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아제딘 알라이아와의 인터뷰

2016.03.17

by VOGUE

    아제딘 알라이아와의 인터뷰

    디자이너들의 롤모델이자, 디자이너 위의 디자이너라 불리는 아제딘 알라이아.
    10 꼬르소 꼬모 서울 아카이브 전시를 기념해 서울에 온, 살아 있는 패션 전설과 〈보그〉의 두 번째 만남!

    레이디 가가가 공식석상에서 어떤 의상을 입는지는 늘 관심의 대상이지만, 이번 오스카 시상식 드레스는 그야말로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가 그녀만을 위해 만든 첫 오스카 드레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에도 알라이아 옷을 향한 가가의 애정이 여러 번 목격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단 하나뿐인 꾸뛰르 드레스는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그러고 보면 그레이스 존스, 마돈나, 나오미 캠벨, 프랑카 소짜니, 카린 로이펠트, 마리옹 코티아르, 미셸 오바마, 카를라 브루니 등 패션, 음악, 영화, 정치계까지 망라해 알라이아의 팬을 자처하는 유명 인사는 한둘이 아니다. 알라이아 드레스와 슈즈를 신는 건 어쩌면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칼 라거펠트의 패션, 정신 상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평생 가위를 직접 잡아본 적도 없을 것이다!” “안나 윈투어는 훌륭한 사업가지만 세련된 취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먼 훗날 누가 그녀를 기억이나 할까?” 인터뷰에서 이런 거침없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이도 패션계에서 알라이아밖에 없다. 60여 년 전, 튀니지를 떠나 파리로 향할 때만 해도 자신이 이런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작은 거인 알라이아의 시작은 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챤 디올과 5일, 기라로쉬와 두 시즌, 티에리 뮈글러와 함께 몇 년을 보낸 젊은 알라이아는 70년대 후반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20년 동안 그레타 가르보를 비롯한 고객들에게 드레스를 맞춰준 바로 그 아파트!). 그리고 81년 첫 기성복 컬렉션을 발표해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알라이아는 ‘The King of the Cling(밀착 드레스의 제왕)’이라 불리기 시작한다. 패션계의 질풍노도식 요동과 부침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가을 컬렉션까지 그는 아틀리에, 부티크, 쇼룸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파리 마레 지구의 아지트에서 자신만의 스케줄에 따라 쇼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30년 넘게 이어진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는 전 세계 유행의 도시에서 크고 작은 패션 전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그 알라이아의 아카이브 드레스 26점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6년 전, 10 꼬르소 꼬모의 1주년을 기념해 알라이아 컬렉션 중 상징적인 드레스들을 한지로 재해석해 알라이아와 까를라 소짜니를 깜짝 놀라게 했던 <보그> 스타일리스트 서영희는 이번 전시를 위해 또 다른 오마주 작품을 만들었다. 알라이아의 2003년 지퍼 장식 저지 드레스와 1986년 골드 후드 드레스에서 전통 한복과의 공통점을 발견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공식 오프닝 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보그>는 10 꼬르소 꼬모 카페에서 이 위대한 패션 전설과 잠시 인터뷰를 가졌다. 10 꼬르소 꼬모 서울 오픈 당시 이곳을 방문한 알라이아와 함께한 2008년 인터뷰 이후 7년 만이다. 놀랍게도, 80세를 눈앞에 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빛나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10 꼬르소 꼬모 3층 특별 전시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제딘 알라이아의 아카이브 피스들. 80년대의 초기작을 포함해 26점의아름다운 드레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VOGUE KOREA(이하 VK) 서울 방문은 두 번째죠? 여전히 매력적인가요?

    AZZEDINE ALAÏA(이하 AA) 공식적으로는 두 번째지만, 사실 남몰래 한 번 더 방문했어요. 서울은 늘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느낌이 들어 반갑습니다. 계속 오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확실히 있죠. 한 가지 더 서울만의 장점이 있다면, 여성들이 무척 아름답다는 겁니다. 단연 아시아 최고의 미모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VK 이번 전시를 위한 26점 작품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는지 궁금하군요.

    AA 그건 전적으로 까를라의 의견에 따라 선정됐습니다. 그녀의 말이라면 100% 믿고 맡기는 편이죠.

    VK 방금 전에도 까를라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봤어요.

    AA <보그> 포트레이트 촬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시스턴트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을 까를라에게 살짝 보여줬죠. 30년 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린 잘 통했어요. 이젠 정말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느낌이죠. 그녀는 정말 대단한 여성이에요. 늘 의지가 되는 친구입니다.

    VK 그녀가 고른 26점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겠죠?

    AA 물론 26점 모두 마음에 듭니다! 어느 하나를 고르기란 힘들죠. 가죽 위에 메탈 스터드를 박은 초기작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VK 만든 지 30년도 지난 의상들이 있는데 보존 상태가 무척 훌륭한 것 같아요.

    AA 대부분 작품을 두 벌씩 따로 보관해두고 있죠. 연도별로 꼼꼼히 정리해서 아카이브를 완벽하게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VK 한지로 만든 새로운 오마주 작품을 봤나요? 당신의 저지 드레스가 한복과 닮았다는 것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해요.

    AA 제 옷과 한국의 전통 의상 한복을 연결시킨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무척 흥미로운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오마주 작품이라는 것을 떠나 하나의 작품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VK 이번 전시에 포함된 룩을 비롯해, 모든 컬렉션을 패션 위크 스케줄과는 별개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A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쇼를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을 때 만들어서 내가 공개하고 싶을 때 공개하고 있죠. 이번 가을, 겨울 컬렉션 역시 파리 패션 위크가 끝난 후 따로 선보였어요.

    VK 이번 컬렉션은 프린지가 눈에 띄었어요.

    AA 이때까지 해왔던 것의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 시즌 특별한 주제를 정하고 디자인을 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모든 시즌이 연속적인 것이고, 하나의 커다란 컬렉션의 일부인 것이죠. 이번에는 프린지를 통해 표현됐을 뿐입니다.

    VK 여성의 보디라인을 하나의 조각품처럼 구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당신이 언급한 커다란 컬렉션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AA 조각을 전공했고, 한때 조각가를 꿈꿨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의 몸 위에 실루엣을 조각해 가는 느낌이죠.

    VK 80년대 그레이스 존스, 90년대 마돈나, 그리고 최근 레이디 가가까지. 늘 최고의 뮤지션들이 당신의 드레스를 원합니다.

    AA 디자이너들은 종종 뮤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저는 이들과의 관계를 인연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항상 셀러브리티들이 먼저 찾아와 인연이 시작되니 고마운 일이죠. 레드 카펫 드레스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뮤지션들의 경우엔 앨범의 컨셉 자체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특히 레이디 가가는 굉장히 똑똑한 친구예요. 아직 어리지만 무척 성숙하죠. 파리 작업실에 자주 놀러 와서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돌아갑니다. 이번 오스카 드레스 역시 수많은 만남과 대화의 결과로 탄생됐죠. 그녀의 스타일리스트인 브랜든 역시 놀라운 인물입니다. 보통 그 정도 톱 셀러브리티의 스타일리스트는 콧대가 높고 요구 사항이 많은데 브랜든은 전혀 그런 면이 없고 인간적이죠.

    이번 전시를 기념해 스타일리스트 서영희는 새로운 알라이아 오마주 룩을 준비했다. 2003년 작 알라이아 저지 드레스와 전통 장옷의 만남!

    VK 당신 앞에서 콧대가 높은 스타일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AA 종종 무작정 협찬 가능한 드레스를 보내라고 연락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입을 당사자가 직접 파리 아틀리에로 찾아오기 전에는 절대 드레스를 줄 수 없다고 답변을 보내죠. 하하! 대화를 나눠 어떤 드레스가 어울릴지 결정하고 직접 핏을 맞추는 것은 무척 중요한 과정입니다.

    VK 작년 10월 파리에서 애플 워치 론칭 디너를 주최하기도 했는데, 이런 디지털 기술이 패션계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요?

    AA 매년 상상 초월의 디지털 신기술이 새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패션을 제대로 하려면 단지 패션에만 관심이 있어선 안 되고 예술, 문화,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패션 디자이너들도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재빨리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지금은 기술의 역사가 패션의 역사보다 훨씬 앞서가는 느낌이죠. 패션은 약간 정체돼 있는 것 같아요.

    VK 그렇다면 ‘알라이아와 애플 워치의 협업’ 같은 놀라운 소식을 기대해봐도 좋을까요?

    AA 당장 계획된 것은 없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 같네요. 기대해주길! 그 전에 6월쯤 첫 향수를 론칭할 예정입니다. 이미 케이스까지 모든 것이 준비됐죠.

    VK 케이스는 당연히 아름답겠죠? 줄리안 도세나, 마르코 자니니, 지암 바티스타 발리 등 이때까지 인터뷰한 디자이너들이 모두 당신을 롤모델로 손꼽았어요.

    AA 고마운 일이네요. 요즘 패션계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승승장구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지금처럼 무자비한 컬렉션 스케줄에 맞춰 디자인을 하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나오기 힘들죠. 모두들 부담을 많이 느낄 거예요. 이들 모두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VK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AA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건, 여성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거예요. 여성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여성을 위한 진정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디자인할 수 있거든요!

    VK 진정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AA 아름다운 여성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을 때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즉 두 가지 아름다움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이때 아름다운 드레스보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여성이죠!

    VK 아름다운 여성들뿐 아니라, 멋진 남성들을 위한 남성복을 만들 생각은 없나요?

    AA 그럴 겨를이 없어요. 여성복 컬렉션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쉴 틈이 없죠. <피가로의 결혼>을 비롯한 오페라 무대의상으로 남성복을 만든 적이 있지만, 기성복으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VK 당신의 아카이브 컬렉션도 엄청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의 의상도 수집한다고 들었어요.

    AA 꼼데가르쏭, 준야 와타나베, 크리스찬 디올, 발렌시아가, 비오네, 폴 푸아레 등 소중한 작품들이 포함돼 있죠. 50년대 말, 파리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지난 60년 동안 패션계에서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해왔습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데, 그 중 일부라도 제 의상 컬렉션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VK 언젠가 <헤럴드 트리뷴>은 당신을 ‘한 세대의 드레스를 정의했고 패션의 혁명이 됐다’고 표현했어요. 스스로는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AA 현실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던 디자이너, 혹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오늘 <보그> 인터뷰를 위해 당신을 만난 것도 새로운 배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VK 당신이 늘 열정적인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나요?

    AA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가령 다음번에 서울을 방문했을 땐 모든 여자들이 알라이아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하하! 작업을 할 때 늘 여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드레스 하나로 한 여자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드레스를 만들고 싶어요.

      에디터
      임승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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