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디올 레이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숨 쉬는 디올 2015년 봄 꾸뛰르.
과거 이미지와 현재의 기술, 여기에 미래적인 세트를 혼합한 라프 시몬스의 비전 속에서
디올 레이디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Pleats Please라프 시몬스는 50년대 스타일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플리츠로 완성한 볼가운을 완성했다. 전등갓을 연상시키는 입체적인 플리츠 디테일의 컬러풀한 드레스.

Pleats Please
라프 시몬스는 50년대 스타일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플리츠로 완성한 볼가운을 완성했다. 전등갓을 연상시키는 입체적인 플리츠 디테일의 컬러풀한 드레스. 

 

 

Pleats Please성희가 입은 트라페즈 드레스에는 여성적인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Pleats Please
성희가 입은 트라페즈 드레스에는 여성적인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저는 프랑스어를 못해요. 전혀요.” 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Dior&I>는 2012년 디올 하우스에 처음 들어선 라프 시몬스가 첫 꾸뛰르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을 관찰했다. 그는 전학 간 학교에 첫 등교한 학생처럼 얼어붙은 얼굴로 아틀리에 장인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디올 최고 경영자 시드니 톨레다노의 소개로 입을 연 그는 프랑스어로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모두와 함께 일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솜씨는 패션계 최고이니까요.” 여기까지 겨우 인사를 마친 그는 양해를 구한 뒤 영어로 덧붙였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지금 저는 매우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아주 기대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떨리는 인사의 결실이 바로 2012년 가을 꾸뛰르 컬렉션이다. 100만 송이 꽃들로 장식된 파리 저택에서의 데뷔쇼는 라프 시몬스가 디올에서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첫인사였다. 남성복 디자이너 출신으로 꾸뛰르 가문의 노하우와 탁월한 기술을 처음 접한 그는 결국 백스테이지에서 눈물을 보였다(수줍음을 잘 타고, 눈물도 많기로 소문난 디자이너답다). 그 곁에서 같이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Petit Main’ , 다시 말해 ‘작은 손’으로 불리는 아틀리에의 장인들. 마지막 바느질까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한 그들이나, 유서 깊은 꾸뛰르 가문에서 감격의 인사를 나눈 디자이너나 모두에게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Mad House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한데 어우러진 디올의 올봄 꾸뛰르 컬렉션

Mad House
50년대, 60년대, 70년대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한데 어우러진 디올의 올봄 꾸뛰르 컬렉션 

 

 

Shine Your Light프린트를 더한 PVC 소재 코트와 금속 꽃송이로 장식한 드레스에서는 미래적인 로맨티시즘이 느껴진다. 반짝임 가득한 의상은 파올로 로베르시(Paolo Roversi for Dior)의 사진 속에더 더욱 빛난다.

Shine Your Light
프린트를 더한 PVC 소재 코트와 금속 꽃송이로 장식한 드레스에서는 미래적인 로맨티시즘이 느껴진다. 반짝임 가득한 의상은 파올로 로베르시(Paolo Roversi for Dior)의 사진 속에더 더욱 빛난다. 

 

 

그로부터 3년 후, 라프 시몬스는 디올 하우스를 차츰 현대화시키면서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 1월 25일 파리 로댕 뮤지엄에서 열린 올봄 꾸뛰르쇼에서 그 변화는 유난히 두드러졌다. 쇼장으로 향하던 관객들은 보수 공사를 위해 문을 닫은 로댕 뮤지엄을 통과하기 위해 보안 검색대를 지났다. 어수선한 건물을 지나 뒤뜰로 향하자 새하얀 박스 형태의 쇼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디올의 선물 상자처럼 반듯한 공간으로 입장한 순간,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건축 중인 미래 도시나 유토피아의 공사장쯤으로 보이는 그곳은 하얀색 철제 파이프들이 대들보와 지지대 등을 이루고 있었다. 일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쌓은 2층 규모의 공간 속 벽면들은 온통 거울로 뒤덮여 있었고, 바닥에는 분홍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세트에 들어선 듯 환각 상태를 선사하는 이곳이야말로 디올 꾸뛰르 무대로선 최적의 장소. 꽃으로 완성한 궁전, 미래적인 하얀 동굴, 겨울 정원 등 매 시즌 주제와 어울리는 캣워크는 라프 시몬스의 디올 쇼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 시몬스는 패션이 선사할 수 있는 최상의 환상 체험을 위해 그에 준하는 매혹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터득한 듯하다.

‘V-2 Schneider’ ‘Moonage Daydream’ ‘Rock’n’Roll Suicide’ 등 데이비드 보위 음악이 메들리로 이어지는 가운데 분홍색 카펫을 걸어 나온 옷들에선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라프 시몬스만의 미학이 돋보였다. “50년대 낭만주의와 60년대 실험 정신, 70년대 섹스와 광란을 하나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섬세한 자수가 놓인 주름 장식의 스트라이프 풀 스커트가 50년대였다면, 기하학 패턴의 점프수트는 60년대, 모델들이 신었던 라텍스 레깅스 부츠는 70년대. 단순히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요소들을 복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앙드레 꾸레주가 애용하던 스펀지 촉감의 울 소재, 6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그래픽 아티스트 피터 맥스의 작품, 윌리엄 클라인의 영화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구인가요?>, 일본 디자이너인 칸사이 야마모토가 데이비드 보위를 위해 만든 점프수트, 67년 베르슈카의 사진 등 다양한 요소들을 절충하고 혼합해 새로운 시대의 디올 뉴룩으로 완성했다. “다양한 이미지와 소재, 스타일을 믹스함으로써 기대하지 않았던 실루엣과 색감, 소재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어요.”

 

Ziggy Stardust70년대 글램록 스타일에서 영감을 끌어낸 룩. 특히 쇼의 배경음악이었던 데이비드 보위의 무대의상을 닮은 점프수트가 인상적이다.

Ziggy Stardust
70년대 글램록 스타일에서 영감을 끌어낸 룩. 특히 쇼의 배경음악이었던 데이비드 보위의 무대의상을 닮은 점프수트가 인상적이다. 

 

 

라프 시몬스는 이 컬렉션을 거장 사진가 파올로 로베르시에게 기록을 의뢰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완벽하게 마친 모델들과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구현시킨 세트까지 마련됐으니 패션 사진으로 이 순간을 기록하기엔 최적의 조건. 오후 2시 30분에 열린 첫 번째 쇼와 두 번째 쇼가 열린 5시 사이, 2부 쇼가 끝난 직후가 촬영 시간이었다. 디올 오뜨 꾸뛰르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 모델 김성희도 트라페즈 실루엣의 플리츠 드레스 차림으로 함께했다. “우리는 몇 그룹으로 나뉘어 무대를 자유롭게 거닐었어요. 그 모습을 로베르시가 촬영했죠.” 그녀가 계단 난간에 기댄 채 쉬고 있을 때였다. “촬영팀이 준비하는 동안 저는 계단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로베르시가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니 셔터를 누르더군요. 그게 첫 번째 이미지였을 거예요.” 마지막은 어디나 그렇듯 라프 시몬스가 모델 무리에 합류해 단체 떼샷을 촬영하는 것으로 끝났다.

또 한 번의 꾸뛰르쇼를 마친 뒤 라프 시몬스가 디올 합류 후 3년간의 여정에 대해 언급했다. “첫 번째 꾸뛰르쇼는 디올 역사를 이해하는 연습이었어요. 하우스를 이해할수록 디올이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하는지 알게 됐죠. 이번 컬렉션이야말로 좋은 예가 될 겁니다.” 3년 전 떨리는 목소리로 장인들과 인사하던 디자이너는 이제 없다. 자신만의 확고한 비전으로 미래를 스케치하는 라프 시몬스의 표정에는 수줍음 대신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무한 확장의 개념으로 제작된, 끝없이 이어진 거울 벽 앞에서 그가 덧붙였다. “이제 디올은 좀더 미래를 바라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