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마녀사냥

욕하기 위해 RT한다. 험담을 위해 대화하고 조롱의 패러디도 서슴지 않는다.
요즘의 트위터는 거의 SNS 지옥 불이다. 정보 공유와 소통의 장이라던 트위터가 어쩌다 이렇게 난장판이 되었나.
지금 파랑새는 신음한다.

트위터를 하루 평균 10번 정도 들여다본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체크하고, 약간의 친목도 다지며, 귀여운 ‘동물 짤’도 줍는다. 맛집에 갔을 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주절거리기도 한다. 거의 ‘데일리 생필품’이다. 근데 이 생필품이 요즘 몹시 시끄럽다. 매일같이 새로운 논쟁이 불거지고 그 소란 속에 이용자 몇몇은 공공의 적이 된다. 지난 2월 트위터는 온통 페미니즘 논쟁이었다. 모 칼럼니스트가 여성 패션지에 기고한 글이 트위터를 성나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글을 역사책과 대조해가며 오류를 잡아내기 시작했고, 조롱과 함께 비아냥거리며 험담을 하기도 했다. 트위터 지인과 대화하며 나눈 이야기가 공개 RT돼 망신살 뻗치는 사례도 많다. 얼마 전 모 바의 주인은 성폭행과 관련해 말실수를 했다 대대적인 사과를 하기도 했다. 요즘 트위터는 거의 1일 1사건 수준으로 시끄럽다. 집단 놀림과 비아냥거림이 타임라인을 도배하고 뒤이어 그 소란의 주인공이 사과문을 올린다. 대대적 비난과 수습용 사과의 악순환이다. 심지어 페미니즘 칼럼으로 문제가 됐던 칼럼니스트는 당시 아카데미상 중계 사회자로 캐스팅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의 아우성 탓에 MC석에서 하차했다. 트위터의 논란이 한 사람의 일거리를 앗아간 셈이다.

트위터의 싸움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누구나 보고 들은 이야기를 140자로 표현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 논쟁, 말다툼, 그리고 트러블은 매일같이 일어난다. 페미니즘은 물론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논의도 오가고, 잘못 퍼져나간 정보는 다른 트위터에 의해 수정되기도 한다.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졌기에 가능한 자정작용이다. 하지만 근래의 트위터 싸움판은 ‘모다구리’에 가깝다. 한 사람이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면 모두가 나서서 조롱하고 비아냥거린다. 페미니즘을 IS와 비교하며 무뇌아적이라 표현한 칼럼니스트가 몰매를 맞은 며칠 뒤 걸 그룹 출신의 빵집 사장이 만듦새에 비해 과하게 비싼 양갱값으로 도마에 올랐고, 또다시 몇 주 후엔 외부 음식을 카페에 반입해 진상을 부린 일련의 고객이 놀림의 대상이 됐다. 공공의 가치와 의견이란 암묵적 합의로 불특정 다수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는 셈이다. 지난 3월 극장가엔 <소셜포비아>란 영화가 걸렸다. SNS 악플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성의 죽음을 좇아가는 작품인데 영화는 사건의 원인을 넌지시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던진다. 오늘 아침 일어나, 점심을 먹으면서 SNS에 무심코 한마디 적고 RT했던 당신도 혹시 공범이 아니냐고. 모두에 의한 모두의 폭력. 140자 소통의 장 트위터는 지금 가장 위험한 불쏘시개가 됐다.

최근 영국에선 독특한 제목의 책 한 권이 출간됐다. 저널리스트 존 론슨이 쓴 책인데 제목이 <그렇게 당신은 조리돌림당했다(So, You’ve Been Publicly Shamed)>다. 이 책은 존 론슨이 트위터 폭력의 사례를 모아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그는 2014년 트위터에 멘션을 몇 개 올렸다 회사에서 해고된 저스틴 사코의 이야기를 듣고 사례를 좇기 시작했다. 저스틴 사코는 뉴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행 비행기를 타며 “아프리카로 갑니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백인이니까요”란 글을 남겼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환승을 하면서는 “오이 샌드위치를 먹는 중인데 입안이 텁텁해요”라고 썼다. 그리고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비행하는 사이 저스틴의 트위터 피드에선 거의 공습에 가까운 폭격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아직 저스틴은 도착하지 않았나(#HasJustineLandedYet)’란 해시태그로 그의 멘션을 ‘조리돌림(Publicly Shame)’하기 시작했고, 애그리게이션 뉴스 사이트 버즈피드는 이미 저스틴의 트위터를 뒤져 ‘저스틴 사코가 후회할 16개의 트윗’이란 제목의 기사를 써 올렸다. SNS 공간에서의 한마디가 독이 되어 현실 세계를 관통한 것이다. 이후 저스틴 사코는 회사에서 잘렸고, 각종 협박 멘션에 시달렸다. 존 론슨은 책 출간 이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사람들은 매일같이 잔인하게, 소셜 미디어에 별 고민 없이 농담을 올린 사람들을 조롱거리로 만든다. 난 그 화면 너머 사람의 감정적 피해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그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실직해 있었고, 트위터 사태 이후 해고됐다”고 썼다. 그의 취재에 따르면 근래 트위터상의 공격으로 일상생활에 피해를 본 사람은 수십 명에 달한다.

그릇된 페미니즘 비판은 수정되어야 한다. 팬심을 이용한 노동력 착취가 있다면 고발하는 게 맞다. 하지만 트위터가 공개 처형의 심판대가 되어선 안 된다. 트위터는 때때로 신문고이고, 이따금 브랜드의 광고 창이며, 가끔은 셀러브리티의 셀피 전시장이지만 대부분 우리 모두의 일기장이다. 누구든 마음껏 멘션을 올릴 수 있고, 당연히 실수할 수도 있다. 일정 부분 트위터는 엄연히 개인의 영역이란 얘기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글이라면 ‘페이버릿’ 버튼을 누르고, 싫은 소리라면 지나치거나 해당 멘션의 상대를 ‘블록’하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즐기지 못한다. 동의를 구하고 인정을 갈구한다. 존 론슨은 트위터 조리돌림을 “목적 없는 유희”라 지적하며 “소셜 미디어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다루는 데 맞춰 디자인되어 있다. (중략) 본 적 없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동기 말이다”라고 썼다. 누구나 트위터에 멘션을 업로드할 수 있지만 그 시스템을 작동케 하는 건 ‘좋아요’의 피드백, ‘RT’란 이름의 지지란 얘기다. 관심과 동의, 그리고 RT를 먹고사는 트위터 월드. 그리고 RT를 무기로 조리돌림의 날을 뒤흔드는 사람들. 무엇보다 특정인을 지칭하며 비난을 구하는 멘션은 얼마나 위험한가. 누군가를 폭력으로 몰고 가는 RT는 그저 파시즘에 불과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