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으로 간 페미니즘

대도시의 커리어 우먼들 사이에서 뜨개질이나 밭일 같은 옛날식 가사 노동이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버드 MBA를 졸업한 여성이 높은 연봉의 직장을 버리고 태양열로 돌아가는 오두막집 생활을 한다. 젊은 뉴요커는 주말 저녁 클럽에 가기보다 새로 구워낸 빵과 케이크를 블로그에 자랑한다.” 대도시 커리어 우먼들의 가정 회귀 현상을 다룬 에밀리 맷차의 <하우스와이프 2.0>이 화제다. 이 30대 여성 칼럼니스트는 수공예와 전통적 생활 방식이 전 지구적 유행이 된 요즘을 가리켜 ‘새로운 가정의 시대’라고 말한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가정으로 돌아온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은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바느질로 가족을 위한 옷을 짓고, 텃밭에서 농작물을 키우며, 틈날 때면 친환경 비누와 향초를 만든다.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요구하며 유리 천장을 향해 하이힐을 집어 던지던 여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모종삽조차 만져본 적 없던 도시 여성들이 올해 고추 농사를 걱정하고 퇴비를 나르는 일은 요즘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엔 갓 구운 따끈따끈한 홈 베이킹 빵과 집에서 과일을 졸여 만든 잼을 담은 예쁜 사진이 올라온다. 킨포크 라이프와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관련 도서의 판매율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했다. 인테리어 등 살림을 다룬 책 역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홈메이드 저장식을 소개한 <병 속에 담긴 사계절>, SNS로 입소문을 탄 80년대생 자매의 <프랑스 여자처럼 밥해 먹기>, 방송국 9년 차 편성 PD이자 주부인 윤소연(닉네임 칼슘두유)의 셀프 인테리어 과정을 담은 <인테리어 원 북>은 요즘 젊은 여성들의 필독서다. 소모적인 허드렛일로 취급받던 가사 활동이 어느새 세련된 취향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허리가 휘어지게 김치를 담그고 대가족의 빨래를 주무르느라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었던 엄마 세대는 고개를 젓겠지만, 24시간 편의점과 함께 성장해온 젊은 주부들에겐 아날로그적인 향수로 가득한 신세계다. 온종일 전자 기기에 시달린 이들은 뜨개질 같은 평화로운 노동에서 정서적 위로를 얻는다. 소비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오븐 속에 <보그>를 보관하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는 구두에 전 재산을 쏟아붓고 매그놀리아 베이커리에서 컵케이크를 사 먹었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사라 제시카 파커는 자신의 여동생이 만든 브라우니를 최고의 디저트로 꼽는다. 그녀의 쌍둥이 딸들은 요즘 <초원의 집>에 나올 법한 빈티지 원피스를 입고 다닌다. 물론 이 모두는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낭만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선 모유 수유도 사치다. 온종일 맛있는 냄새가 나는 완벽하게 꾸며진 집에서 보헤미안 스타일의 아름답고 현명한 주부가 홈 스쿨링으로 아이들을 교육하는 모습은 슈퍼우먼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을 낳을 수도 있다.

<하우스와이프 2.0>의 저자 역시 이 점을 우려한다. 히피식 유기농 가사일이 유행하던 70년대 무렵, 직장을 그만둔 채 가정에 올인했다가 이혼 후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선배 주부들을 예로 들며 여성들의 경제적인 독립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부자들의 소꿉놀이처럼 취급되는 것도 경계한다. 새로운 가정의 시대에 관심을 갖는 건 오히려 보람을 찾기 힘든 임시 직장이나 너무도 짧은 육아휴직, 질 떨어지는 거주 환경 등의 문제로 주류 사회 안에서 사는 것에 비참함을 느낀 중산층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만 봐도 알 수 있다. 초일류 상류층 집안에 입성한 서봄(고아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보모와 가사 도우미를 둔 덕분에 가사나 육아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자아 계발에 매진할 뿐이다. 대형 로펌의 대표 한정호(유준상)는 하우스 푸어가 된 사돈댁에 전원생활을 권유하며 소박한 삶의 장점을 설파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이토록 편리한 현대 자본주의 왕국을 떠날 마음이 없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각박하다. 대학 졸업 후 영양사로 근무하던 친구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젖먹이 딸을 데리고 출근한 날, 퇴사를 결심했다. “아기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배식 준비 때문에 잠시 사무실을 비웠는데 일이 터지고 만 거야. 한창 국을 푸고 있는데, 우리 딸 울음소리가 회사 빌딩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걸 들었어. 창피하고 서러웠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사는 건가 싶더라.” 전업주부를 택한 그녀는 손바느질을 배워 동네에 작은 수공예 전문점을 열었다. 하지만 가게는 적자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요즘은 아이들을 위해 전원주택을 알아보는 중이다. 서울 아파트보다 저렴하고 생활비도 아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여전히 먹고사는 일은 막막하지만 가정을 포기한 채 박봉의 직장 생활을 택하는 것보단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가정 회귀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일종의 보호 본능이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와 한숨 나는 정치·경제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바깥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싶어질 것이다. 일종의 세계 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고, 결혼 생활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선 전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다. 일터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대로 움직이는 데다 노동자의 건강한 삶 대신 보다 많은 이윤을 택한 기업이 소비자의 안전한 먹거리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IMF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는 동안 평생 직장의 개념도 사라졌다. 그뿐인가? 환경은 병들어가고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져만 간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친 새벽, 트렁크를 정리할 새도 없이 학교에 갈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고, 어질러진 집 안을 치우느라 허둥대던 직장 여성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담보로 맡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했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걸 제 손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은 한 번도 집안일이 가치 없는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여성의 가사 활동을 금지한 적도 없다. 다만 남성도 자기 몫의 책임을 지길 바랐을 뿐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최고 운영 책임자 셰릴 샌드버그가 <린인>에서 말했듯,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사회 초년생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 <미생>에서 원인터내셔널 소속 여직원은 단 세 명뿐이었다. 여성 임원은 아예 없었다! 이런 현실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물질 만능 주의에 지친 요즘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남녀를 떠나 모두가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들이 늘 강조해온 연대와 살림이스트들의 손길이 필요할 때다. 유행에 민감한 패션계는 벌써 이 같은 사실을 눈치챘다. 봄 시즌 샤넬의 패션쇼에선 모델들이 ‘History is Her story’ 등의 선언적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고, 셀린 쇼에선 케이트 부시의 ‘This Woman’s Work’가 울려 퍼졌다. 이 새로운 시대의 페미니즘이 현실감각을 잃은 과거로의 도피나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페미니스트 여성 신학자 현경이 늘 강조했듯,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