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표상, 윤계상

약자의 편에 선 윤계상이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영화에서도, 삶에서도 소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에게 더 이상 흔들림은 없다.

체크 프린트 베스트, 팬츠, 셔츠, 사선 타이, 구두는 모두 구찌, 시계는 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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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다.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이 크랭크업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건 2013년 6월이었다. 이후 개봉일 확정 뉴스가 수순으로 따라왔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개봉 지연 논란이 일어났고, 작가는 페이스북에 영화를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소수의견>은 자기 스크린을 찾지 못했다. 사회참여적 영화라는 주제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예시 신세가 됐다. 공식 해명은 없었지만 드디어 <소수의견>이 개봉한다. 배급사가 바뀌고 비로소 개봉일이 잡혔으니, 그동안 추측이 어느 정도는 타당성이 있었던 셈이다. “마냥 기다린 것 같아요. 개봉을 안 할 것 같은 느낌은 없었어요. 그래도 생각한 것보단 일찍 잡혔 어요. 내년으로 넘어갈 줄 알았거든요. 개봉한다는 얘길 듣고 그저 감사했죠.” 윤계상은 먼 길을 돌아와 이제는 초연해진 담담한 얼굴이었다. 다른 배우들 역시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을 거다. 제작 보고회에서는 2년의 시간을 두고 여러 농이 오고 갔다. “두 배우의 투샷이오? 기억이 잘…(김성제 감독).” “저는 변호사였을 거예요. 하도 오래돼서…(유해진)” “젊은 우리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기대됩니다.(김의성)” “2년 전에는 흰머리가 적었을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권해효).” 사회를 맡은 박경림은 예고 영상을 보며 다들 ‘리즈 시절’이었다고 마무리 발언을 해줬다.

<소수의견>은 강제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을 은폐하려는 국가와 이에 맞서는 변호사들 간의 대결을 그린다. 손아람 작가는 소설 첫 페이지에 사건은 실화가 아님을, 인물은 실존하지 않음을 적어두었지만 2009년 용산 참사가 떠오르는 걸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뜨끔해 2년 동안 영화를 감옥살이시킨 현실의 권력자들이 있는 한편, 국선 변호사 윤진원 역할을 맡은 윤계상은 <소수의견> 시나리오에서 슈퍼맨을 보았다. “재미있었어요. 예전부터 약자를 위해 나서는 캐릭터를 꼭 한번 연기해보고 싶었거든요. 저에게 윤진원은 슈퍼맨이에요. 히어로물을 보면 자기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다가 어떤 순간을 계기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잖아요. 지방대 출신에 경력도 후진 국선 변호사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서 하나하나 변해가는 모습이 딱 그렇게 보였어요.”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고 윤계상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단다. 다들 조금 더 대중적인 영화를 하라고 했다. “망설이긴 했죠. 그런데 하고 싶은 걸 어떡해요. 모티브가 된 실화, 정치적 이해관계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배우니까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만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비스티 보이즈> <집행자> <풍산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레드카펫> 등에 이르기까지 윤계상은 사실 누구 눈치를 보며 작품을 고르는 타입은 아니다. 윤진원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보다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할 수 있는 걸 끊임없이 찾아내는 변호사였다. 전작 <레드카펫>에 이어 윤계상은 또 한 번 성장 하는 힘을 선택했다. 다른 사람이 힘들면 더욱 에너지가 활활 타오르는 정의감도 탑재했다.

블루종은 발렌티노, 라운드 티셔츠는 타임 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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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가진 고민이 담겨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서른 넘어 제가 가진 고민이 <소수의견>에 있었죠.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나는 과연 앞장설 수 있을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차기작 로맨틱 코미디 <극적인 하룻밤>을 선택할 때는 과거가 한창 그립던 시점이었다고 덧붙인다. “작년에 다시 god를 하면서 잊고 있던 발랄하고 통통 튀던 제 모습을 찾고 싶었어요. 체육 교사 정훈에게 그때 제 모습이 불현듯 겹쳐졌거든요.” 그러니까 윤계상은 배역에 항상 자신을 투영시키는 타입에 가깝다. 어떤 배역이든 내 얘기인 구석을 찾아야 마음도 준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작품을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는 오히려 윤계상 연기에 진정성을 부여한 힘이 되었다. 윤계상은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소수의견> 마지막 촬영일 사진과 함께 ”얼굴에 그 시간이 그 흔적이 묻어 있다”라는 멘션을 올렸다.

2년의 시간이 냉동되고,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소수의견>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 편의 법정 드라마이기도 하다. 김성제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말로 하는 액션극이다. 배우들은 입에 붙지 않는 법률 용어와 긴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엎치락뒤치락 계속되는 반전, 극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 힘 조절을 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윤계상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목표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윤진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  “힘든 점은 없었어요. 계속 걱정만 했죠. 잘돼야 할 텐데, 잘해야 할 텐데…(웃음). 힘을 빼려고 진짜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선배님들을 많이 쫓아갔고, 의지했던 작품이에요.” 전체적인 이야기를 위해 자신은 뒷전인 배우 이경영, 권해효, 김의성, 그리고 무엇보다 유해진이 있었다. “말이 필요 없는 분이죠. 〈이끼〉의 독백 장면 어떻게 연기하신 건지 드디어 여쭤봤어요. 한 달동안 제주도 여행하면서 그 대사만 연습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가 유해진이 그 대사를 그렇게 연습했다고 생각하겠어요. 정말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예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좋은 배우들과 함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촬영장에서 윤계상의 하루는 늘 선배님들과 드립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됐다. 그는 많은 공을 선배님들에게 돌렸지만 <소수의견>은 분명 결과에서 마음의 부담을 덜어낸 그가 선보이는 진짜 현실 같은 연기 한판이 될 것이다. 작년에 영화 <레드카펫>으로 인터뷰를 했을 때 예전 같으면 본인이 약하다고 느끼는 딕션이 고스란히 드러날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깨버리고 싶던 마음과 선택 모두 옳았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아직 만들어가는 단계예요. 연기, 배우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뀌는 거 같아요. 과연 정확한 딕션이 좋은 것인가. 아닐 수도 있겠다… 스킬보다는 ‘정확한 전달’이 중요한 거구나. 연기에 있어 발전이 있다면 이때가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티셔츠와 팬츠는 앤 드멀미스터, 트렌치코트는 우영미, 어깨 밴드는 드리스 반 노튼, 샌들은 올세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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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발전을 도모한 게 있다면 라이프 자체다. 한마디로 그는 변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윤계상의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가 얼마나 배우로서 열망이 컸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괴롭혀왔는지. 결핍에 대한 에너지로 싸워왔던 그는 몸과 마음 모두 바닥까지 드러낸 뒤 연기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버렸다. 인생에는 연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연기자 윤계상, 부모님의 아들 윤계상 두 가지 자아로만 살던 시간,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았다. god 윤계상, 반려견 감사 아빠 윤계상, 소품 숍 사장 윤계상… 여러가지 윤계상을 불러냈다. “지금은 여러 분야의 윤계상을 즐기며 지내고 있어요. 하하.” 한 달 전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Something Zero’를 연 건, 행복에 대해 바뀐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바쁜 일상에서 가끔 하늘을 쳐다 볼 때 받는 편안함, 좋아하는 소품을 만지작거리면서 오는 행복감, 이제는 인스타그램에서 아빠 윤계상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반려견 감사가 준 기쁨까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특별해야만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매장에 별로 대단한 건 없어요. 계상이 집에 놀러 온 것처럼 꾸몄어요. 개인 소장품도 많이 가져다놨어요. 팔지 못하는 것들이죠. 소품집인데 부엌도 있고 되게 이상해요.(웃음)” 숍에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겼다. 공간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그 과정은 SNS에 고스란히 기록되고 있다. Passion, Friend, Humor, Active… 입구 계단에 한 단어씩 직접 써내려간 단어들은 지금 그의 마음만큼이나 담백하다.

기억하는가. 사실 윤계상은 god에서 웃음 담당이었다(그는 유머 감각을 두고 스‘ 무 살 때까지 할아버지와 한방을 썼기 때문에 철이 빨리 들었고 노인네 같은 구석이 있어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게 아닐까’라고 분석해줬다). 천성이 있다면 음지보다는 양지에 가까운 사람이다. 팬들은 2년 동안 변한 그를 두고 인상이 더욱 부드러워졌다고 말한다. 예전보다 많이 웃냐는 질문에 들려준 대답은 ‘하고 싶은 대로’다. “예전보다 더 안 웃을 수도 있고 더 웃을 수도 있어요. 마음대로예요. 내가 뭘 원하는지,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신기하게도 긍정의 에너지가 더 강하네요. 이제는 에너지가 고갈돼도 금방금방 채워져요.” 김성제 감독은 윤계상이 가진 청년의 표정이 좋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촬영을 마칠 때 즈음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라고 평가했다. 윤계상이 배우로서 ‘담당’이 있다면, 불완전한 감정의 조각을 체화시켜 공감을 끌어내는 것 아닐까.

<소수의견>은 결국 관객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이란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윤계상 역시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소중한 건 시간이 지나야 아는 것 같아요. 매 순간 후회 없도록,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할 거예요. 행복에 다가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윤계상은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 한 구절을 들려줬다. “‘사랑은, 나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함께한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인생이 아니겠는가.’ 이 말을 좋아해요. 전 정말 이렇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