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파워

슈퍼 곡물이라 불리는 퀴노아, 렌틸콩, 아마씨부터 마법이라도 걸린 듯 작아진 사과와 양배추까지.
크기는 작지만 영양은 꽉 찬 새로운 먹거리가 소비자들의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석유 재벌 만수르의 스태미나 간식으로 알려진 대추야자, 그의 아내 모나 빈 켈리가 즐겨 먹는다는 병아리콩, 이효리의 식단으로 유명세를 탄 렌틸콩, 슈퍼모델 미란다 커가 뷰티 비결로 추천하는 아사이베리. 요즘 슈퍼푸드로 각광받는 먹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크기가 손가락보다 작다는 것. 그렇다면 양배추, 오이, 당근, 양파, 바나나, 사과 등 비교적 친숙한 채소와 과일의 공통점은? 최근 마법이라도 걸린 듯 작아진 크기로 새롭게 어필 중이라는 것!

손톱보다 작아도 이기적일 만큼 월등한 효능을 지닌 곡물이 전례 없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요즘 퀴노아, 아마란스, 치아시드, 아마씨, 귀리, 와일드 라이스, 렌틸콩, 병아리콩은 곡물계의 ‘어벤져스’로 통한다. 몇 해 전 호두, 아몬드, 캐슈너트, 피스타치오가 그랬던 것처럼 마트와 백화점 중앙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퀴노아와 렌틸콩은 즉석 밥과 3분 카레, 짜장 소스로 출시되기도 했다. 다양한 응용 요리법을 알려주는 책도 출간됐다. 하루에 한 숟갈씩 섭취하면 암과 심장병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와 곡물의 어머니라는 별명, 유명인의 후광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재료와 무리 없이 섞일 수 있다는 작은 몸집도 한몫했다. 한편 씨앗과 콩을 주재료로 한 샐러드도 인기다. SNS에서 ‘#Salad’를 검색하면 요즘은 비빔밥을 꼭 닮은 푸짐한 퀴노아, 병아리콩, 렌틸콩 샐러드가 대세다. “채소 샐러드는 금방 헛헛해지는 반면, 씹는 맛이 있는 곡물 샐러드는 포만감 있는 한 끼 식사로 훌륭하다. 그리고 보관도 쉽고, 무엇보다 ‘사진발’이 잘 받는다”는 게 맛과 멋을 챙기는 푸드 인스타그래머들의 의견이다.

영양과 맛은 그대로 유지하고 크기만 준 미니 채소와 과일도 쉽게 맛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목격할 수 있던 ‘방울 양배추’는 일반 양배추를 뛰어넘는 맛과 영양, 외모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방울 양배추는 본디 벨기에 태생으로 최근 제주도에서 귀화 작물로 국산 개량을 시험 중이다. 피망과 혼동되던 파프리카 역시 울퉁불퉁한 외모 대신 한입 크기로 변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의 풍미는 그대로다. 기존 바나나보다 당도가 훨씬 높은 ‘하이디 바나나’는 성인 손가락만 한 아담한 크기다. 그러나 깜짝 대변신은 따로 있다. 바로 사과다. 유독 큰 체리라고 오해할 만한 귀여운 사과 ‘알프스 오토메’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꽃사과의 일종으로 우연히 탄생한 돌연변이지만 사과의 풍부한 장점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골프공만 한 크기 덕분에 생산과 보관도 일반 사과보다 까다롭지 않아 지난해부터는 충남 청양군 등 지방 농가에서 개량에 성공한 국산 제품도 있다. 그 외에도 양파의 사촌 샬롯, 껍질째 먹는 작은 단호박, 스낵 오이, 꼬마 당근 등 먹거리가 소소한 대열에 합류해 소인국과 FTA라도 맺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급부상한 작은 먹거리가 단순히 멋과 재미만 추구하는 걸까? 작은 것의 출현은 이유 있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414만 명(2010년 기준)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식주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데 음식의 변화는 가장 빠른 편이다. 최근 식품업계는 1인 가구를 위한 적은 용량의 폭넓은 간편 조리 식품을 내놓고 있다. 조리 도구도 1인을 위한 소형 제품이 많아졌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에 맞는 식품. 물론 조각 제품이 있지만 누군가의 손질이 필요한 일이고, 칼이 닿았으므로 보관 시간이 짧다는 흠이 있다. 그러나 태생부터 작은 건 그럴 필요가 없다. 비교적 자리를 덜 차지하고, 통으로 먹거나 조리해 손이 덜 간다. 버릴 것도 거의 없어 낭비도 적고 결과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도 적다. 남은 건 처치 곤란으로 버리는 게 반인 1인 가구에게 안성맞춤인 먹거리지만 넓게 보면 환경을 위해서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요즘 식탁의 풍경은 어느 때보다 낯섦의 연속이다. 해외에서나 맛볼 수 있던 다양한 이색 식재료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재료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건 아니다. 한동안 불었던 컬러 푸드 열풍처럼 반짝 유행으로 끝나는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국산화되어 새로운 식문화로 발전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가깝게는 브로콜리와 블루베리가, 멀게는 고추와 양파가 우리 식탁에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작은 먹거리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점점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수요도 기대해볼 만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유효한 요즘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