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주의 웨딩 포트레이트

장윤주가 결혼을 한다. 18세에 〈보그〉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해 단 한 번도 정상에서 내려온 적 없는 그녀를 위해, 국내 톱 사진가 6인과 슈퍼 스타일리스트가 아주 특별한 웨딩 포트레이트를 선물했다.

 

3월 23일, 서울 패션 위크의 지춘희 패션쇼장. 방송에 얼굴이 꽤 알려져 있고 패션 쪽에선 지나치게 이름난 한 아가씨의 결혼 발표 소식이 그날 터졌다. 심지어 캣워크에 모델로 서기에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출현할지 기대하며 다들 기다렸다. 쇼가 시작하자 검정 코트에 흰 타이츠, 여기에 베레를 쓴 예비 신부가 등장했다. 얼마 후엔 회색 상의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 넣은 채 발랄하게 걸었다.

다시 여러 모델의 입장과 퇴장이 이어진 뒤 얇은 캐시미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침착하게 중앙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암전. 이브닝 드레스 행렬의 맨 끝에 턱시도 라인을 댄 아이보리 새틴의 튜브톱 드레스를 입고 느긋하게 입장했다. 네 번째 옷을 보자 관객들은 그녀의 결혼 발표에 딱 맞는 옷이 아니냐며 수군댔다. 그녀는 전매특허 워킹(척추를 꼿꼿이 세운 채 무릎을 ㄱ자로 들어 올려 발을 8자로 교차하는)과 포즈(오른손을 골반에 올려 각도기로 잰 듯 각을 잡은 뒤 왼팔만 흔드는)를 팬 앞에서 서비스처럼 보여줬다. 온몸과 표정으로 “나만 봐, 지금 세상의 중심은 나야, 다 죽었어!”라는 듯 오만했다. 그렇다고 누구도 그녀를 건방지다고 여기진 않았다. 캣워크에서 그녀의 등장은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되니까.

장윤주! 그녀의 결혼 발표는 모델로서 분만실이자 놀이터이며 안식처인 서울 패션 위크 절정의 순간에 이뤄졌다.

2015 F/W 패션 위크가 끝난 뒤 <보그>는 인스타그램에 쇼 리뷰를 올리며 하나를 쓱 끼워 넣었다. ”장윤주의 웨딩드레스는 과연?”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은 3등분된 채 세 벌이 노미네이트됐다. 장윤주가 협업했던 김재현? 그녀가 오프닝과 피날레를 독식했던 지춘희? 아니면 젊음이 주는 에너지와 열정 덕분에 오랜만에 신인의 기분을 느꼈다는 윤춘호? 드디어 장윤주는 한국 여자들의 웨딩드레스 로망인 지춘희를 입고 5월 29일 결혼한다.

그녀의 패션 대모쯤 되는 지춘희는 여자로서 일생일대의 순간이 좀더 입체적이며 영속성을 지니도록 한 가지를 제안했다. <보그>와 함께 웨딩 포트레이트를 만드는 것. 사실 장윤주만큼 <보그>를 통해 불후의 명작을 수없이 남긴 모델도 드물다. 수없이 많은 실핀을 머리띠처럼 가지런히 꽂은 채 사진가 정용선의 진중한 흑백사진으로 기록된 패션 화보를 기억하는지! 사진가 스티븐 마이젤이 이 사진을 보고 그녀에게 뉴욕에 올 것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서울 패션계에서 전설로 통한다.

그리고 ‘신이 내린 몸매’라는 수식을 지닌 그녀의 몸에 예술적 가치를 더하기 위해 조각가 김일용과 함께 석고로 모형을 뜬 보디 프로젝트는 어떤가. 십자가에서 부활한 여인처럼 양팔을 펼친 전라와 <무한도전> 팀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촬영했던 장 폴 구드풍의 초특급 울트라 슈퍼 파워 화보까지.

이렇듯 <보그>와의 인연을 각별히 존중하고 간직해온 그녀는 자신의 웨딩 포트레이트를 <보그>에 기록하길 원했다. 그리고 슈퍼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함께 그녀의 모델 이력에서 의미 있는 사진가들을 꼽아 각각의 시각으로 웨딩 포트레이트를 촬영하기로 했다. 단, 시작은 무조건 사진가 정용선이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되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No! 잡지 사진에서 떠나 순수 사진 작업에 매진 중인 정용선은 그녀의 제안을 위트 있게 거절했다. “네가 뭔데 사진가들을 쭉 거느리려고 해?” 그야말로 ‘절필’을 선언했기에 번복을 원치 않았던 것. 사실 장윤주는 정용선을 “아빠!”로 부를 만큼 서슴없고 막역한 사이다. 타협의 여지라곤 없는 이 엄격한 사진가는 결국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딸’의 제안을 거절했다. “정말 아빠다운 발언 아닌가요? 역시 달라! 하하.”

서영희와 장윤주는 서로 의논해 장윤주의 20여 년 모델 이력 가운데 의미 있는 사진가들을 재빨리 섭외했다. 조남룡, 김용호, 이건호, 박지혁, 조선희, 홍장현. 이 여섯 명의 투플러스급 사진가들은 신개념 웨딩 옴니버스 기획이자 대한민국이 아끼는 국보급 모델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주저 없이 의기투합했다.

<보그> 편집장으로부터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장윤주는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독대를 원했다(평소 뭔가 꽂히는 게 있으면 밀어붙이는 데 있어 선수다). 그녀는 가로수길에서의 사전 미팅은 물론 여섯 번의 촬영 내내 이렇게 재잘댔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런 것도 하고 싶어요!” <보그> 웨딩 스토리의 주연이자 예비 신부의 요구에 대한 스타일리스트의 반응은? “왜 안 돼?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어떻게 꾸며줄까? 이렇게도 해보자.” <보그>와 함께했던 ‘아트 투 웨어’는 물론, 촬영장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는 스타일 대가답게 서영희는 장윤주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활짝 열어줬다.

사실 패션 사진은 최후에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만 전적으로 컨트롤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진행 기자가 전권을 휘두를 수도 없다. 스타일리스트와 헤어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최종 매거진의 에디팅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이번 기획은 전적으로 모델에게 구심점이 있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장윤주의 웨딩 포트레이트이기에.

“오랜 시간 꾸준히 함께 일하는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들은 하나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잠시 잠깐 머물고 흩어집니다. 그래서 연대 의식을 찾긴 힘들죠.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떤 끈끈함이 존재한 걸 느꼈어요”라고 서영희는 전한다. “중심에 장윤주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그래서 여섯 곳이 아닌, 열여섯 곳에서라도 촬영할 수 있을 만큼 의미심장하고 행복한 촬영이었다고 덧붙였다.

패션 그림 한 장을 만드는 일에서 일희일비하는 프리랜서들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까지 느끼게 한 장윤주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처음 그녀가 일을 시작했을 때 체형이나 태도 등이 다른 모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 촬영과 전시 준비 등으로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는 물론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진가 6인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품평이다. “그녀의 개성은 여러 각도에서 다르게 변화한다는 겁니다. 반면 10대에 데뷔한 후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인 지금 전혀 변치 않는 것도 한몫하죠. 그러니 이런 모순이야말로 그녀의 탁월성입니다.”

하긴 그녀는 소녀의 얼굴인 동시에 성숙한 여자다. 또 자폐적인 듯 우울할 때도 있지만 개그맨 뺨치게 웃기는 조울증적 매력까지 지녔다. 게다가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는 듯하다가도 어떨 땐 심술도 쉽게 들키고 마는 복합적 캐릭터. 이런 기질과 성향은 <보그> 웨딩 포트폴리오에 그대로 표현됐다.

비슷한 듯 개성 넘치는 사진들 가운데 한 페이지에서 여자는 홀딱 벗은 모습이다. 벗은 몸과 얼굴은 홍장현이 찍었다. 또 김용호의 시선 안에서는 20~30년대 은막의 여배우처럼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있으며, 조남룡과 떠난 복숭아밭에서는 신여성처럼 정숙하게 과수원을 걷는다. 이건호의 안경과 렌즈를 통해 본 그녀는 초상화처럼 회화적이고 오묘하다. 신랑을 기다리는 듯 얼굴이 붉어진 듯 보이는데, 그래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희의 렌즈를 통해선 섹시한 요부부터 젠더리스 퀸까지. 대체 뭘 먹고 자랐기에 한 여인이 이토록 독창적이며 다채로운 시각적 효과를 뿜을 수 있나? 물론 이 여자를 꾸며 촬영한 스타일리스트와 사진가들의 창조 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녀 자신이야말로 힘과 다양성을 부여한 근원이다. 물론 여섯 개 앵글 앞에 놓인 피사체는 그저 그런 패션모델이 아니다. 장윤주는 한국 패션의 90년대를 정의하고 평정한 이후 모델 피라미드의 꼭짓점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 없다. 이젠 약 650K의 인스타그램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소셜미디어 스타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음악을 탐구하는 뮤지션.

그러니 지춘희나 정욱준, 김재현 같은 디자이너들은 물론, 이달 같은 기획에 이름을 올린 자존심 강한 여섯 사진가들, 유재석 같은 슈퍼 개그맨들과 정재형이나 유희열 같은 아티스트들이 한 번쯤 꼭 함께 일하고 싶도록 부추기는 존재다. 요즘 우리는 그런 살아 있는 대상을 뮤즈라고 부른다.

with Park Ji Hyeok

with Park Ji Hyeok

언젠가 <보그> 인터뷰에서 자신의 직업에 뮤즈라고 기입해달라고 한 적 있는 그녀는 사진가 박지혁과 웨딩 프로젝트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2000년대 초 런던에서 돌아온 가을쯤 장윤주와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장윤주라는 모델을 꼭 한 번 찍어보고 싶었죠.”

늘 그렇듯 중저음의 세련된 말솜씨로 박지혁이 장윤주와의 인연을 더듬었다. “패션지 촬영을 위해 양평에 있는 어느 화가의 작업실에 갔는데, 요즘 말대로 하자면 ‘케미’가 좋았어요.” 둘의 케미는 바로 음악에서 터졌다. “저는 촬영 때 필요한 음악을 위해 CD 여러 장을 준비해 번갈아 틀었는데 그녀가 좋아했죠. 그런데 그녀 역시 몇 장의 CD를 준비해왔고, 저 역시 그 음악들이 맘에 들었어요.”

이런 음악적 교감은 웨딩 촬영에서도 이뤄졌다. 이 젠틀한 사진가는 장윤주를 위해 또다시 음악을 선곡했고 커피까지 준비하는 등의 자상한 태도로 주인공을 감동시켰다. “그녀를 글래머러스한 아이콘으로 한정 짓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런 관능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도리어 털털하고 유머러스한 기질 덕분에 담백하게 느껴질 뿐이죠. 그런 느낌을 웨딩 화보에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리하여 수수하고 맑은 신부가 탄생했다.

박지혁에 대한 장윤주의 마음 역시 애틋하기 짝이 없다. “저의 모든 것을 보여준 유일무이한 사진가예요. 심지어 제 본능까지.” 장윤주가 잠시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애로 치면, 단순히 썸 타고 끝나는 게 아닌, 가장 많은 것을 나눈 사랑 그 자체였죠.” 자타가 공인하는 연애의 달인답게 그녀는 남녀 관계를 예로 들며 박지혁과의 인연을 설명했다. “정말이지 이 남자 정도면 결혼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사실 일반적인 촬영은 컨셉 안에서 모델이 움직이면 되지만, 그녀는 박지혁 앞에 섰을 때 ‘동물’적 본능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소울, 순수, 날것 등으로 표현하는데, 저는 동물 그 자체였어요. 촬영 중 뭔가에 도취된 채 제 영혼이 몸에서 이탈해 동물로 보이는 기이한 경험을 했죠.” 박지혁을 비롯한 소수의 사진가 앞에서 드물게 체험한 이 순간을 그녀는 오래 간직하길 원했다.

with Cho Nam Ryong

with Cho Nam Ryong

장윤주, 서영희, 그리고 헤어 아티스트 김정한과 메이크업 아티스트 원조연으로 구성된 웨딩 드림팀은 이번엔 야외로 떠났다. 그곳은 조남룡이 평소 촬영하고자 점찍어둔 충북의 어느 복숭아밭. “복사꽃이 만개할 시기였어요. 하지만 비가 와서 야외 촬영을 못할 뻔 했죠.” 그런데 하늘도 장윤주의 웨딩 촬영을 돕는 걸까? 어떻게든 찍어보려고 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갰으니 말이다.

서영희와 조남룡은 시니어답게 그들의 엄마 세대의 웨딩 사진처럼 찍기로 의견 일치를 봤다. 이를 위해 저고리와 치마가 장윤주의 호리병 같은 몸을 곱게 감쌌다. 오랜만에 장윤주와 만난 조남룡은 에스닉 촬영의 도사답게 몽골, 인도 등에서 함께했던 촬영을 떠올렸다. “제 기준에서 볼 때 한국 패션계에는 몇 년 주기로 시대를 대표하는 모델이 있었습니다. 오수미부터 시작해 최미애, 송경아, 장윤주, 그리고 그 뒤로도 쭉!”

사실 박지혁이 등장하기 전까지 남자에 대한 장윤주의 영웅은 조남룡이었다. “여기자들은 물론 모델들은 그를 젠틀하다고 여깁니다. 여자를 끌어안을 줄 아는, 품을 줄 아는 넉넉한 인품과 매너를 지녔거든요.” 아울러 조남룡이야말로 ‘감각적인’ 사람이라고 장윤주는 말한다. “게다가 순간의 느낌, 찰나의 순간을 그만큼 잘 포착하는 사진가는 드물었어요. 전형적인 느낌을 선호하지도 않죠. 그래서일까요? 저는 그 앞에서 가장 많이 벗었어요. 조남룡이 찍은 저의 누드 사진이 제일 많은 거 아세요? 하하.”

with Zo Sun Hi

with Zo Sun Hi

패션 사진의 대가로부터 시대를 대표하는 모델로 인정받은 장윤주는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얼마 전 스튜디오를 옮기며 폴라로이드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어요. 가장 많은 인물이 장윤주였죠.” 조선희가 걸걸한 음성으로 장윤주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폴라로이드 시절의 장윤주나 시집가는 장윤주나 변한 게 없더군요. 누구든 살아왔던 대로 외모나 태도, 성격이 변하기 마련인데. 세월의 흔적만 약간 느껴질 뿐 장윤주는 그대로 였어요.”

그들은 둘 다 신인 시절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고난과 열정의 시간을 함께했기에 전우애, 혹은 동지애가 생겼다. 그러나 이런 연대감은 이번 웨딩 촬영에선 약간의 조율이 필요했다. 조선희는 맨 처음 명성왕후와 영국 여왕의 퓨전 웨딩 촬영을 기획했다. 그러나 여건상 과하다고 판단해 두 번째 제안한 것이 블랙 동화처럼 마녀 신부, 혹은 악마적 신부, 블랙 웨딩드레스 등등. 여러 사진가와 함께하는 옴니버스 포트폴리오기에 각각 개성 넘치는 해석이 더 흥미롭다고 여긴 것.

그러나 ‘딸 가진 엄마’ 마음으로 이 기획을 진두지휘한 스타일리스트는 사진가의 창작 열기를 식혀줬다. “장윤주는 모델로 일하며 수많은 웨딩 화보를 찍었을 거예요. 그래서 일반적 신부 이미지로 그녀를 기록하기에 장윤주라는 피사체가 너무 아까웠죠. 결국 접점을 찾은 것이 섹시하고 터프한 신부였어요.”

여자와 여자 사이의 알 수 없는 긴장감은 이번 촬영장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토록 처절하고 치열하며 가열차게 촬영한 적은 없었어요!” 장윤주가 혀를 내두른다 싶은 투로 후일담을 전했다. “여자 대 여자로서 서로 경쟁심이 발동한 것 같아요. 정말이지 끝까지 피를 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조선희는 저의 밑바닥까지 끌어내려고 했죠. 서로 ’맞짱’ 뜨는 기분? 사진가는 모델에게, 모델은 사진가에게 도전장을 내민 채 서로 시합하고 경기하는 듯한 촬영이었어요.”

거칠고 격렬하고 전쟁 같은 촬영을 겪으며(심지어 그게 웨딩 촬영!) 장윤주는 데뷔 초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그녀는 우리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그 시절과 지금, 변한 게 하나도 없더군요.” 그건 사진가도 모델에게 똑같이 느꼈다는 사실을 장윤주는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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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Kim Yong Ho

둘째 날 첫 촬영은 15년 전쯤 톱 모델 10여 명을 함께 촬영할 때 장윤주를 처음 만난 김용호와 이뤄졌다. “박둘선, 송경아처럼 선이 굵고 직선적이며 현대적인 인상과 달리 그녀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몸도 곡선. 한마디로 다른 모델 인종, 다른 스타일의 출현이었습니다.” 김용호는 투박하고 무신경한 경상도 사투리로 장윤주를 묘사했다.

이번 웨딩 포트폴리오를 위한 김용호의 접근은 할리우드 20~30년대 은막의 스타. “그녀는 아름답고 풍만한 가슴(최근 어느 공중파에서 <장윤주의 가슴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 있다)이나 굴곡진 몸매가 관능의 여배우 옷차림을 연상시켰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죠.”

그는 자신이 아끼는 20~30년대 한국 신여성 이미지를 곁들였다. 최승희가 해외 유람 갔다면, 나혜석이 일본인 남편과 세계 일주하며 기념 촬영을 한다면, 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더한 것. “장윤주는 미니멀하거나 아방가르드한 포즈보다 여성성을 드러내는 포즈가 일품입니다. 그래서 사진관에 들른 여배우 느낌을 재현하는 게 쉬웠죠.”

장윤주가 모델 일을 시작할 무렵 서울에는 청담동 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 청담동식 풍류를 제안하고 주도한 인물이 바로 김용호였어요. 게다가 저의 첫 번째 광고 촬영을 그가 했죠. 오즈세컨!” 그런데도 여전히 장윤주에게 김용호는 옷 잘 입는 인텔리겐치아 패피의 첫 이미지로 기억된다.

“함께 와인 한 잔을 나눈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이번 웨딩 촬영 때 서로 취한 듯 분위기를 탔어요. 그가 준비한 샹송은 정말 끝내줬죠! 촬영 컨셉 역시 어딘지 복고적인데도 그 자체로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촬영도 아주 신속하게 진행됐으며, 또 다른 촬영까지 기대하며 끝났다. “그래도 저는 그를 여전히 ‘사장님’으로 부른답니다.”

with Lee Gun Ho

with Lee Gun Ho

김용호에게 장윤주가 성숙한 여배우라면 이건호는 선머슴으로 각인된다. 하지만 웨딩 촬영을 위해선 더없이 고매한 여인이 주제가 됐다. “카메라 밖에서는 여성스럽기보다 개구쟁이 같아요. 팔다리가 너무 가늘어 감자에 나무젓가락을 꽂은 이미지 같죠. 그러나 뷰파인더 안에서는 천생 모델로 돌변합니다. 음악을 틀면 뻣뻣한 사람이 있고 리듬을 타는 사람이 있듯, 그녀는 90년대에 일했던 모델들이 그렇듯 후자입니다.”

당시 사진가와 모델 사이엔 오누이 같은 신뢰와 교감이 있었다. 한쪽의 컨디션이 별로면, 상대에게 말하지 않고도 무언의 사인만으로도 의지가 됐고 상대의 결핍을 보완해주는 사이. 이번 촬영 역시 서로가 서로를 200% 신뢰하며 진행됐다. “장윤주가 하고 싶은 대로 찍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고를 때도 장윤주가 가장 아름다운 컷으로 골랐습니다. 솔직히 장윤주는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하하. 그래서 각도에 신경 썼고 턱도 갸름해 보이거나 머리카락도 여성스러운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촬영을 위해선 지춘희가 새로 만든 두 벌의 웨딩드레스가 동원됐다. “엄마가 딸을 위해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는 느낌이었어요”라고 서영희는 전한다(이 드레스 중 한 벌을 장윤주가 결혼식 때 입는다). 장윤주는 평소 여자를 여성스럽고 나른하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심미안을 지닌 이건호식 해석과 지춘희 드레스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었다고 전한다. “덕분에 현실의 여자가 아닌, 어딘지 몽환적인 여성성을 충분히 뽐낼 수 있었어요. 사실 제 안에도 그런 여자가 있거든요. 평소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이런 웨딩 촬영을 통해서 그런 속성이 자연스럽게 분출됐죠.”

with Hong Jang Hyun

with Hong Jang Hyun

장윤주는 늘 그렇듯 모든 작업에 대한 이해가 확실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뭐든 기꺼이 제공할 완벽한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홍장현 앞에서 벗는 것쯤이야 여배우가 베드 신을 놓고 극도로 예민해지는 것과 달리 석 달 열흘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너의 몸을 갖고 싶다, 너의 남편에게도 그 몸을 선물하고 싶다는 원초적 관점에서 시작했어요.”

늘 그렇듯 세련된 본능에 충실한 홍장현의 비주얼적 접근은 장윤주만을 위한 특별한 웨딩 촬영에도 동원됐다.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는 신부를 홀딱 벗기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판단, 헬레나에서 특별한 부케를 제작해 베일을 늘어뜨리고 독특한 구두와 함께 에덴의 이브처럼 치장했다.

“어시스턴트 시절, 그녀는 사진가 김중만이 찍은 누드 사진을 통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존재였어요.” 그는 장윤주가 새 앨범을 발표한 시기에 <보그>와 촬영한 ‘설중매’ 화보, 그리고 송경아, 한혜진과 함께 촬영한 몽골리안 화보를 걸작으로 꼽는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선호하는 모델은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지젤 번천이나 커스틴 오웬 등을 좋아합니다. 게다가 제가 의욕적으로 일한 시기엔 장윤주가 인기를 끌던 90년대식 몽골리안 페이스의 유행은 지났죠. 하지만 그녀가 꼭 필요한 촬영이 있습니다. 몇몇 <보그> 촬영과 이번 프로젝트처럼.”

“나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거죠? 내 몸매도 지젤 못지않은데도 말이죠?” 장윤주가 항의하듯 농담조로 말했다. “패션 사진은 움직임과 아이 컨택이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저는 움직임이 분방하고 연기력이 탁월한 모델은 아닙니다. 저는 제가 잘 알아요. 대신 사진가와의 눈빛 교류를 중요하게 여기죠. 그런 면에서 지금껏 수많은 사진가들과 눈동자를 마주쳐왔지만, 홍장현만큼 아이 컨택에 있어 짜릿했던 적은 없었어요.”

그녀는 잡지든 광고든 상업 사진 촬영에 지칠 무렵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질 시기에 그와 마주쳤다고 기억한다. “시간에 쫓기고 돈을 벌기 위해 찍어내는 사진이 아닌, 이 사진을 왜 찍어야 하나, 라는 의문을 가질 때쯤 홍장현과의 아이 컨택을 통해 이젠 하나라도 남길 수 있는 사진 작업이 하고 싶어졌어요.”

이렇듯 장윤주의 이해력과 연출력, 표현력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특출하다. 게다가 자신의 몸을 잘 안다. 그렇기에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좋은 사진이 나올지 훤하다. 그녀와 10여 년 넘게 지속적으로 작업한 사진가들은 장윤주를 수동적인 마네킹 따위로 규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다. 맹렬하고 적극적인 조력자로서 스스로를 귀신처럼 잘 안다고 입을 모은다.

“장윤주는 스스로를 잘 아는 모델입니다.” 조남룡은 점잖게 그녀의 재능을 칭찬했다. “자신만 알 수 있는 핸디캡을 극복해 남들과 어떻게 달라 보일 수 있는지를 충분히 터득한 모델이죠.” 메이크업을 마친 그녀의 얼굴이나 몸의 비율을 처음 본 순간, 박지혁은 이렇게 감탄했다고 기억한다. “외계인 같다!” 사실 그 말은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거나 비꼬는 게 아니었다. 지구인 같지 않은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도취돼 나온 감탄이었다.

스타일리스트는 메이크업을 하지 않을 때 그녀가 더 예쁘다고 말한다. “연예인들은 어떤 식으로 꾸며도 고정된 이미지가 남기 마련이에요. 쉽게 바뀌지 않죠. 그러나 모델들은 팔색조가 돼야 해요. 갱스터, 여왕, 요조숙녀 등을 넘나들어야 하죠. 그러나 장윤주는 본인 이미지가 강렬해요.“

조선희 역시 장윤주만의 불변성을 낚아챘다. “모델은 드라마틱하게 변해야 한다고 볼 때 장윤주만의 한결같은 일관성은 모델로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초지일관 덕분에 장윤주는 모델 그 이상으로 진화할 수 있었어요. 만약 너무 변화무쌍했다면 대중이 장윤주 하면 떠오르는 고유 이미지가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단지 패션모델로 그녀의 영역이 한정됐을지 모르죠. 자신의 상징성 덕분에 새 영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같아요.”

최근 모델에서 뮤지션과 엔터테이너로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 김용호 역시 장윤주의 남다른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 “그녀는 쇼업, 쇼잉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사교성, 적극성, 그리고 다양성을 갖춘 채 자신을 가치 있는 삶으로 발전시키고 있죠. 그래서 이번에도 본능적이고 동물적 이해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독립된 존재로서 장윤주는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젊고 싱그러운 여자 가운데 한 명이다(사춘기 소녀의 피부를 지닌 채 청바지에 수수한 레페토 차림). 열여덟 살에 <보그>를 통해 데뷔할 무렵, 누구와 비슷하다든가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는 식의 비교 대상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렇다고 달콤한 미인형도 아니다. 뽀로통한 입매나 째려보는 듯한 눈매, 약간 가로로 벌어진 콧볼만 봐도 그렇다. 한국 모델계에 ‘예쁜이과’가 있고 ‘못난이과’가 있다면(이런 이분법이 분명 논란을 일으키겠지만) 자연스럽게 뒤쪽으로 분류된다. 그런 ‘탈미모’의 개념 아래 그녀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완벽한 보통 사람의 얼굴이다. 반면 몸매는 전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서영희는 말한다.

쉽게 말해 닥종이 인형의 얼굴에 바비 인형의 몸매! 그 모습에 서울 패션 전문가들은 홀딱 반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혼잡 가운데 이 목을 끄는 뭔가를 지닌 모델이 됐다. 쉽게 말해 유머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 그녀는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패피들 특유의 말투를 흉내 낸다(비음 섞인). 이를테면, “안녕하세요”가 아닌, 그녀식대로 정확히 발음하자면 “아녕하세옹~”이다. 이런 능청스러운 태도는 금세 패션 현장에서 인기를 누렸고 유행이 됐으며, 그녀가 있는 곳에는 늘 왁자지껄, 박장대소, 포복절도 사운드가 끊이질 않는다.

분위기 메이커의 능력도 탁월하지만, 서영희는 이번에 이틀 동안 여섯 건의 촬영을 함께 하며(그야말로 패션판 맹모삼천!) 장윤주가 비로소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했다고 전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탄자니아 등으로 봉사와 선교 활동을 떠나며 신앙 안에서 체험한 기도와 응답을 통해 무척 성숙하게 자라고 있었어요. 심지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이렇듯 그녀의 아름다움은 외면을 통해 내면의 복잡함이 그대로 표출된다.

하나로 쉽게 정의하기 힘든 장윤주와 촬영하면 뭔가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고 홍장현도 고백한다. “사진가와 모델을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요약할 때 촬영장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뭔가를 줘야 할 때가 있는 반면, 장윤주와의 촬영에서만큼은 남자가 여자에게 받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여자’로 인식되죠.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울 땐 모델이 아닙니다. 여자 그 자체죠.” 그 장윤주는 이제 세 사람으로 봐야 한다. 모델인 동시에 뮤지션이고 엔터테이너. 물론 유부녀가 된 뒤에도 1인 3역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녀에 대해 조선희는 인간을 뭘 그렇게 복잡하게 분해하고 연구하냐는 투로 이렇게 말한다. “장윤주는 그냥 장윤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