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열풍, 어디까지 갈까?

거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꿀 유행이 호기심에서 중독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도한 유행이 낳은 맥락 없는 변종도 부지기수다.
과자의 맛에서 언어까지 점령한 꿀. 과연 어디까지 갈까?

“허니 허니, 얼마나 날 흥분케 하는지, 아하, 허니 허니.” 아바의 명곡 ‘허니 허니’에서 애타는 그것이 달콤한 꿀은 아니지만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가사의 의미가 금세 와 닿는다. 열렬히 사랑하거나 미쳤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집단 꿀 중독 사태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과자만 놓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디저트뿐 아니라 요즘 웬만한 먹거리는 ‘허니’ 표를 달고 달콤한 전쟁이 한창이다. 여기엔 뷰티 업계도 합세했다. 주춤하던 꿀 라인을 부활시켜 꿀 피부의 기적을 앞다퉈 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말로 영향력을 확장한 꿀은 가장 인기 있는 유행어로 자리매김했다. 기원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온 존재이건만 전 국민이 신세계라도 발견한 듯 들떠 있다. 성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1억만 리 너머라고 했으나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 한반도가 바로 그 땅이다.

허니 드림에서 깨어나지 못한 식품업계에서 꿀은 금이고, 금이 꿀이다. 중심에는 식을 줄 모르는 원조의 인기가 있다. 얼마 전 허니버터칩은 인터파크 ‘다이나믹 프라이스’ 이벤트에서 6시간 동안 20봉지가 판매됐는데, 원가의 다섯 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또 인터넷에 떠도는 허니 과자 계보에 따르면 원조인 꿀꽈배기가 아닌 허니버터칩이 추앙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한편 뒷북과 짝퉁의 힘도 만만치 않다. 물량 공세를 선택한 10종이 넘는 비슷한 과자가 말만 슬쩍 바꾼 채 즐비하다. 게다가 허니 아몬드, 허니 아이스, 허니 푸딩, 허니 라떼, 허니 주스, 허니 롤케익, 허니 호떡까지 자매도 아닌 사촌 식품이 줄줄이 유행에 합류했다. 신성한 치느님과 단짝 맥주마저 꿀을 넣어 허니 치맥으로 탄생하니 야식도 피해갈 수 없다. 덕분에 기름과 소스에 가려져 있던 꿀이 마트 가판대에 단독으로 놓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제 원조와 짝퉁 시비는 중요하지 않다. 꿀이냐 아니냐가 문제다.

애정을 뛰어넘어 하드 코어로 향하는 꿀 타령이 단순히 SNS만의 영향일까? 맛 유행의 흐름에서 또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새빨간 고추를 떠올려보자. 200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전 국민의 혀는 불구덩이 속에 있었다. 불닭을 이은 야심작 불닭볶음면이 탄생하고 짬뽕과 떡볶이는 어느 때보다 극렬하게 매웠다. 족발과 돈가스도 고추 폭탄을 달고 나왔다. 피클 대신 할라피뇨를 찾는 손님도 늘었다. 인내는 맵고 열매는 달았으니 ‘도전!’에 성공한 빈 그릇 인증샷이 난무했다. 위가 화산처럼 부글거리고 관자놀이가 짜릿해지는 통각의 자극을 힐링이라 착각했다. 그러던 2014년 9월, 고통에 가려졌던 단맛이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고추, 바비큐, 마늘, 치즈 맛이 지배하는 메이저리그에 꿀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부드러운 버터와 손잡아 괜찮은 콤비를 이뤘다. 빨갛던 포장지는 곧 노랗게 바뀌었고, 고추 대신 앙증맞은 꿀벌 몇 마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낮과 밤이 오가듯 꿀의 시대가 도래했다. 매운맛을 무너뜨린 강력한 힘을 지닌 채.

아무리 꿀이 고추를 평정했다 하더라도 단순히 맛 유행으로 퍼졌다면 복제 상품이 들끓은 탓에 금방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광풍의 원인은 무의식이 표출된 접두사 ‘꿀’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원래 꿀은 군대 용어인 ‘꿀빨다(쉬운 일을 하다)’와 누리꾼들이 애프터스쿨 멤버 유이의 허벅지를 ‘꿀벅지’라 부른 것으로 유행 전부터 사용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다른 속어의 뉘앙스가 훨씬 강했다. 그러나 다시 등장한 꿀은 무한 긍정의 수식어로 변했다. 감각과 심리를 건드린 허니 과자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일찍이 한국인이 얼마나 맛을 섬세한 언어유희로 표현하길 좋아하는지 이어령 교수는 “우리처럼 먹는 말을 다양하게 쓰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먹는다’는 것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문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먹는다’라는 표현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한국인은 말에도 맛을 곧잘 담아낸다는 얘기다. 이렇듯 강력한 꿀 유행은 우리 문화의 특성과 맞물려 금세 사라질 수 없는 운명이 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쓰던 단어는 꿀 중독 사태에 큰 힘을 보탰다.

과자에서 허니버터칩이 유행의 중심이었다면 말에는 ‘꿀잼’이 있다. 입에 착착 붙는 중독성 강한 이 단어의 등장 이후 몇몇 감탄사는 점유율을 잃었다. 꿀과 경합하던 ‘빅’은 초반 레이스에서 탈락했고, 무슨 일이든 다 갖다 붙여 쓰던 ‘대박’은 최대 피해자 신세가 됐다. 꿀팁, 꿀찬스, 꿀직업, 꿀잠, 꿀성대 등 ‘매우 좋은’의 의미는 꿀이 상당 부분 가로챘다. 긍정적인 의미 덕분에 인터넷 언어는 물론 디지털 언론까지 부담 없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또 다른 유행어 ‘핵’이 붙으면서 효과는 배가 됐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신어 334개를 발표했는데 뇌섹남과 더불어 ‘핵꿀잼’이 대표적인 예로 꼽혔다. 대세임이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물론 일각에선 존재 이유가 모호한 변종이 넘쳐나면서 꿀의 시대가 곧 저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반적인 유행의 흐름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본질을 잃은 사용은 종말의 징조니까. 예를 들어 ‘허니 불타는 볶음면’ 같은 맛의 기준이 애매한 상품의 등장과 허니버터칩 봉지를 프린트한 쿠션, ‘허니버터 빌라’라고 홍보하는 황당한 부동산 광고, 예능에서 지어낸 허니 버터 부부는 맥락을 찾을 수 없다. 방향을 잃은 유행이다. 하지만 신기한 건 이런 난잡한 상황에서도 꿀 바른 상품과 언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꿀이 가진 긍정성 때문일까? 아니면 금을 연상하는 고유의 색이 만든 환상 때문일까? 겉보기엔 막장으로 치닫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울려 퍼지는 꿀 타령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