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내 코에 링

2016.03.17

by VOGUE

    내 코에 링

    디자이너들은 늘 여자의 신체 부위를 탐닉해왔다.
    가는 손목, 동그란 귀, 늘씬한 허리. 그리고 이번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코 장식, 노즈 링의 차례다.

    지난 2월 뉴욕 패션 위크 때 가짜 노우즈 링을 착용했던 미국 <보그>의 스타일 에디터 엘리자베스 본 투른 운트 탁시스. 노우즈 링들은 코에 착용한 스피넬리 킬콜린을 포함해서 전부 디자이너에게 특별히 제작 의뢰한 것.

    코 안쪽 중앙 연골에 구멍을 뚫는 셉텀 피어싱(Septum Piercing)은 동서양을 막론하고(놀랍게도!) 부모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짓 중 하나다. 최근 코 피어싱을 시도한 과감한 해외 패션 에디터들의 체험담에도 ‘부모님의 반대’를 묘사한 단락이 늘 존재한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스타일의 패션 에디터 판도라 사익스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어떤 피어싱이라도 더한다면 집에 발도 못 들일 줄 알라”는 경고에 리우데자이네루로 여행을 가서 콧볼에 구멍을 뚫었고, 미국 <보그> 스타일 에디터 엘리자베스 본 투른 운트 탁시스는 코 중앙에 가짜 노즈 링을 살짝 거는 것만으로도 독일 왕족인 부모님과 일가 친척들이 질색할 거라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내 경우, 카톡으로 격전을 치른 후 연락을 끊은 잠정적인 휴전 상태다. 구구절절 이어진 한탄과 비난과 분노의 맹폭격에서 충격적이고 결정적이었던 키워드 몇 가지를 떠올리자면 “송아지(정확하게는 소새끼)” “마약중독자” “나이는 어디로 먹었냐” “비중격천공(콧구멍 사이 연골에 구멍이 생기는 증상)의 위험성”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Kendall Jenner

    Rihanna

    Lady Gaga

    Abbey Lee Kershaw

    FKA Twiggs

    Pandora Sykes

    Givenchy 2015 F/W

    Givenchy 2012 S/S Haute Couture

    그러나 패션계 동향을 시시각각 목격하는 <보그> 사무실에서 어떻게 코 피어싱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반짝이는 걸로 코를 장식해야 한다는 ‘패션 의무감’에 처음 불을 지핀 건 2012년 봄 리카르도 티시의 지방시 꾸뛰르 컬렉션이었다. 호전적인 독수리 날개 장식과 얼음 조각처럼 방울방울 스톤이 맺힌 커다란 링은 아랫입술에 닿을 정도로 큼지막했는데, 이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노즈 링의 귀환은 오른쪽 콧볼에 가는 금색 링을 끼우고 영국 <보그> 표지에 등장한 다리아 워보이, 자신의 코 뚫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레이디 가가, 마치 노즈 링이 코의 일부처럼 보이는 FKA 트위그스(지방시 2015 가을 컬렉션에 영감을 준 주인공), 리한나(실망스럽게도 그녀 역시 가짜), 코첼라에서 인도 코걸이 스크류(지나치게 거대해서 볼썽사나운)를 착용한 켄달 제너로 이어졌다.

    지금쯤 당신도 무의식적으로 코를 찡긋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또는 코 언저리가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코 피어싱의 마력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다. “예전에는 1년에 셉텀 피어싱 시술 횟수를 손으로 꼽을 정도였죠. 요즘은 확실히 예전과 다릅니다. 최근에 제가 시술한 것만 해도 벌써 서너 번 될 정도니까요.” 서울의 유명 피어싱 전문점 중 하나인 홍대 ‘코브라’의 채권식 대표는 코 피어싱을 하는 이들 중 여자가 늘었고, 커플이 함께 오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주 고객층은 20대 중, 후반이 가장 많지만 30대 중반까지도 시도할 만하다는 게 그의 의견. “자넷 잭슨의 니플 게이트 사건 때도 같은 부위에 피어싱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늘었죠. 패션지나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코걸이가 다시 유행하게 된 영향이 큽니다.”

    머리가 지끈거려 일도 안 되고 기분 전환이 될 만한 거리를 찾던 봄날 오후, 셉텀 피어싱을 하기로 결심했다.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 ‘나나 피어싱’의 사방 벽과 진열대는 온갖 종류의 피어싱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입술 아래와 턱에 피어싱 자국이 남아 있는 20대의 귀여운 여자 피어서(피어싱을 해주는 사람)는 검정 투볼링(정식 명칭은 ‘서큘러 바벨’. 한쪽이 열려 있고 양 끝에 볼이 달린 고리형 스터드)이 가장 흔하게 하는 거라고 권했다. 그렇지만 그거야말로 가장 전형적으로 펑키하고 반항적인 스터드다. 자학적이거나 ‘쎄보이지’ 않고 주얼리처럼 예뻐 보이는 게 중요하다. 장식이 없는 금색의 가느다란 링(‘세그먼트 링’. 원의 한 부분이 탈착 가능하다)을 골랐다. 애초 계획은 두 개를 뚫어(다행히 비중격 길이는 두 개를 뚫을 여유가 있었다) 큰 링과 작은 링을 끼우는 것이었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하나를 뚫었을 때 이미 현기증이 났다(부끄럽게도!).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거기만 보게 돼.” 사무실로 돌아오자 호기심에 찬 동료들은 두려움과 걱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한동안 내 코끝만 쳐다봤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시선은 1초 만에 코끝 금색 고리를 향했다. 과감하다거나 어울린다고 말해줬지만, 슬프게도 단 한 명도 예쁘다고 하진 않았다. 칭찬을 기대한 건 나의 욕심일까?

    지구 반대편 아름다운 금발 여인의 코 피어싱은 뉴욕 패션계에서 환영을 받았다. 앞서 말했지만 진짜 피어싱은 아니다. 미국 <보그> 스타일 에디터 엘리자베스 본 투른 운트 탁시스는 주얼리 디자이너들에게 코를 뚫지 않고 비중격에 고정해서 착용할 수 있는 코걸이 제작을 의뢰했다.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중에 몇 가지를 착용했는데, 그녀는 ‘패션 위크용’ 디자이너 의상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가장 장식적인 것들을 매치했다. 그리고 모두(칼 라거펠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타비타 시몬스, 로렌 산토 도밍고) 이 새로운 주얼리가 ‘멋지고 근사하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서울의 패션계 인사들은 생각보다 신중했다. “피어싱은 기호나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귀에만 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이에요.” 주얼리 디자이너 전선혜는 자신의 레이블인 ‘젬앤페블스’는 클래식한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코걸이나 피어싱용 스터드는 좀더 고려해봐야겠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내비쳤다. “만약 디자인을 한다면 부피감이라든가 형태, 두께를 최대한 여성스럽게 할 거예요. 그리고 아주 섬세한 디테일을 넣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주얼리는 전체적인 룩과 얼굴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거예요.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인상을 줘선 안 되죠.” 이어 커프나 너클 링 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빠르게 받아들여 온 ‘미네타니’의 디자이너 김선영 역시 “단순하고 아주 작은” 게 좋겠다고 점잖게 말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넘버링’의 디자이너 김누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요즘은 다들 워낙 옷을 잘 입으니, 캐주얼하게 매치한다면 코걸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며 너그럽게 결론을 내렸다.

    Delfina Delettrez

    Delfina Delettrez

    Pamela Love

    Jessica McCormack

    Repossi

    Spinelli Kilcollin

    Eva Fehren

    Ana Khouri

    Givenchy

    연이은 인색한 평가에 단 한 명이라도 코걸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누군가의 의견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왜냐하면 내 눈엔 그게 충분히 예뻐 보였으니까. 현기증이 가라앉은 다음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문 두드리는 쇠고리처럼 생긴 금색 링은 전혀 공격적인 인상을 주지 않았고, 손가락에 낀 가늘고 얌전한 실반지 같았다. 오히려 평소 화장을 하지 않아 멀겋고 밋밋한 얼굴이 한결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패션계에서 호전적인 취향으로 유명한 <W> 패션 에디터 정환욱(현재 서울 패션계에서 가장 문신 부위가 큰 인물일 듯)이라면 환영할 것이다. 컴 온, 요! “콧볼이 아니라 코 중앙? 저도 피어싱을 꽤 많이 했지만 그 부위는 가장 어려운 부위예요. 귀, 눈썹, 볼, 입술, 심지어 혀보다도 훨씬. 어울리기도 쉽지 않죠.” 전문 서적들을 뒤적여 보니 피어싱에는 현대성의 거부, 원시로의 회귀, 그리고 힘과 매력을 더하기 위한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얼굴 한가운데 자리한 코에 무언가를 끼우는 건 과거에도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결국 코걸이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공격적인 장신구라는 사실.

    리카르도 티시는 지방시 컬렉션의 코걸이 장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고스(Goth)적인 면 때문이죠. 10대 때 피어싱을 정말 많이 하고 길고 검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녔죠. 아프리카,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종교적 혹은 미적인 이유로 자기 자신을 꾸미는 나라의 문화에 늘 미쳐 있었어요. 장식에 끌렸죠.” 그리고 그는 2015 가을 컬렉션에서 코뿐 아니라 얼굴 곳곳을 장식한 주얼리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곤 했죠. 2015년은 정말 그 영화 같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러길 바라요, 내 머릿속은 아직도 어린아이 같거든요. 오, 20년 내에 사람들이 얼굴 전체를 주얼리로 장식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티시가 바라면 그대로 이뤄질지어니! 이 위험한 장신구를 중심으로 얼굴 여기저기에 보석이 박혀 있는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미래를 내다보는 패션 피플이라면 코걸이를 시도하는 데 망설이지 말 것! 위협적이지 않은, 아주 특별한 주얼리를 착용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잡티나 뾰루지 없는 깨끗한 피부, 밝은 안색은 물론, 네일 컬러를 완벽하게 바른 깔끔한 손톱까지 다른 곳들을 세심히 신경 써야 한다. 진짜든 가짜든, 코에 작은 고리를 다는 순간, 당신은 남들과 달라지게 될 테니까.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OF CHLOE MALLE, GORMaN STUDiO, COURTESY OF GETTY IMAGES / MULTIB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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