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편집장의 추억여행 ① – 린다 에반젤리스타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은 1996년 8월호 <보그 코리아> 창간호 커버! 모델은 1만불짜리 촬영 일이 아니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슈퍼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 지아니 베르사체와 함께 슈퍼 모델 시대를 당당하게 누린 슈퍼 중의 슈퍼, 린다 말이다. 어떻게 린다를 섭외할 생각을 했냐고? 아주 특별한 커버를 만들고 싶었던 우리는 한국 독자들을 가장 놀래킬 모델이 누군가 떠올렸고, 그건 린다였다. 어떻게 섭외했냐고? 물론 컨데나스트의 도움이 있었다. 당시 컨데나스트에서 제안해 함께 근무하게 된 외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진 크렐을 통해 우린 ‘겁 없이’ 린다를 섭외했고, 린다는 뉴욕에서 커버 화보를 촬영하고 창간 파티때 <보그 코리아> 뮤즈로 서울을 방문하는 조건 모두를 수용해 OK!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럼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냐고? 천만에! 우선, 당시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패션 수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에(19년 전이니 이해하시길!), 이름 없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옷을 린다에게 입히는 것 자체가 난제였다. 결국 준비해간 디자이너들의 꾸뛰르 드레스를 선택할 권리를 린다에게 일부 넘겨주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그런데 린다가 가장 맘에 들어한 옷은 빨강과 금색이 환상적 조화를 이룬 진태옥의 오간자 드레스(결국 커버로 낙점. 그뿐인가! 서울 삼청각에서 열린 <보그 코리아> 런칭 파티 때도 그 옷을 입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와 이영희의 자수가 놓인 은회색 공단 드레스! 둘다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아주 멋진 꾸뛰르 드레스였다. 물론 흑백 비즈가 조화를 이룬 지춘희의 모던한 드레스와 색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트로아조의 컬러풀한 드레스도 좋아했지만.

그나저나, 지금 봐도 이 사진은 흠잡을 데가 전혀 없다. 카멜색 종이 백드롭을 늘어뜨렸을 뿐인데도 화면을 꽉 채우는 중량감이란! 이건 모델과 옷, 사진가의 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음을 뜻한다. 린다의 헤어스타일은 더 없이 세련됐고, 포즈를 완벽하며, 사진은 컨트라스트가 뚜렷해 눈이 시원해진다. 좋은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 19년이 흘렀는데도 흠잡을 데가 없는 완성도 100%의 사진! <보그 코리아> 초대 편집장인 내 기억 속의 첫번째 비주얼은 창간호 커버 화보, 주인공은 린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