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빕스코브와의 인터뷰

핑크와 빨강이 작열한다. 무대 위엔 요상한 물체가 꿈틀댄다. 패션, 아트, 영상을 넘나드는 덴마크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는 오감을 넘어선 감각의 세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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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쇼는 한 편의 기묘한 영화 같다. 모델들이 캣워크를 하다 말고 무대 위에 설치된 플라밍고의 긴 목을 늘어뜨리며(2013, 가을/겨울),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연상케 하는 무대 위에선 모델들이 북을 치며 태엽을 돌린다. 쇼윈도의 런웨이라기보단 관객에게 새로운 체험을 제안하는 공연이다. 그는 매번 쇼에 제목도 붙이는데 그 뉘앙스가 여느 영화 타이틀 못지않다. 가령 플라밍고가 등장한 2013년 패션쇼의 제목은 ‘완고한 사람의 방(The Stiff Neck Chamber)’이었고, 바로 지난해 파리와 코펜하겐에서 가진 쇼의 타이틀은 ‘더 스파게티 핸드잡(The Spaghetti Handjob)’이었다. 확실히 새로운 룩의 표제어라 하기엔 거대한 이름들이다.

“쇼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길 즐긴다. 프런트 로의 사람들, 그리고 뒷줄의 사람들. 매우 강한 긴장이 느껴지는데 그게 연극적인 요소로 보이기도 한다. 음악을 통해 한 순간에 공포 무드를 만들어낼 수 있고,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요소를 패션쇼에 가져오는 것 같다.” 그에게 패션은 하나의 메인 주인공이라기보다 새로운 세계의 다양한 오브제 중 하나이고, 그 덕에 그의 옷은 고정적인 복식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난다. 바닥까지 끌리는 거대한 로브 스타일 코트, 돼지 한 마리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디자인의 토트백, 과감한 라인과 비비드한 컬러의 옷들. 이 기묘한 물체는 사실 ‘헨릭 빕스코브란 이름의 이상한 나라’ 속 소품인 것이다.

7월 9일부터 12월 말까지 대림미술관에서 헨릭 빕스코브의 전시가 열린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패션 디자인부터 뮤지션, 아티스트로서의 작업까지 총 망라하는 국내 첫 번째 전시다. 지난 4월 헨릭 빕스코브는 서울을 찾아 공간에 대한 사전 예습을 했다. “보통 전시라고 하면 하나의 테마를 갖고 진행되기 마련인데 이번 전시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인, 나의 세계를 총 망라하는 기회가 될 거다.” 그에게 공간은 단지 전시를 위한 멍석을 넘어 작품을 위한 팔레트이기에 사전 내한은 7월 전시의 밑그림 작업에 가까웠다. “대림미술관이 넓은 공간이 아니라서 지금 궁리 중이다. 내 작품은 길이 20m나 되는 거대한 것도 꽤 많아서 이걸 어떻게 축소시켜 표현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게다가 대림미술관은 각 층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있다. 분명 쉬운 도화지는 아니다. “패션쇼에서도 단지 재킷 하나를 보여주는 걸로 끝나는 건 나에게 재미가 없다. 옷, 공간, 음악이 어울리고, 그게 눈, 코, 귀를 통해 전해지는 경험이 내 작품의 포인트다. 감각의 콜라보레이션, 혹은 그런 무브먼트를 연출해내는 게 나의 직업이라 생각한다.”

2013년 헨릭 빕스코브는 멤브레인(Membrane)이란 이름의 거대 설치물을 제작해 텍스타일과 공간에 대한 실험(‘The City Project: Membrane’)을 선보였고, 2011년 가을/겨울 의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선 무대 위에 식탁을 차리고 퍼포먼스를 했다.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비주얼의 상연이었고, 예상과 상상을 넘어서는 연출이었다.

 

 

헨릭 빕스코브는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했다. 가레스 퓨, 피터 옌슨 등이 그와 함께 학교를 다닌 동기들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매점에선 서로 다른 스물세 개의 언어가 들려왔다.” 그는 이 자유로운 분위기에 꽤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헨릭 빕스코브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몇 편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도승(The Monk)>이란 작품이 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그가 제목 그대로 수도승처럼 나오는 영화다. 그는 이때의 모습 그대로 학생증 사진을 찍었다. 수도승 머리에, 상의를 탈의한 사진이다. “내가 옷을 벗고 있었다고? 그땐 아마 그게 쿨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확실히 그가 막 패션계에 데뷔한 2000년대 초와 비교하면 지금 그는 꽤 톤 다운된 느낌이다. 화려한 컬러의 사용도 줄었고, 여전히 과감하긴 해도 이젠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다. 인터뷰를 하던 날 역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 차림이었다. “어릴 땐 정말 요상하게 입고 다녔다. 빨강, 핑크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근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고 무엇보다 두 아이의 아빠다. 확실히 컬러는 좀 얌전해진 것 같다.”

요란하고 찬란하던 디자이너의 일종의 균형 잡기다. 이 사소한 변화는 그의 근래 삶의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헨릭 빕스코브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산다. 유럽 출신 디자이너 대부분이 런던이나 파리, 혹은 뉴욕에 활동 거점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뒤 다시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전원주택에서 두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내가 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간 건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웃음) 런던이나 서울은 매우 큰 도시고,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기에는 그런 빠른 리듬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대도시의 교통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나는 코펜하겐에서 매우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작업실까지는 자전거로 10분 거리이고,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 삶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패션 산업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지 않나. 내 템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편안함을 좀더 느끼는 환경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헨릭 빕스코브가 물 좋고 산 좋은 북유럽 마을에만 틀어박혀 작업을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매년 코펜하겐과 파리에서 쇼를 열고, 작업을 따라 뉴욕, 파리, 런던 등을 수시로 오간다. 라이프스타일은 북유럽이지만 활동량은 메트로폴리탄 수준이다.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하게 활약하는 그는 보통 동시에 열 가지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는 지금도 그는 6월 파리에서 발표한 쇼 작업, 뉴욕에서 선보일 연극 작품, 그리고 가구 데커레이팅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 마치고 다른 하나. 그런 식이 아니다. 의외로 나는 그렇게 오래 일하지 않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정도? 내겐 탄탄한 팀이 있고, 이 업계에 오래 있다 보면 그 안에서 어떻게 작업 스피드를 조절해야 할지 감을 잡게 된다. 게다가 이젠 육아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웃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던 디자이너의 재기 발랄함은 이제 탄탄한 토양도 갖췄다. 지금 서울에서 그 육감의 세계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