루엣에 더해진 포장용 실크 벨트가 그것들이다.

자, 이제부터 뱀의 요염한 몸짓처럼 여자들의 허리를 감싼 끈 벨트들의 스타일 쓰임새를 들여다보자. 우선 마르니는 고대 복식을 연구한 듯 키톤처럼 보이는 드레스에 운동화 끈 같은 색색의 가느다란 끈을 허리에 묶었다. 또 내추럴한 리넨 원단에는 태권도나 유도복 띠처럼 보이는 늘어지는 캔버스 벨트도 함께 매치했다. 허리선이 풍성해 자칫 뚱뚱해 보일 수 있는 실루엣을 가느다란 벨트 하나로 원천봉쇄한 느낌이다. 마르니만큼이나 자연 친화적인 의상을 선보이는 이자벨 마랑도 끈 벨트를 활용했다. “아프리카 부족민 의상을 연구했어요. 부족적인 디테일을 강하게 살리고 싶었죠.” 디자이너의 말대로, 에스닉한 태슬 의상엔 면사 꼬임으로 된 굵은 밧줄이 매치됐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청팀 홍팀으로 나눠 줄다리기를 할 때 쓰던 바로 그 밧줄을 떠올리니까. 면사 밧줄은 우아한 레이블 에르메스에도 등장했다. 유연한 형태의 셔츠에 자연스럽게 묶인 밧줄 벨트는 그 어떤 장인이 만든 가죽 벨트보다 멋스러웠다. 이번 시즌 빅 트렌드인 보헤미안 룩에 잘 어울리는 면사 로프 벨트는 휴양지 룩에도 딱 어울리는 액세서리! 로에베의 J.W. 앤더슨 역시 고급스러운 리조트 룩에 밧줄 벨트를 슬쩍 묶었다. 그의 밧줄 사랑은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는데, 벨트가 아닌 굵은 밧줄이 장식된 백이었다. 어쨌든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오가닉 패션에 밧줄 벨트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밧줄이 너무 투박해 보인다면 포장용 리본은 어떤가? 알투자라와 마르지엘라는 얇고 매끄러운 포장용 리본을 선택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느슨함은 관능과 이어지죠!” 조셉 알투자라의 설명처럼 아담한 진주를 매단 포장용 끈은 정확하게 허리선에 묶여 호리병 같은 실루엣을 더욱 날씬하게 보이게 했다. 또 깅엄 체크 수트에 얌전하게 묶인 가느다란 끈은 남성성을 중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건 피비 파일로의 셀린 스타일링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매니시한 테일러드 코트 허리에 묶은 실 벨트가 그것. 스티치가 연장된 듯 보이기도 하는데 피비는 종 모양 메탈 참을 슬쩍 넣어 벨트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한때 매니시한 테일러드 코트 위에 넓은 가죽 벨트로 가는 허리를 강조한 적도 있었는데, 여성미를 드러내는 데 가느다란 끈 벨트 한 줄의 효과가 훨씬 크다는 걸 이 벨트들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포장용 실크 벨트는 로샤스의 풍성한 튤 스커트나실크 블라우스에 매치하면 봄날 룩으로 딱이다.

물론 로프 벨트나 리본 벨트 역시 수많은 트렌디 아이템 중 하나일 뿐 전체 스타일을 좌지우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근사한 가죽 벨트 없이도 환상적인 황금 실루엣을 만들 수 있고, 게다가 실을 엮어 직접 만들어도 되고, 선물 포장용 리본을 이용해도 되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자, 이번 시즌엔 가느다란 끈 벨트로 당신의 허리를 포장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