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카페

한때 파리의 카페는 지식인과 예술인들로 가득했고, 자유로운 발상과 대화가 담배 연기와 함께 홀을 채웠다.
패션계는 지금은 사라진 이 파리의 상징적인 문화에 오마주를 표하고 있다.

그랑 팔레에 세워진 샤넬의 브래서리 가브리엘

앞치마를 두른 두 명의 웨이터, 아니 가르송이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체리목과 유리로 된 클래식한 문의 황동 문고리를 잡고 있다. 낯익은 얼굴인데…. 조금 전 쇼장 근처 카페에서 내게 에스프레소를 가져다 준 그 가르송? 설마! 지난 시즌 페미니스트 무리가 시위를 벌였던 샤넬대로의 콘크리트 바닥에는 모자이크 타일이 깔리고 높고 둥그런 바와 스툴, 사각 테이블, 빨간 가죽 소파가 들어섰다. 니렝스 스커트에 미디 힐의 투톤 슬링백을 신은 고상한 차림의 모델들은 뱅그르르 회전문을 돌리며 들어와 도도한 표정으로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자신의 이름이 쓰인 테이블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거나 턱을 괸다. 식당의 가장자리를 빼곡히 채운 2,000여 명의 관객들 눈앞에는 ‘진짜’ 가르송들(얼굴마담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만 빼고)이 진지한 표정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아리따운 모델 아가씨들에게 주문을 받거나 하얀 도기 커피 잔을 나르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쇼가 열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문을 열었으니, 샤넬 하우스가 오픈한 ‘가브리엘 식당(Brasserie Gabrielle)’은 세상에서 가장 짧게 운영된 파리의 카페 겸 식당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쉬웠죠.” 프랑스를 향한 오랜 질타(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인한)에 질린 칼 라거펠트는 2015 가을 컬렉션에서 가장 프랑스적인 것을 찬양하기 위해 카페 문화, 즉 카페 소사이어티를 택했다. “만약 내가 프랑스인이었다면 국수주의자 같거나 멍청해 보였겠지만, 난 외국인이니까요.”

북카페로 꾸며진 소니아 리키엘 매장. 윈도에는 봄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카페에서 책을 읽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북카페로 꾸며진 소니아 리키엘 매장. 윈도에는 봄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카페에서 책을 읽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이번 시즌 카페에서 ‘파리다움’을 찾은 건 샤넬뿐만이 아니다. 줄리 드 리브랑은 2015 가을 소니아 리키엘 쇼를 위해 생제르맹 거리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헤미안풍의 북카페로 변신시켰다.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이 <패션의 A to Z>나 아동용 이야기 책들을 쓴 작가일 뿐 아니라 매장 윈도를 책으로 꾸미곤 했다는 것은 요즘 젊은 패션계 사람들에게는 낯선 사실이다. 리키엘 여사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난 생제르맹 데 프레의 에디터, 작가들과 친구 사이죠.” 여기서 영감을 얻은 드 리브랑은 도도한 파리지엔느답게 쇼 노트에 노골적인 문구를 추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

카페 소사이어티를 풍자한 바롱 드 카브롤의 일러스트

카페 소사이어티를 풍자한 바롱 드 카브롤의 일러스트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주목한 ‘카페 소사이어티’는 파리, 뉴욕, 런던의 패셔너블한 카페와 레스토랑을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무리를 뜻한다. 장 폴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부아, 알베르 카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아지트였던 ‘레 두 마고’는 이 당대의 ‘록스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로 늘 북적거렸다. 길 건너 ‘카페 드 플로르’는 그에 비해 한적하고 패셔너블한 분위기가 풍겼는데,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비롯한 초현실주의자들과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 트루먼 카포티가 죽치고 앉아 하루에 수십 잔의 커피를 들이켰다. 코코 샤넬, 장 콕토,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했던 것처럼 ‘막심’에서 왁자지껄 사교를 즐겼다.

1 무슈 디올의 바 재킷. 2 멋지게 차려입은 카페의 커플을 그린 포스터, 3 카페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 4 영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1950년대 카페 풍경, 5 1930년대 프랑스 노천 카페의 여인들, 6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7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 콕토와 코코 샤넬.

1 무슈 디올의 바 재킷. 2 멋지게 차려입은 카페의 커플을 그린 포스터, 3 카페의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 4 영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1950년대 카페 풍경, 5 1930년대 프랑스 노천 카페의 여인들, 6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7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 콕토와 코코 샤넬.

1 1920년대 테라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플래퍼들, 2 1990년대 카페의 모습이 담긴 영화 <엠파이어 레코드>의 한 장면, 3 플라자 아테네 앞에서 포즈를 취한 디올 모델, 4 19세기 카페 소사이어티의 장면을 담은 르누아르의 <르 물랭 드 라 갈레트>, 5 1930년대 세베르제 형제가 촬영한 카페의 여인. 

1 1920년대 테라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플래퍼들, 2 1990년대 카페의 모습이 담긴 영화 <엠파이어 레코드>의 한 장면, 3 플라자 아테네 앞에서 포즈를 취한 디올 모델, 4 19세기 카페 소사이어티의 장면을 담은 르누아르의 <르 물랭 드 라 갈레트>, 5 1930년대 세베르제 형제가 촬영한 카페의 여인. 

21세기의 우리는 카페마다 각각의 소사이어티를 공고히 구축했던 과거보다 훨씬 더 커피와 차에 익숙하다. 젊은 여자들은 스타벅스의 라테와 모카에 중독됐고, 캔커피와 커피 믹스를 선호하던 중년 아저씨들도 이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입가심한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 커피가 대중화되면서 그들만의 리그였던 카페 소사이어티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담배를 피우며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 앉아 창의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무리들 대신 카페 테이블을 차지한 건 각자 자신의 노트북을 상대하고 있는 고독한 사람들. 런던의 수많은 인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컨설팅한 카페 전문가 제레미 킹은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사람들은 문화적, 지적 교류를 위해 어디서 사람을 만날지에 대해선 큰 의미를 두지 않죠. 그리고 대부분의 장소는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이미 차지해버렸어요.”

만약 카페 소사이어티 문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뜨내기 관광객이나 집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프리랜서들 대신 마르크 레비나 알랭 드 보통, 다프트 펑크와 사라 문이 한가롭게 노닥거리고 있을 것이다. 모두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채 인터넷을 검색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하느라 타인의 존재나 생각엔 관심도 없는 지금과는 달리. 패션계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카페 소사이어티 문화가 필요한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