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때 미는 여자

2016.03.16

by VOGUE

    때 미는 여자

    한 달에 한 번 이곳을 찾는 여자들은 여름이 두렵지 않다. 팔꿈치와 발뒤꿈치는 사시사철 매끈하고, 팔다리엔 윤이 난다. 때 좀 밀어본 베테랑이 엄지를 치켜든 최고의 목욕탕과 지금 이맘때 때를 밀어야 하는 이유.

    FINAL_187

    작년 봄 방한한 뷰티 엑스퍼트 케이트 서머빌은 서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사우나’라고 답했다. “덕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까지 13시간 동안의 비행 여독을 말끔히 풀 수 있었어요.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할 예정입니다.” 기네스 팰트로와 미란다 커도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때밀이 문화에 푹 빠져 있다고 고백했다. 한자어로 씻을 세(洗)와 몸 신(身). 일본과 중국에도 공중목욕탕은 있지만 남의 몸을 씻겨주는 ‘세신사’는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문화다.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국 여자라면 어린 시절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엄마와 손잡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장면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귀차니즘이 정점을 찍던 사춘기 무렵 자연스레 목욕탕과 멀어졌고, 이젠 때를 민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겨우내 방심한 종아리 앞쪽과 팔꿈치는 뱀살처럼 하얗게 튼 데다 복숭아뼈 근처는 손끝으로 살짝만 문질러도 지우개 가루 같은 때가 술술 밀리니 뷰티 기자로서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누룽지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발뒤꿈치는 또 어떻고!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솔깃한 정보를 전했다. “가로수길에 있는 ‘유사우나’에 한번 가봐. 여기 목욕관리사 실력이 정말 끝내줘!”

    유행이 살아 숨쉬는 세로수길 골목 한 구석엔 세신의 성지로 불리는 목욕탕이 우뚝 솟아 있었다. 때 좀 밀어본 여자들 사이에서 ‘신의 손’이라 불리는 그녀의 손맛을 보려면 예약은 필수. 5월엔 짝수 날에만 나온다는 친구의 제보에 어린이날 전날로 냉큼 날을 잡았다. 성형 시술을 앞둔 심정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양치만 한 상태로 후드티에 붙어 있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사우나 유리문을 통과했다.

    입장료는 1만원. 데스크에서 2만5,000원짜리 미니 마사지를 신청하고 온탕에서 몸을 불린 지 20분쯤 지났을까? 말로만 듣던 신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때 미실 거죠? 이리 오세요.”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세신실의 매끈한 고무 베드에 몸을 누이자 때수건을 장착한 그녀의 두 손이 바삐 움직였다. 그녀의 요청대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엎드려 누웠다, 왼쪽 옆으로 누웠다, 오른쪽 옆으로 총 네 번 자세를 바꾸는 동안 강약 조절이 어설퍼 눈살이 찌푸려지기는커녕 어찌나 편안하던지 알몸의 민망함도 잊은 채 깜빡 졸기까지 했다. 발뒤꿈치 각질을 밀어내고 거품 샤워와 오일 마사지로 마무리하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가격 대비 만족도는 최상에 가까웠다. 이러니 최근 드라마로 컴백한 원조 미녀 탤런트 K양부터 아나운서, 모델들의 사랑방이 될 수밖에!

    피부 좋기로 소문난 여인들을 살살 캐보면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들러 때를 민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 PR 매니저는 한 달에 한 번 때를 밀지 않으면 온몸에 가시가 돋는 목욕탕 마니아다. 그녀의 단골 목욕탕은 세 군데. “프리마호텔, 신라호텔, 스파레이를 즐겨 가요. 물 상태는 물론 관리사의 실력도 최상급이죠.”

    발몽 PR 매니저 용은주의 단골 목욕탕은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우리유황온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르니 1년에 최소 네 번은 가죠. 목욕탕 마니아로서 장소 선택 기준이 나름 까다로운 편인데 여긴 마음에 쏙 들어요. 물에 몸을 담갔다 나왔을 뿐인데 온몸이 매끈매끈 부드러워진답니다.” 서울에 있는 온천 중에서 가장 깊은 지하 1,040m에서 유황온천수를 끌어올리는 이곳은 열탕과 온탕 외에 편백나무로 만든 히노키탕도 마련돼 때를 불리는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게 매력 포인트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때를 밀어본 사람보다 안 밀어본 사람들이 훨씬 많다. 사실 때를 밀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그래서 때는 안 밀어도 그만이라지만 여름철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각질층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정도가 달라지기에 부위별로 살이 얼룩덜룩하게 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이맘때 겨우내 묵은 때를 한번 시원하게 밀어주면? 팔다리에 들쭉날쭉 자리 잡은 각질층이 한 겹으로 정돈되면서 태닝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진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세신의 바람직한 주기는 한 달에 한 번. “각질 층을 구성하는 각질 형성 세포는 약 4주간 생성돼 분화를 거쳐 표피에 머뭅니다. 따라서 각질 형성 세포주기를 4주로 잡는다면 최소 한 달 이상 간격을 두고 때를 미는 게 바람직하겠죠.”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피부과 전문의 유화정 교수의 설명이다. 피부 건조증이나 아토피 피부염이 의심된다면 억지로 때를 밀어선 안 된다. 두 경우 모두 보습제로 눌러줘야 하는 각질이지 억지로 밀어버렸다간 오히려 피부염을 악화시키니 주의하자.

    또 열탕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입술이 마르고 머리가 띵하다. 이건 몸 속에 수분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때를 불리는 준비 과정을 비롯해 때를 미는 행위 자체가 피부로부터 수분을 많이 빼앗아 가기에 이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때를 밀고 나온 직후 온몸에 보습제를 꼼꼼히 발라줘야 한다. 충분한 수분 섭취도 잊지 말자. 500ml 생수를 구입해서 틈나는 대로 목을 축여주면 문제될 건 없다.

    진정한 멋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옷도 신경 써서 갖춰 입는 법. 겨우내 묵은 각질과 발뒤꿈치 굳은살 제거에 필요한 시간은 기껏해야 60분, 단돈 3만원이면 여름 준비는 끝난다. 무얼 더 망설이나?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모델
    조희
    스탭
    헤어 / 이선영, 메이크업 / 이자원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