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튀는 멤피스 스타일

30년 전 유행했던 디자인 사조인 멤피스. 그래픽적이고 장난감처럼 통통 튀는 멤피스 스타일이 패션계로 돌아왔다.

 

지난 5월 초, 루이 비통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인스타그램에 가방 사진을 한 장 올렸다. 3,000개가 넘는 ‘하트’를 받은 사진 속 가방은 가을 컬렉션에 선보인 사각 메이크업 박스 백. 파리의 아파트에서 그는 아마도 그 백을 어떻게 찍어 올릴지 살짝 고민했을 것. 결국 거실에 놓인 대리석 테이블 위에 백을 올려놓은 후 찰칵! 제스키에르의 선택을 받은 그 조형적인 콘솔은? 바로 멤피스 그룹의 창립 멤버였던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작품. 그리고 제스키에르의 감각은 틀린 적이 없다. “멤피스의 영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봄 디자인 이슈를 선보인 <T 매거진> 편집장, 데보라 니들먼은 이렇게 선언했다. 1981년부터 87년까지 이어졌던 멤피스의 부흥을 재빠르게 탐지한 것이다. “참을 수 없었던 멤피스 스타일도 이제 와서 보니 매력적으로 보인다. 쾌활한 진심이 담겨 있고, 재미있지만 엄격한.”

멤피스 그룹 특유의 컬러풀하고 조형적인 디자인 바람은 패션계까지 불어왔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원색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적인 이미지가 가장 두드러졌던 건 준야 와타나베 컬렉션. 20년대 구성주의(지금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 중인 소니아 들로네의 작품과 닮은)와 멤피스 그 중간쯤 자리한 그의 작품은 색종이를 마구 자른 듯한 평면적인 옷으로 가득했다. 말수 없는 일본인 디자이너는 “그래픽의 행진”이라는 제목 말고는 입을 닫아버렸지만, 그가 알록달록한 멤피스 그룹의 책장과 램프에서 아이디어를 구했다는 사실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얼핏 보면 컬러풀한 팝아트를 닮은 멤피스의 시작은 80년 12월 소트사스가 주최한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였다. 밀라노의 젊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이 지나치게 모던하고 말끔한 건축과 디자인에 반기를 든 것이 계기다. “멤피스는 업계에 의해 지배되던 창조적인 한계를 무너뜨렸고, 새로운 형태와 소재, 그리고 패턴을 통해 새로운 표현력을 가능케 했다.” 공식 홈페이지의 설명 그대로 온통 블랙 천지에 지쳐가던 디자이너들은 컬러와 조형미에 열광했다. 그건 2015년의 패션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 와타나베뿐만이 아니다. 크레파스처럼 오색찬란한 플리츠를 선보인 톰 브라운, 색종이를 잘라 붙인 듯한 드레스를 선보인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 컬러 블록 풀 스커트를 리조트 룩으로 제안한 디스퀘어드, 스트라이프를 통해 그래픽 감각의 옷을 완성한 자크 무스 등등. 만약 소트사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들의 봄 컬렉션을 보고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굳이 런웨이 위에 알록달록한 옷을 올리지 않더라도, 패션계의 멤피스 사랑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거실 입구에 소트사스의 테이블과 시로 쿠라마타(Shiro Kuramata) 의자를 나란히 마련해 둔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대표적인 인물. 멤피스의 또 다른 멤버였던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역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피에르(피에르 하디)가 절 쿠라마타에게 소개해줬어요.”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제스키에르가 이렇게 밝혔다. “저희가 같이 살 때(이 둘은 한때 연인이었다) 그는 놀라운 작품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멤피스의 전성기였던 80년대 가장 먼저 그들을 받아들인 디자이너도 있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아파트를 온전히 멤피스 가구와 소품들로 채웠던 칼 라거펠트가 그 주인공. 전설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안드레 풋맨(Andre Putman)과 함께 꾸민 그 아파트의 가구와 소품들은 그 후 소더비 경매를 통해 팔려나갈 정도로 유명했다. “진짜 좋아했어요.” 나중에 라거펠트는 자신의 멤피스 사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5년 동안 그 아파트를 꾸몄죠. 하지만 갑자기 다른 시대에서 온 드레스처럼 보이더군요. 지나치게 모던했어요.” 물론 애정이 식기 전인 82년 클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할 때 봄 컬렉션을 온통 멤피스 디자이너들에게 바치기도 했던 그다.

“멤피스 디자이너들의 작업은 대담할 정도로 그래픽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유머 감각이 있었다.” 미국 <보그>는 최근 도래한 멤피스 스타일의 유행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80년대만큼이나 지금 그 유머 감각은 더욱 더 소중하기만 하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닮은 램프를 만들었던 30년 전 멤피스 디자이너들처럼, 와타나베를 비롯한 패션 디자이너들도 즐거운 패션을 선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는 유쾌한 패션이 환영받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