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중심에 등장한 스목

패션 사전에 숨어 있던 단어 ‘스목’.
궁정 잠옷이나 농장 노동자 작업복을 가리키던 스목이 패션의 중심에 등장했다.
2015년 스목 드레스가 과연 동시대 핫한 아이템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여성적인 우아함과 순수함이 느껴지는 스목 드레스. 호주 배우, 피비 톰킨(Phoebe Tomkin)이 입은 코튼 소재 드레스는 디올(Dior).

“의복 위에 걸쳐 덧입는 기름하고 품이 넉넉한 상의.” ‘스목(Smock)’이란 단어를 두산백과사전에서 검색하면 이렇게 요약 정의하고 있다. 설명을 추가하자면 스목에는 더 다양한 뜻이 존재한다. 장식적 주름을 잡는 기법 역시 스목이라 지칭하는가 하면, 시프트 드레스의 시초 역시 스목이다. 아울러 농장 노동자나 양치기가 입었던 작업복 역시 스목 프록이라 불린다. 그런가 하면 풍성하게 만든 상의 역시 스목. 그런 관점에서 판단했을 때 가슴 부분에 셔링 장식을 더하거나 단추로 여미는 셔츠 형식의 드레스야말로 현대판 스목일 것이다.

설명만으로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디올 봄 컬렉션의 9번, 10번, 17번, 42번, 43번, 44번, 45번 룩을 살펴보자. 빅토리아 시대 잠옷을 닮은 드레스가 ‘스목’의 동시대 버전이다. “내가 뽑은 봄 컬렉션 최고의 옷은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한 화이트 코튼 스목이다.” 지난 2월 패션 평론가 캐시 호린은 스목 이야기를 <T 매거진>에 게재했다. “사람들은 ‘끔찍하다’라는 표현까지 쓰며 빅토리아 시대 잠옷을 닮은 높은 칼라의 드레스를 선보인 시몬스가 정신을 잃었다고까지 혹평했다. 하지만 난 그 드레스가 좋았다.” 그녀에게 이 드레스가 그토록 신선했던 이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그 이상하게 생긴 면 드레스에 아름다운 금빛 샌들을 매치해 입는 걸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주목할 테고, 부러움과 기쁜 표정이 나타날 테고, 갑자기 다들 디올 스목만큼 쿨하고 오묘한 드레스를 원할 것이다.”

당대 패션 평론가가 스목을 칭송한 이유는 특이함 때문일지 모른다. 게다가 칼로 자른 듯 완벽한 재단과 몸을 옥죄는 실루엣, 그리고 패션 실험실에서 탄생한 신소재만이 새로운 패션으로 추앙받는 시대에 스목의 복고적 매력이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펑퍼짐한 형태에 여성적인 자수 장식 드레스가 ‘패셔너블’하다고 여겨지기란 쉽지 않은 세상인 것이 사실(솔직히 잠옷 같은 드레스보다는 터프한 가죽 바이커 재킷이 더 시크하게 다가오니까). 하지만 여성들이라고 죄다 스터드 장식 가죽 재킷과 타이트한 네오프렌 티셔츠만 입고 살 순 없지 않나. 그리고 라프 시몬스만 요즘 패션에 반기를 든 건 아니다. 발렌시아가에서 모두가 탐내는 모던한 바이커 재킷과 미래적인 네오프렌 티셔츠를 선보였던 니콜라 제스키에르도 루이 비통에선 잠시 과거를 반추했다. 그 역시 이번 시즌 하늘하늘한 스목 드레스를 선보인 것! 확실히 가슴을 동그란 검정 단추로 여미는 화이트 드레스는 강렬한 패션 선언이라기 보다 여성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또 클로에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리조트에서 어울릴 만한 바캉스용 스목, 로샤스의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는 궁정 무도회에서도 잘 어울릴 레이스 스목을 디자인했다. 바느질 장식의 거즈 코튼 소재의 프라다, 셔츠 드레스 스타일로 풍성한 소매가 로맨틱한 클로에, 하늘하늘한 레이스로 완성한 알베르타 페레티도 2015년의 스목으로 선정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40여 년 전인 1974년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Don’t Knock the Smock’이란 제목의 패션 기사를 실었다. 70년대 이브 생 로랑이 선보인 스목 사진을 곁들인 그 기사는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패션 대신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목 드레스의 유행을 보도했다. 침구에 주로 쓰이던 인도산 소재 캘리코(Calico)를 사용한 비바의 스목 드레스 역시 함께 언급됐다. 혹시 몸을 옥죄는 패션 대신 침실에서 입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유행이 스목을 내세워 40년 만에 돌아온 게 아닐까? 핫한 유행이 되진 않겠지만, 캐시 호린의 예언처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 스목 드레스를 입는 순간, 지나가던 행인들이 뒤돌아 보고 또래 여인들의 시선이 꽂히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