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야상별곡

2016.03.17

by VOGUE

    야상별곡

    여군 특집이라도 찍는 걸까?
    만개한 벚꽃 아래 거리는 온통 카키색 천지다.
    올봄에도 멋쟁이 종군기자처럼 야상을 입고 스트리트 룩을 뽐내도 된다.

    엠블럼이 패치워크된 야상은 미스터앤미세스퍼(Mr&Mrs Furs), 허리에 묶은 나비 자수 야상은 발렌티노(Valentino), 발목 스트랩 장식 스웨이드 부츠는 구찌(Gucci).

    계절의 여왕 5월. 밖은 온통 울긋불긋 꽃잔치가 한창인데, <보그> 편집실은 야전 사령부를 방불케 한다. 연미복 스타일로 디자인된 남성용 생로랑 야상, 오버사이즈로 허리를 조일 수 있는 마이클 코어스 야상, 등에 엠블럼이 들어간 스티브앤요니 야상, 카키색 가죽 소재가 멋진 구찌 야상 등등. 올봄 파스텔 컬러의 스프링 코트 대신 카키색 야상이 여전히 우리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요 몇 년 동안 패션 피플들의 멋의 기준은 야상에 맞춰진 지 오래다. 한 때 복학생 선배나 동네 예비군 오빠가 입었던 꼬질꼬질한 야상이 이렇게 신분 상승할 줄이야! 카무플라주를 마주치면 침이 꼴깍 넘어가고, 새로운 카키색 야상에 구미가 당긴다면 당신은 이미 야상 마니아.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할배들과 여행을 떠난 배우 최지우가 입은 페이스 커넥션 그래피티 야상은 그런 충동을 부추긴다. 스키니진에 스니커즈, 그리고 야상이라는 평범하면서 스타일리시한 패션 공식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심어주니까.

    어쨌든 야외 촬영이면 늘 즐겨 입던 야상을 이제 우리 여자들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유니폼처럼 사랑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야상을 어깨에 걸치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는다. 그리고 새로운 야상을 발견하는 순간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눈이 반짝이며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촬영용 제품 픽업을 위해 이태리에서 건너온 미스터앤미세스퍼 매장에 들렀을 때, 풍성한 모피가 후드에 장식된 근사한 야상을 발견했다. 이미 ‘천송이 야상’으로 유명해진 덕분에 단독 매장 안 야상들은 다양한 종류와 스타일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엠블럼이 패치워크된 야상이 눈에 확 들어왔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판다니, 야상의 신분 상승 또한 무전유죄, 유전무죄?

    하지만 스타일 좀 안다는 패션 에디터 입장에서 볼 때, 평범하지 않으면서 특별한 야상을 고르는 건 쉽지 않았다. 미스터앤미세스퍼의 엠블럼 야상을 닮은, 남대문에서 마주친 진짜 군복을 리폼한 구제 야상들은 프리미엄급에 비하면 1/100의 흥미로운 가격대이지만 소매가 너무 길었고, 어떤 건 길이가 어중간하거나 사이즈가 너무 컸다. 아무리 야상이 유행이지만 진짜 군복을 입을 순 없는 일. 남대문은 잊어버리고 하이패션을 기웃거렸다. 우선 촬영장에서 마주친 발렌티노 야상은 근사한 무드가 넘쳤다. 평범한 블루진에 매치하더라도 멋쟁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한 땀 한 땀 수놓인 나비 자수들은 평범한 야상을 한순간에 꾸뛰르급으로 승화시키며 별다른 액세서리 없어도 돋보이게 해줬다. 마크 제이콥스의 다양한 톤의 야상들은 좀더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각 잡힌 제복 스타일이긴 하지만, 동그란 버튼 장식이 견장과 포켓 등 여기저기 장식돼 있어 60년대 무드를 불어넣으며 야상 룩의 또 다른 신세계를 열었다. 골드 견장과 골드 벨트 생로랑의 카무플라주 프린트 재킷을 입자 색다른 스타일링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영화 <지. 아이. 제인>의 데미 무어처럼 ‘기 쎈 언니’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카무플라주 재킷에는 시폰 원피스 같은 여성스러운 아이템과의 조합이 필요했다. 프리미엄 야상으로 거듭난 아미, 이브살로몬, 프로젝트 포체, 그리고 해외 스트리트 패션에 종종 등장하는 엔지니어드 가먼츠나 NSLT의 야상들도 봤다.

    여러 곳을 돌며 특별한 야상들을 만난 후 내 마음은 한 곳으로 기울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 기본에 충실한 M-65(미군이 베트남전에 입었던 야전 상의) 스타일의 야상. 이건 스키니한 진에도, 가죽 팬츠에도, 히피 드레스에도 두루 잘 어울릴 것이다. 5월은 피크닉의 계절이니 들로 산으로 나갈 때 특히 유용할 것이다. 카키색과 카무플라주 야상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전유물이며, 남자들은 야상 입은 여자들을 특히 질색한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패션이고, 그래 봤자 야상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야상을 질색하며 뭐라 하는 남자? 안 만나도 된다.

    에디터
    패션 에디터/ 이지아
    포토그래퍼
    KIM BO SUNG
    모델
    한경현
    스탭
    헤어 / 이에녹 메이크업 / 이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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