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의 360도 패션 전시

패션 천재의 뇌에서 비롯된 콘텐츠를 디지털 멀티미디어와 함께 입체적으로 해석한 공간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여러분을 기다린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360도 패션 전시 속으로!

리차드 프린스의 야한 간호사들이나 다미엔 허스트의 해골과 으리으리한 하이패션 간의 협업을 보면 이제 하품이 나올 지경인가? 아카이브에서 꺼낸 옛날 옷, 거장 사진가들의 걸작, 그리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현대미술 전시가 슬슬 따분해지기 시작했나? 대신 차별화된 콘텐츠와 멀티미디어가 균형을 이룬 새로운 패션 볼거리를 원하시나? 그렇다면 2015년 봄이야말로 당신의 순간이 될 것이다. 5월 1일부터 17일 사이 서울 광화문 D타워에 가면 신개념 패션 전시 앞에서 눈과 입과 귀가 동시에 번쩍 하고 열릴 테니 말이다.

 

하고많은 패션 기획 가운데 왜 하필 전시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재클린 케네디: 백악관 시절’과 구겐하임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전은 박물관 역사상 최대 관객 기록을 세웠다(재키는 50만 명 이상, 아르마니는 몇 년 전 구겐하임이 세웠던 ‘모터사이클의 예술’ 전시 기록을 깼다). 그러나 최근 열린 맥퀸 회고전은 이 모든 진기록을 거뜬히 갈아 치운 채 런던으로 훨훨 날아갔다. 이쯤 되면 엄청나게 많은 패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이유가 이해될 것이다. 다시 말해 패션 관계자와 패션 학도들이나 구경하는 전시가 아니라는 말씀. 고맙게도 이런 경향이 패션 수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역사와 전통, 여기에 권력과 명예까지 다 갖춘 패션 하우스 덕분에 서울에서도 국제적 패션 전시들이 한 해가 멀다 하고 기획 중. 이미 프라다는 2009년에 ‘트랜스포머’ 전시를 위해 경희궁 앞에 미래적인 구조물을 세운 데 이어, 작년엔 샤넬이 DDP에서 전시 ‘장소의 정신’을 열었다. 그리고 올해 루이 비통과 디올 등이 대규모 전시를 연다.

“우리가 기획한 전시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컬렉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모두 보여주게 됩니다.” 루이 비통의 마이클 버크 회장은 런웨이쇼와 겹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컬렉션을 보여줄 방안을 제스키에르와 함께 모색했다고 덧붙였다. 그게 바로 서울에서 열리는 ‘시리즈’ 전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부제로 단 ‘시리즈’ 전은 패션쇼부터 광고, 전시 등이 하나의 세트로 구성된 일종의 커다란 패키지 프로젝트(한 작품 안에 또 하나의 작품을 집어넣는 예술적 기법인 ‘Mise en Abyme’ 개념). 그 첫 번째였던 ‘시리즈 1’ 전시는 니콜라의 루이 비통 데뷔 컬렉션을 기념하기 위해 도쿄와 상하이에서 처음 열렸다. 그리고 6개월 후인 올봄 런웨이쇼에서 비롯된 ‘시리즈 2’가 LA, 베이징에 이어 서울 광화문 D타워에서 열리게 된 것(다른 도시에서 이미 열렸던 전시라고 아쉬워 마시길. 다섯 차례의 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니까).

 

사실 루이 비통 가문은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전임자인 마크 제이콥스의 소감처럼, 디자이너에게 창조의 자유를 부여하고 여러 예술가들의 참여를 장려하는 하우스로 유명하다. 그런 면에서 니콜라의 현재적 비전은 당대 분위기를 정확히 간파하는 건 물론, 그게 옳은 길로 전진할 방향성 역시 정확히 포착하는 데 있다. 이런 선구적 인물은 패션이 지녀야 할 기본 자질인 젊은 태도와 창조적인 정신을 ‘시리즈 1’과 ‘시리즈 2’ 시리즈를 통해 가열차게 분출하는 중. 그리하여 창의적 콘텐츠와 멀티미디어의 친밀한 관계 가운데 구현시킬 수 있었다.

서울 전시인 ‘시리즈 2’에서는 작년 10월에 발표된 루이 비통의 올봄 런웨이쇼를 위해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영감을 얻는 경로와 함께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컬렉션으로 완성됐는지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하나 더 주목할 만한 점이라면, 작년에 열린 샤넬의 ‘장소의 정신’ 전시에 박물관풍의 고고함이 존재했다면, 루이 비통 전시는 다분히 관객 지향적이라는 사실. 런웨이 컬렉션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패션쇼를 발표하는 과정까지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데다 여러분이 직접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시리즈 기획팀의 전략이다. 덕분에 패션쇼는 더 이상 기자와 바이어와 셀럽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지 않고 들른 공간에서 패션쇼의 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니! 지금껏 열린 4대 도시의 시리즈 전시를 종합한 결과, 루이 비통은 패션쇼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컴퓨터 모니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블록버스터 런웨이쇼의 가치를 벗어나길 원한 것 같다. “전시에서 맘에 드는 점은 대중에게 열린 행사라는 것. 관심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구경할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주는 거죠. 무드 보드 같습니다.” 고객 친화적인 방법에 대해 숙고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소감이다.

니콜라가 디자인한 하나의 컬렉션은 그런 고민 아래 아홉 개로 구획된다. 그 가운데 첫 관문은 1854년에 루이 비통이 직접 사용했으며 제스키에르가 부활시킨 LV 스탬프를 지나 입장하는 것. 다음 코스로는 작년 10월 1일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으로의 유체이동을 경험할 차례다. 지난 시즌 파리 쇼장을 재현한 이곳에서 어리둥절할지 모르니 2015 S/S판 <보그> 컬렉션 북을 필독하고 가시길. 다음엔 루이 비통, 하면 패션 삼척동자라도 알만한 전설의 트렁크를 마주칠 순간이다. 이 방에서 과거사가 21세기 최첨단 기법인 홀로그램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할는지. 거기서 나오면 트렁크를 축소한 ‘쁘띠뜨말’의 비밀스런 제작 과정이 기다린다. 당신이 이미 매고 다녔을 수 있는 그 가방이 100여 개 이상의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아시나? 이로써 최신 컬렉션은 가문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유물과 나란히 전시돼 시간에 따라 루이 비통이라는 상징적이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이 어떻게 진화했고 패션에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액세서리 갤러리에서는 액세서리 제작 과정을 사랑한다는 니콜라의 말이 실감날 것이다. 그나저나 3D 기술로 재현한 모델 마르테 마이 반하스터의 아바타 마네킹들 사이에선 조심하시길. 순백의 그녀가 귀에 걸고 손에 들고 발에 신은 모든 것을 가로채고 싶을지 모르니까. 그 욕망은 포스터 룸과 스티커 월에서 다른 방식으로나마 해결 가능하다. 애니 리보비츠, 유르겐 텔러, 브루스 웨버(비통 측에 의하면 ‘시각적 사상가’로 지칭되는 인물들)가 촬영한 올봄 광고 사진 포스터와 이번 컬렉션의 프린트로 쓰인 귀여운 모티브들을 스티커로 만들어 누구든 가져갈 수 있게 배려했으니까. 헤드폰, 초록색 다미에 립스틱, 소금통과 후추통, 가위무늬 등으로 준비된 루이 비통 스티커라고? 정말이지 올봄 컬렉션의 디테일 속에서 포착해 완벽하게 응용한 제스키에르만의 깨알 같은 유머 감각 아닌가.

이렇듯 3-D 영상, 거울, 사진 콜라주, 비디오 등으로 LV DNA를 만끽할 수 있는 전시가 당신을 초대한다. 심지어 런웨이에 오른 48개 룩을 360도 감상도 가능하다. 안내 요원이 스마트폰 촬영을 저지하지 않을 뿐더러, 요즘 인기인 스티커를 덥석 집어가도 된다. 참, 또 다른 방에서는 니콜라 제스키에르, 카미유 미첼리 등이 쇼를 준비하는 모습에 놀랄지 모른다(팻 맥그래쓰와 함께한 25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폴 핸론과 그의 헤어스타일리스트 25명, 여기에 니콜라 수하의 디자인 스태프 40명, 흰색 크로셰 드레스 차림의 모델 진 캠벨까지).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서울에 와서 깜짝 쇼를 준비하는 거냐고? 그렇다고 데님 재킷 차림의 니콜라를 와락 껴안다간 말 그대로 큰코다칠지 모른다. 그건 사진가 장 폴 구드가 특유의 스펙터클한 아이디어를 발휘해 촬영한 실제 크기의 백스테이지 패션 화보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