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빌려드릴까요?

명품 가방은 물론 결혼식 하객도 대여해주는 세상이지만, 반려동물까지 클릭 한 번으로 빌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가격도 저렴한 데다 간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강아지에겐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

“ 2박 3일 대여 5만원.” “예약 시, 6박 7일 7만원으로 전격 세일!” 쿠팡에 올라온 제주도 렌터카 홍보 문구가 아니다. 장난꾸러기 토이푸들, 얼짱 닥스훈트, 순백색 포메라니안 대여비다. 무료 배송은 아니다. 착불 요금을 내면 퀵 서비스로 ‘안전하게’ 배달돼 원하는 장소에 반려동물이 도착한다. 주말은 물론 비나 눈이 올 때도 365일 배송 가능. 명품 가방은 물론 결혼식 하객도 대여해주는 세상이지만, 강아지까지 클릭 한 번으로 빌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놀랍게도 이들 업체는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반려동물이 ‘유행’처럼 떠오른 2000년대 초반, 유망 사업 아이템으로 등장해 여러 업체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애견 카페나 병원에서 대여해주는 곳도 더러 있다. 지금은 전무한 듯하나, 한때는 고양이를 대여해주는 업체도 있었다.

이들의 타깃은 뚜렷하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는 사람, 키울 수 있을지 테스트해보고 싶은 사람, 외로워서 강아지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화장품 샘플처럼 일단 써보고 구매할 수 있고, 정수기처럼 한 번에 사기엔 부담스러우니 렌털을 통해 경험부터 해볼 것을 권유받는 것이다. 이미 용어부터 강아지들을 먹거리나 액세서리 같은 물건으로 취급하고 있다. ‘방 안에서 카드 결제 가능’, ‘강력 추천’ 같은 쇼핑몰 용어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어서 이 귀요미들을 데려가라고 손짓한다. 현행법상 동물은 사적 재산이니, 애견 대여 사업이 대물·대여업인 게 맞긴 하다. 그래도 이건 뭔가 불편하다.

일본은 동물 대여 종주국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수백 개 업체가 있고, 이미 수요와 공급이 안정적인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 펫숍, 카페 형태는 물론 이동식 전문 트럭도 있다. 산책 전문 대여, 1일 체험 등 형태도 다양하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 토끼, 햄스터, 열대어 렌털도 가능하다.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혹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집들이 손님을 위해, 기타 등등 강아지를 빌리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미국에서는 2007년 플렉스페츠(FlexPetz)라는 업체가 등장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주말에 집에 있는 직장인을 타깃으로 했던 이 업체는 프리미엄 사료와 GPS 추적 장치를 제공하고, 철저한 건강검진과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새로운 가족의 확장’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영국까지 진출했으나 미국에서 동물 대여를 법으로 금지하면서 문을 닫았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연 동물이 대여에 적합한 대상인가? 업체에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의 강아지로 엄선했음을 강조한다. 덧붙여 이 사교적인 강아지들에게 대여란 애견 유치원 가는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공지해두고 있다. 하지만 생각과 정서가 있는 살아 숨 쉬는 동물들에겐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 동물 정신과 전문의 비아동물행동클리닉 김선아 원장은 개체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떤 성격이라도 변화하는 환경은 스트레스가 된다고 말한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을 보면 규칙적으로 생활해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잠을 깨고, 밥을 먹고 놀지요. 대여는 생활 패턴을 깨는 거예요. 개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쉴 공간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화된 편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항상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니 그럴 수가 없죠.” 낯선 상황은 불안을 유발하고, 불안은 많은 문제 행동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몸 떨림, 침 흘리기, 몸의 특정 부분 심하게 핥기, 주변 물건 파괴하기 같은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다. 잠을 푹 자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질병이 생길 확률도 높아진다. 사고나 학대의 위험도 있다. 수의사 제이 조(Jay Cho)는 일정한 장소와 정해진 훈련사를 만나고 다시 주인의 품으로 돌아오는 애견 유치원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를 애견 대여와 비교할 순 없다고 못 박는다.

애견 대여 업체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배송’이다. 지난해부터 법으로 금지된 ‘동물 택배’ 논란을 의식한 듯 업체에선 대여자가 직접 강아지를 데려갈 것을 권하고, 여의치 않을 땐 경차나 다마스 퀵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김선아 원장은 일반 택배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여가 반복되다 보면, 강아지는 차를 타면 곧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고 인식하게 돼요. 한 덩어리로 보는 거죠. 결국 차만 타도 긴장하게 됩니다. 학원 가기 싫은 애들이 학원 차만 봐도 멀미하는 것과 똑같아요.” 벤츠 리무진을 타고 ‘대여길’에 오른다 한들 편할 리 없다. 사람을 잘 따르도록 훈련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의문으로 남는다. 대소변 훈련을 마칠 순 있지만 아무나 좋아하도록 사랑을 훈련받을 수는 없다. 훈련이란 대여자가 불편하지 않기 위한 일방적인 요구다. ‘앉아’ ‘기다려’ 같은 명령에 복종하고, 개인기 몇 가지를 익히는 수준이다. 훈련으로 불안감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대여에 적합하도록 개를 훈련시킨다는 건 사람들의 환상이다.

개를 키워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영국의 ‘borrowmydoggy.com’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개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인근에 사는 견주를 매칭해주고, 서로 적당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개를 맡기는 식이다. 회비는 보험료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사용된다. 처음부터 특정 강아지와 인연을 맺고 산책을 시켜주는 ‘도그 워커’로서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시 보호소에서 강아지 산책 봉사 활동을 하는 방법도 있다. 입양을 기다리는 유기견들을 임시 보호하며 강아지를 키워보는 것도 가능하다. 애견 대여와의 차이점이라면 직접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청담동 펫숍에서 갓 관리를 끝낸 듯한 눈부신 외모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유기견들은 10일 이내에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 한다. 임시 보호는 이들 강아지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강아지 공장이 돌아가는 나라에서 애견 대여 금지법이 있을 리 없다. 사각지대도 아니다. 아예 규정이 없다. 김선아 원장은 치료 목적으로 강아지를 대여한다는 개념 자체도 잘못 자리 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테라피견을 활용한 동물 매개 치료도 돈을 벌기 위한 사업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동물 매개 활동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한 반려견과 반려인이 치료 활동에 적합한지 테스트를 받고 둘이 함께 봉사 활동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치료 테라피 센터를 차리고 일종의 관리자가 개를 데리고 치료를 나가 돈을 벌어오는 건 서커스와 똑같아요.” 돈을 내고 빌리지 않아도 강아지와 더불어 살 수 있고, 강아지를 내세워 돈을 벌지 않아도 대여할 물건은 차고 넘친다.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캠페인은 슬로건 하나를 추가해야 한다. ‘빌리지 마세요, 빌려주지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