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라는 모험을 택한 킬리안 헤네시

모두가 부러워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평탄한 인생을 거부한 사내가 있다. 안정된 코냑 사업 대신 향수라는 모험을 택한 킬리안 헤네시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VOGUE KOREA(이하 VK) 코냑의 명가 ‘헤네시’의 손자가 만든 향수라니! 대체 향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었나?

KILIAN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의 졸업논문 주제는 ‘향의 의미론’이었다. 논문을 제대로 쓰기 위해 조향 학교에 들어갔는데 입학 첫날부터 운명처럼 향을 가지고 노는 행위에 완전히 매료됐다. 돌이켜보면 내게 코냑이라는 울타리는 편안한 둥지이면서도 부담스러운 가시였다. 나는 가족 경영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VK 퍼퓸 메이커들 대부분 유년 시절 경험한 향을 벗 삼아 향수를 만든다. 당신도 그러했나?

KILIAN 몇몇 향수에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설탕 냄새, 알코올 냄새, 그리고 코냑이 제조되는 통나무 향이 들어 있는 걸로 봐서 아니라곤 말 못하겠다. 모든 제작 과정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VK 악마와 즐거운 한때, 타락한 소녀, 어둠으로의 회귀 등 향수에 붙인 이름이 굉장히 서정적이다.

KILIAN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이 킬리안은 총 5개의 컬렉션으로 이루어지는데 컬렉션 하나당 최대 10개의 향수로 구성된다. 여기서 컬렉션이란 후각의 이야기책인데 한 예로 ‘타락한 소녀(Good Girl Gone Bad)’는 ‘선과 악의 정원에서(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라는 컬렉션의 일부분이다. 타락한 소녀는 눈치챘다시피 아담과 이브의 이브다.

VK 바이 킬리안은 남녀 향수의 구분이 없다. 의도한 바인가?

KILIAN 정확하게 맞혔다. 바이 킬리안은 유니섹스 향을 표방한다. 향에 성별을 나누는 건 지극히 마케팅적인 접근이라 개인적으로 없어졌으면 하는 문화다.

 

바이 킬리안이 10 꼬르소 꼬모 청담에 단독 론칭한다. 화이트 클러치 박스의 ‘포비든 게임스’는 바이 킬리안의 베스트셀러.

바이 킬리안이 10 꼬르소 꼬모 청담에 단독 론칭한다. 화이트 클러치 박스의 ‘포비든 게임스’는 바이 킬리안의 베스트셀러.

 

VK 그럼에도 남자들이 유독 반응을 보이는 제품이 있을 텐데.

KILIAN 판매율로 볼 때 스트레이트 투 헤븐(Straight to Heaven), 백 투 블랙(Back to Black), 인톡시케이티드(Intoxicated)가 잘 나간다.

VK 향을 직접 맡아보니 바이 킬리안의 전속 조향사 칼리스 베커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는다.

KILIAN 그녀는 디올의 상징적인 향수 ‘쟈도르’를 탄생시킨 스타 조향사다. 함께 일한 지 올해로 8년이 됐는데 바이 킬리안의 첫 번째 컬렉션을 준비할 때 처음 만났다. 미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무려 50종이라는 향의 조합을 보내왔고 그 안에서 향을 이리저리 맞춰보니 짠 하고 탄생한 작품이 ‘누아르 컬렉션(L’oeuvre Noire)’이다. 우린 잘 맞는다. 그녀를 가족처럼 믿고 의지한다.

VK  화려하고 반짝이는 향수병 디자인은 바이 킬리안의 매력이다. 디자인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KILIAN 컬렉션을 시작하기 앞서 향수병의 모양, 디자인, 색깔,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 보드를 만든다. 주로 내가 집중하는 시대는 190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다. 당시의 영감을 21세기에 맞춰 내 방식대로 재해석해 완성한다.

VK  클러치를 활용한 디자인은 정말 끝내줬다. 당신의 아이디어인가?

KILIAN 이건 우리 부부의 에피소드를 통해 완성한 역작이다.(웃음) 장소는 프랑스 파리였고 저녁 약속을 앞두고 있었다. 뉴욕 집에서 클러치를 챙겨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던 아내의 눈에 새까만 향수 박스가 들어왔고 클러치인 것처럼 들고 나갔다. 그녀의 이런 앙큼한 행동이 아이디어로 발전했고 멋진 결과물이 탄생했다.

 

블랙 클러치 박스의 ‘인톡시케이티드’는 바이 킬리안의 베스트셀러.

 

VK 병 속에 든 향수 이외에 목걸이, 팔찌 등 센티드 주얼리 라인도 굉장히 흥미롭다.

KILIAN 어릴 적부터 시각적인 향수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삭막한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 같은 거였다. 우리는 SNS를 통해 인생을 배우지 않나. 향수가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톡톡 튀는 개성이 필요하다.

VK 뷰티 강국 한국은 안 들어온 향수 브랜드가 없을 만큼 포화 상태다. 바이 킬리안이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KILIAN 파티장엘 갔다고 치자. 누군가 나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면 쥐구멍에 숨고 싶지 않겠나. 향수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향수를 만드는 데 있어 재료의 조합도 중요하지만, 재료만 생각하다 보면 기존에 나온 향수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난 그래서 향수를 만들 때 재료와 더불어 ‘감정’이란 요소를 첨가한다. 기쁨과 슬픔, 욕망과 쾌감 등 향으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면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지 않나. 분명히 말하지만 난 올바른 사람이 아니다. 정의와 불의의 경계에 서서 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즐긴다. 때로는 나쁜 짓을 통해 달콤한 쾌감을 경험한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VK 한국에 온 적이 있나?

KILIAN 불행히도 아직까진. 서울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물론 바이 킬리안이 단독 입점된 10 꼬르소 꼬모 청담부터!

VK 오게 되면 <보그 코리아>를 찾아달라. 마지막으로 2015년 기대할 만한 바이 킬리안의 새로운 이슈가 있다면?

KILIAN 올가을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바로 홈 프래그런스 라인! <보그 코리아>에 처음 공개하는 만큼 많은 기대와 응원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