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어리 순례

맥주 마니아들은 요즘 행복하다. 맥주의 요람인 브루어리가 속속 생겨 사랑스러운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고, 갓 뽑은 신선한 맥주를 원 없이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국내 브루어리 네 곳을 돌았다.

 

애주가에게는 여행의 재미가 한 가지 더 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을 마시는 것, 그리고 그 술이 만들어지는 양조장에 직접 찾아가는 것! ‘맥덕(맥주 덕후)’이라면 누구나 체코에 날아가 필스너 우르켈 브루어리에 가보는 걸 가슴속 로망으로 품고 산다. 오크 통에서 무르익은 필스너 우르켈을 따라 벌컥벌컥 마실 수만 있다면! 주세법 개정으로 일어난 크래프트 맥주 붐은 경리단길을 넘어 맥주의 요람 ‘브루어리’로 이어지고 있다. 생산자들은 마시고 싶던 맥주를 향한 실험 정신을 발휘하고, 수용자들은 그 맛을 더 생생히 느끼고 싶어 브루어리를 찾는다. 라거가 전부였던 야만의 시대가 끝난 이후, 요즘 브루어리를 둘러싼 풍경은 맥주의 르네상스처럼 활기차고 다채롭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한국에 최초로 세워진 크래프트 브루어리다. 위치는 충북 음성. 관광지도, 유적지도 없지만 좋은 물, 풍부한 식재료를 따라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삼각형 지붕이 차례로 이어진 벽돌 건물의 모습은 공장보다는 갤러리를 떠올리게 한다. 비밀스러운 문은 매주 주말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열린다. 투어는 맥주 재료를 만져보고 맡아보고 씹어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비를 돌며 설명을 듣는다. 숙성실 탱크에서 바로 뽑아 마시는 생맥주 한 잔도 포함이다. 투어가 끝나면 탭룸에서 로컬 푸드로 만든 안주와 맥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애플 디자이너 출신 헤드 브루마스터 마크 헤이먼이 상주하고 있는 이곳 브루어리에서 현재 생산되는 맥주는 10여 종. 올 초에는 자체 브랜드 아크 비어(ARK Beer)를 론칭, 병입 맥주 생산을 시작했다. ‘허그 미(Hug Me)’와 ‘비 하이(Be High)’가 그 주인공이다. 여름을 기다리며 열대 느낌이 가득 담긴 시즌 맥주도 개발하고 있다. 종류에 따라 30분, 혹은 1시간씩 진행되는 이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음성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버스도 대절했다. 이름하여 ‘You Drink, We Drive’.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 가장 맛있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버스를 타면 시카고 브루어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상영된다. 설레지만 어색하게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이 서울로 돌아올 때는 모두 뜨겁게 하나가 되어 돌아온다. 그 인기에 힘입어 투어와 버스 티켓은 연일 매진이다.

 

남양주에 위치한 ‘더 핸드 앤드 몰트 브루잉 컴퍼니’는 신청자가 있을 때만 열린다. 이름처럼 설비와 시스템 대부분을 직접 손으로 만들며 크래프트 맥주계에서 유명세를 탔다. 이곳 브루어리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엑스트라 스페셜 에일, 모카 스타우트 등 다섯 가지. 전국 80~90여 곳의 펍에 유통되고 있어, 그 맛에 반한 사람들의 요청으로 두 달 전부터 브루어리 투어를 시작했다. 맥아 가는 과정부터 당화, 자비, 여과조 등 맥주 생산 과정을 스타 브루마스터 필립 켈름과 도정한 대표가 직접 설명해준다. 마무리는 역시 발효 통에서 갓 뽑은 싱싱한 맥주 한 잔! 가장 맛있는 맥주는 알고 마시는 맥주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더 핸드 앤드 몰트 브루잉 컴퍼니는 얼마 전부터 홉 농사도 시작했다. 브루어리 옥상에 가면 홉이 덩굴째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더부스에서 한 달 전 오픈한 ‘더부스 판교 브루어리’는 맥주 실험실에 가깝다. 3년 전 <이코노미스트>지에 ‘한국 맥주가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로 맥주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다니엘 튜더와 한의사 출신 김희윤, 투자 자문가 경력의 양성후 셋이 모여 야심 차게 더부스의 문을 열었지만 처음부터 맥주를 직접 생산할 수는 없었다. 레시피를 위탁해 맥주를 공급받았지만 실험적인 맥주를 상시로 만들어주는 곳은 없었고, 계속되는 갈증에 직접 브루어리를 차렸다. 브루어리를 열고 처음 내놓은 맥주도 실험 정신이 가득 담겨 있다. 귤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잘라 넣은 윗 마이 홉스, 라즈베리를 넣은 라즈베리 스타우트다. 한국에서 가장 작을지도 모르는 브루어리라 한 번에 생산하는 양은 12 케그뿐. 1~2주에 한 번씩 내놓는 신제품이 모두 한정판인 셈이다. 논란의 ‘대동강’ 병맥주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더부스 브루어리는 평일에는 부지런히 맥주를 만들고, 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만 바를 오픈한다. 아기자기한 공방이 모여 있는 판교 골목에서 발효조를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축복이다.

 

‘레비 마이크로 브루어리’는 양조장과 펍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가도 브루마스터가 끝까지 책임지는 맥주를 맛볼 수 있단 얘기다.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받아서 판매하는 맥주는 없다. 직접 탱크를 설계하고, 독학으로 맥주를 배운 1세대 브루마스터가 정성껏 키워내는 맥주 때문에 맥주 동호회의 단골 순례 장소다. SNS에 숙성 기간을 공지,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긴 시간 숙성한 맥주는 부드럽고 깨끗하며, 짧게 숙성한 맥주는 거칠고 몰트 향이 강하다. 도미노 피자보다 맛있게 피자를 만들지 못할 바엔 잘하는 데만 집중하자는 원칙 때문에 감자튀김 외에 안주 메뉴는 없다. 음식을 가져오거나 배달 주문을 권한다. 가장 맛있는 맥주는 정성이 들어간 맥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유난히 손 맛이 느껴진다. 발효 탱크에서 풍기는 구수한 향은 술맛을 돋운다.

지난 4월 가평에서는 제1회 수제 맥주 페스티벌이 열렸다. 전국의 수제 맥주 브루어리에서 부스를 설치했고, 무대엔 DJ와 뮤지션들이 올랐다. 맥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맥주를 얘기하며 맥주를 즐겼다. 그레이트 코리안 비어 페스티벌은 100여 가지 맥주로 맥덕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맥주가 있는 게 아니라, 맥주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이 계절, 맥주는 가장 뜨겁고 가장 시원하다. 다채로운 브루어리에 맥주의 지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