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

나이 들어 부모와 함께 산다는 건 미니시리즈 대신 바둑 TV를 봐야 하는 일이다.
부모님의 집사이자 보호자로 갈아타는 변화이기도 하다.
이 불편한 동거를 기꺼이 선택한 이들은 비로소 부모라는 사람이 보인다고 말한다.

마스다 미리의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는 ‘평균연령’이라는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아버지의 일흔 번째 생일, 생일 축하 건배를 하던 아버지는 갑자기 가족의 나이를 계산한다. ‘내가 70세, 당신이 69세, 히토미가 40세. 평균연령 환갑인 가족이네!’’ 가족의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간다. 엄마는 야근한 딸의 어깨를 주무르다가 마흔 넘은 노처녀라고 놀리고, 셋은 수박이나 양갱을 나눠 먹으며 스포츠 경기를 보고 수다를 떤다. 어린 시절 푸딩 먹는 습관을 기억하는 엄마, 여행 간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의 저녁상을 차리는 딸. 만화는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저런 하루를 보여주다가 중간중간에 영정 사진을 준비하는 아버지, 보험에 대해 이제는 아내에게 묻고 싶어 하는 남편, 딸이 결혼하길 바라지만 이대로 셋이 살고 싶기도 한 엄마의 마음도 슬쩍슬쩍 보여준다.

사실 나이 든 부모님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유독 달라 보이는 건, 독신인 마흔 살 딸이 부모님 집에 함께 사는 거주 형태 때문이다. 비혼 비율이 높아진 요즘은 줄어드는 ‘4인 가족’의 자리를 ‘1인 가구’와 ‘고령화 가족’이 대신한다. 마스다 미리는 요즘 우리 사회의 키워드인 ‘고령화 사회’ ‘저출산’ ‘미혼’ ‘만혼’ 등을 생각하다 자연스레 ‘평균연령이 높은 가족’을 떠올렸다고 한다. 영화로도 개봉된 소설 <고령화 가족>에선 평균연령 47세를 자랑하는 자식들이 엄마의 연립 빌라에 바글바글 모여들어 삼겹살을 굽고 같이 된장찌개를 먹는다.

나이 찬 자식이 부모와 함께 사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이혼이나 출산, 사업 실패 등으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해 다시 둥지로 돌아오거나,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의 늙어감을 느끼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곁을 지키거나, 어쩌다 보니 집을 떠날 공식적인 이유(이를테면 ‘결혼’ 같은)가 생기지 않아 부모 옆에 남는다. 늙은 부모와 나이 든 자식의 동거는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거두는 관계가 아니다. 부모로부터 심리적, 경제적 독립을 이뤘지만 부모와 함께 살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동거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다거나 라면을 먹고 싱크대에 냄비를 던져두면 폭풍 같은 잔소리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고도 동거 상태를 유지하는 어른스러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의 방식이 확고한 성인들이 같이 모여 사는 공간에선 이런 저런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5년간 독립해서 살다가 집밥이 그리워 엄마 집으로 들어간 모 월간지 기자는 ‘TV 다시 보기’에 돈을 쓴다는 이유로 또다시 집을 나갈 뻔했다. 물 틀어놓고 샤워하기, 냉장고 문 자주 여닫기, 늦은 귀가 시간. 서른아홉 살 난 딸이 들어야 할 잔소리는 부산항 컨테이너들을 채우고도 남았다. 결국 그녀는 모든 걸 부모님에게 맞춘다는 원칙을 스스로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VOD를 볼 때마다 어머니한테 꼬박꼬박 돈을 냈고, 샤워 시간은 25분에서 10분으로 줄였다. “엄마 아빠 두 분이 살던 공간에 내가 끼어든 셈이니 무조건 맞춰야 했죠. 대신 최대한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 서로 부딪치는 시간을 최소화했어요.” 여기까지는 결혼하거나 룸메이트를 들여도 겪을 수 있는 조정의 단계다.

어느 순간부터 머리 큰 자식은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역할이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와무라 히토미처럼 올해 나이 마흔을 찍은 한 대학 강사는 자신을 ‘집안의 집사’라고 표현했다. “언젠가부터 집안의 자잘한 문제가 모두 내 차지가 되더라고요. 퇴근길 간식 심부름은 기본이고, 여행 상품 알아보기, 계좌 송금, 엄마 생필품 인터넷 쇼핑까지… 비서가 따로 없다니까요. 게다가 스마트폰 사용법은 아무리 설명해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물어보시니, 귀찮았다가 화가 났다가 미안했다가 감정이 널을 뛰죠.” 신발 끈매기, 자전거 타기를 비롯한 세상 사는 법을 알려주었던 슈퍼맨 같던 부모님이 갑자기 힘없는 노인처럼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시점이다. 받기만 하던 자식 입장에서 이 같은 역할의 전이는 당황스럽고 어색하기만 하다.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산다는 건 부모의 나이 들어감을 하루하루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태어나 피어나는 과정은 신비롭고도 놀라운 일의 연속이라 기꺼이 지나가지만, 시들고 소멸해가는 과정은 그 무게를 드러내고야 만다. “주중에 동생이 아기를 엄마네 집에 맡기는데 사실 동생은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같이 살다 보면 엄마가 조카들을 보다가 힘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숨을 헉헉 내쉬는 모습을 봐요. 이제 물리적으로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면 이젠 보호해줘야 할 작은 새같이 느껴져요.” 엄마와 함께 조카를 보기도 한다는 대학 강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어떤 부모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시간은 부모의 권위를 덜어내고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던 평형 저울은 비로소 일직선으로 올라온다. 시집가라는 잔소리가 멈추고, 자식이 서 있는 자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한 친구는 언니 오빠가 모두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나니 엄마도 이제 함께 늙어갈 자식이 필요해 보이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하면 더할 나위 없이 반기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이다. 그제야 친구는 신문지 한 장도 못 버리고 쌓아두기만 하는 엄마의 살림 습관에 불평하지 않게 됐다. 일흔 넘어서도 엄마 없이는 밥 한 끼 못 드시는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느꼈을 평생의 답답함에 대해 생각했다. 흔히 자식이 속 썩일 때마다 엄마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결혼해서 너 같은 자식 낳아보면 알 거다”라는 말. 서로의 입장이 되어서 비로소 깨닫는 부분도 있지만, 어른이 되어 부모의 인생을 곁에서 지켜보는 걸로도 우리는 많은 걸 이해하게 된다.

배우 신하균은 한 인터뷰에서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생활이 좋다고 말했다. 같이 사는 걸 일단 부모님이 좋아하고, 가족과 사는 일상이야 누구든 비슷하지 않겠느냐며. 앞서 부모와 동거하는 경험을 털어놓은 이들 모두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생각하며 산다. 언젠가는 끝이 날 관계라는 걸 알기에 다시 시작한 동거.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해 잘 지내다가도 문득 해 질 무렵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 아빠와 걷던 산책길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아서다. 나의 모든 시절을 기억하는 세상의 유일한 사람들. 나이 든 부모와 산다는 건, 함께하는 기억을 조금 더 늘리는 일이다. 비록 그 기억의 BGM이 잔소리일지라도. 다 큰 어른들이 모인 고령화 가족은 그렇게 각자의 마음에, 집 안에 온기를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