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워크 건축학개론

패션쇼가 자잘한 데커레이션으로 캣워크를 꾸미는 데 그치지 않고 판을 키우기 시작했다. 지구 어디든 부지만 확보되면 초대형으로 짓고 곧장 허무는 캣워크 건축학개론.

 

그곳은 서울 잠실에 있는 어느 테마파크 공원 CM송 가사처럼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다. 바이킹호 저리가라 싶은 유람선이 뜨는가 하면(2006 S/S 겐조), 청룡열차 뺨치는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들이닥칠 때도 수차례(1998 F/W 디올, 2012 F/W 루이 비통). 놀이동산의 꽃인 회전목마? 뭔가 더 비현실적으로 꿈꾸고 싶을 때 단골로 설치된다. 때론 새하얗게(2012 S/S 루이 비통), 때론 으스스하게(2001 F/W 맥퀸), 때론 화려하게(2008 F/W 샤넬), 대론 우스꽝스럽게(2008 S/S 존 갈리아노). ‘우리가 꿈꾸던 그곳’은? 1년에 여러 번(기성복, 꾸뛰르, 남성복, 여기에 이런저런 프리폴과 크루즈까지) 전 세계 패션 수도들은 물론 지구 요지에 마련하는 패션쇼장이다.

사실 어떤 경우엔 패션쇼장을 ‘지을’ 일 없다. 명승고적이나 의미심장한 건물을 섭외해 의자와 조명을 설치한 다음 모델들을 동선에 따라 걷게 하면 끝이니까. 이를테면 파리 시청(드리스 반 노튼), 에꼴데보자르(랑방), 오페라좌(스텔라 맥카트니) 등등. 그런가 하면 전용 패션 극장에서 디자이너가 자기 맘대로 쇼를 여는 경우도 허다하다. 돌체앤가바나부터 조르지오 아르마니까지.

그러나 자기 공간이 있든 없든 오대양육대주에 패션쇼 부지만 확보되면 금세 뚝딱 세워 웬만한 빌딩 뺨치는 패션쇼장을 짓고 허무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미리 귀띔해두자면, 그들의 스케일이나 배짱으로 치면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울고 갈 정도.

아닌 게 아니라 게리가 심히 질투하고 샘냈을 만한 패션쇼장이 이번 파리 패션 위크의 대미를 장식했다. 게리가 블로뉴숲에 유령선처럼 비현실적 형태로 그가 지은 루이 비통 재단의 내부 공간을 마다하고 그 옆에 대형 돔 세 채를 새로 지은 루이 비통(지난 시즌 패션쇼는 루이 비통 재단 내부에서 열렸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지령에 의해 건축된 디오데식 돔은 그가 지닌 미래주의 기질의 건축판이었다. 수치에 예민한 팬들을 애태우듯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건물을 짓기 위해 몇백만 달러가 들어갔다는 후문(베르나르 아르노의 LVMH 명품 유통그룹의 대표 브랜드를 위해 쓰인 돈치곤 적은 비용이라는 평).

이와 함께 버섯 모양의 돔 구조물에 들러 내부를 둘러보던 관객들의 또 다른 호기심이라면? “이게 언제까지 설치되는 거죠?” 이에 대한 루이 비통 담당자들의 대답은? “오늘뿐!” 패션의 순간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 신기루 같은 쇼장은 세계적 건축가 버그민스터 풀러의 돔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됐다(60년대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의뢰받아 제작된 해군 기지용 돔으로 지금은 저가 주택으로 사용되는 중).

하지만 디자이너가 어디서 영감을 얻었고, 그걸 짓는데 얼마나 쓰였으며, 또 언제 철거되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했던 사안은 따로 있다. 서로 연결된 돔 가운데 다분히 모던한 곡선형 벽, 색을 입힌 좌석, 그리고 자연광이 드는 기하학 천장 등으로 구성된 건축물 그 자체. 한마디로 제스키에르가 이번 시즌 제안한 패션의 활기와 썩 잘 어우러졌다.

 

이렇듯 요즘 루이 비통은 물론 샤넬이 추진하는 행사들을 보고 겪다 보면 공통점이 발견 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어디라도 가서 주춧돌을 놓고 철근을 세워 브랜드 전당을 뚝딱 짓는다는 것. 이를 위해 두 패션 명문가는 회사 내부에 일종의 비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풍문에 의하면 그 팀의 이름은 일명 ‘묻지 마!’ 팀. 아이디어에도 한계가 없고 이를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 역시 무제한! 샤넬은 이미 두바이 쇼를 위해 해변에서 반 마일쯤 떨어졌으며 두바이의 셰이크 함단 황태자 개인 소유의 인공섬에 두 달 동안 쇼장을 지은 전례가 있다(루이 비통이 모나코 궁전 앞 광장에 지은 쇼장과 비교 자체가 우스울 만큼 대규모).

보시다시피 지구본을 돌려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기도 하지만 샤넬 하우스는 그랑 팔레를 선호한다. 1900년에 홀 길이 200m에 너비 55m에 높이 43m 규모로 완공된 그랑 팔레 안에서 칼 라거펠트는 조물주를 자처한다. 건축 당시부터 혁신적이었던 기마르 양식과 청동 조각은 라거펠트가 내부에 지은 이런저런 건물이나 자연 생태계와 기똥차게 조화를 이룬다. 빙산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 방돔 광장과 가상의 샤넬대로, 심지어 아트 페어부터 대형 슈퍼마켓까지.

그때에 비해 비교적 규모는 약소하나 이번에 만들어낸 건 웬만한 동남아 쇼핑몰보다 더 큰 초대형 프랑스 식당(동시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니 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중국 ‘서호루’의 패션 버전). 이름하여 ‘브래서리 가브리엘’에는 샤넬 사람들이 공들여 세팅한 잘 다듬어진 회전문과 나무 바, 테이블, 의자들, 종려나무 가지와 빨간 비트 꽃 장식, 분홍색 카멜리아 꽃송이를 인쇄한 페리에 주에, 여기에 크루아상과 커피까지 200% 완벽한 상태로 연출됐다. 라거펠트의 ‘카페 소사이어티 놀이’를 위해 지은 이 프렌치 식당 역시 루이 비통의 돔 세 채처럼 1회 영업을 끝으로 철거됐다.

 

그랑 팔레에서 창조주 행세하는 라거펠트처럼 기존 건물 안에 세운 또 다른 건물 형식은 잿빛 패션 도시 밀라노에서도 볼 수 있다. 밀라노의 고매한 패션 창조주의 예술적 성지는 폰다치오네 프라다. 헤르조그 드 뮤론이나 렘 쿨하스 등과 함께 목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삐까번쩍’한 건물을 세운 프라다(도쿄 오모테산도의 일명 벌집 매장부터 서울 경희궁 앞에 마련된 트랜스포머까지)는 22세기에 더 어울릴 사무실을 이곳에 지었다.

패션쇼 취재 기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무수히 많은 작은 방으로 쪼개 추상적 관점에서 비율이 왜곡돼 보이도록 제작됐고, 각자 앉은 자리마다 관점이 달라 보이는데다, 수많은 반복과 대칭으로 구성돼 무한한 공간처럼 보이도록 착시를 유도한 사무실. 게다가 죄다 분홍색과 초록색으로 페인트칠 됐고 알루미늄 바닥의 기하학 조각들이 왜곡된 공간 속의 배열을 나타냈다는 것. 그리고 5월엔 밀라노 남부 라르고 이사르코에 프라다 문화재단이 새롭고 영구적인 공간을 연다. 다음 시즌 이곳에서 프라다 여사는 또 어떤 패션 캣워크 건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구찌 역시 혁신을 꾀했다. ‘갖가지 소르베빛 카펫이 깔린 메탈 천장의 건물을 가로질러 나온 패션쇼 일개미들은 퇴근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밀려들었다.’ 대대적 혁신 시리즈의 하나로 새로운 쇼장을 준비한 구찌 캣워크에 대한 비유다. 톰 포드 시대 이후 단 한 번도 동선을 바꾼 적 없던 구찌 무대가 기존 일자형 무대를 무너뜨리는 대신 중앙에 의자를 배치하고 네모난 메탈 런웨이를 지은 것.

예수님처럼 짙은 색상의 긴 머리, 검정 터틀넥, 히피-보헤미안 풍의 목걸이, 턱수염이 인상적인 엘레산드로 미켈레는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에 젊음을 주입하라는 사명을 받아 하이힐, 디스코, 레드 카펫 드레스를 미련 없이 버렸다. 또 레드 카펫 같은 런웨이가 아닌, 현실로 파고들기 위해 지하철 터널 같은 미장센 효과를 원했다. 미켈레의 의도는 ‘리얼’했다. 자신의 첫 번째 의상과 건축은 당대 패션이자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캣워크 인테리어쯤이 아닌, 캣워크 건축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압도적 스케일은 패션 아메리칸 드림을 성사시키는 뉴욕에서 판이 커졌다. 타미 힐피거는 파크 애비뉴 아모리(예비군 소집 장소) 내부에서 시공간의 충돌과 하모니를 동시에 일으켰다. 대체 그것은 1985년 슈퍼볼 결승전 경기장인가, 아니면 1985 F/W 런웨이인가? 올해 브랜드 3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힐피거는 인조 잔디, 광고판, 골대, 점수상황판 등으로 꾸민 사상 초유의 패션 경기장을 건설했다(‘Randall Peacock’ 디자인 스튜디오에 의해 건축된 철저히 미국적인 캣워크 메이킹 과정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힐피거 측은 비용 공개를 숨기는 대신, 짓는 데만 4~5일이 소요됐다고 기자들에게 슬쩍 흘렸다. 이렇듯 뉴욕에서도 쇼 마스터가 애국심을 과시하기 위해 경기장을 짓고 부셨다.

 

자유의 여신상이 내려다보는 맨해튼 마천루에서 에펠탑 아래 모든 건축물을 구경할 수 있는 나지막한 지붕의 패션 수도로 되돌아가 보자. 보이지 않은 어떤 손에 의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로봇 벽을 세워 자동 변신 가능한 런웨이를 19구 촬영소에 지은 겐조. 높이 9m짜리 초록과 하양과 파랑 벽체는 거울이 달린 6개로 쪼개진 뒤 모델들을 따라 매스게임하듯 일사분란하게 축구장만한 대지 위에서 ‘헤쳐모여’를 반복했다. 겐조의 움베르토와 캐롤은 야생, 특히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맘모스급 초록벽으로 숲을 표현했다지만, 영화 <메이즈 러너> 미로처럼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이 역시 유튜브 영상을 꼭 보시길!).

 

겐조가 벽을 공깃돌 놀리듯 맘대로 갖고 놀았다면, 생로랑은 캣워크를 1m 이상 공중 부양시켰다. 이제 관객들은 에디 슬리먼 시대 이후 생로랑 쇼에선 스틸 트라이앵글을 대형 비계(건축학적 용어) 시설에 매단 기계 조합물이나 거대한 유압식 기계의 미치광이 같은 엔지니어링 쇼를 기대한다. 이번엔 체인 스프러킷(chain-sprocket) 시스템을 도입, 객석을 제외한 무대 전체를 바닥에서 끌어올렸다.  그로 인해 프런트로 관객들은 고개를 젖힌 채 맨 앞줄에 앉아 영화를 보는 듯 뒷목이 뻐근했지만, 미래의 지하 세계라도 훔쳐본 듯 무대 아래의 환각적 조명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눈부신 조명과 은색으로 번쩍이는 무대장치 덕분에 TV 방영을 위해 녹화 중인 록 콘서트 현장처럼 신나게 들썩였음은 물론이다. 이거야 말로 생로랑 쇼의 백미!

 

한편 파리라는 도시 자체에 여전한 애정과 집착을 지닌 채 캣워크를 지은 패션 가문도 있다. 발렌시아가는 봉마르셰 백화점 인근에 새로 짓는 케어링 그룹 파리 본사 건물 부지에 1회용 쇼장을 지었다(신비감과 호기심을 더하는 미로 통로를 한참 지나자 나타난 건 회색 체크 카펫이 깔린 십자 런웨이). 프랑스 문화혁명이 일어난 1968년 당시 중심지였던 파리 좌안의 소니아 리키엘 매장은 줄리 드 리브랑이 두 시즌 만에 내부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파리의 유적 같은 생제르맹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 겸 보헤미안 북카페를 완성한 것(유럽에서 알아주는 아트 디렉터인 앙드레 사라이바와 토마스 렌탈의 솜씨로 입술이나 불붙은 담배 등으로 구성된 그래피티 작품을 카펫에 담아 바닥에 깔았고, 책 5만 권을 꽂은 새빨간 책꽂이로 벽을 대신했다). 그러고 보니 발렌시아가 쇼장은 1회용인데 반해, 소니아 리키엘은 반영구적인 셈이다.

지금은 모든 것들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강력히 상호작용을 한다. 디지털 세상과 온라인 수단과 하이테크적 과정 등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극도로 피상적으로 느껴지니까. 패션쇼를 직접 가서 봐야 하는 이유, 게다가 요즘처럼 규모와 판이 커진 캣워크의 건축적 위대함을 직접 느껴야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물론 건축적 스펙터클과 함께 옷에 대한 정확성이 관객에게 전달돼야만 디자이너의 패션 건축학개론은 100점 만점에 100점. 가만 있자, 누군가가 백화점을 현대 상업의 대성당으로 지칭했나? 한 시즌 패션을 건축적으로 기록했다는 측면에서 우리 시대 슈퍼 디자이너들의 캣워크야말로 패션의 대성당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