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편집장의 추억여행 ④ – 이혜상

 

지금부터 20여년 전이니 얼마나 모든 것이 촌스러웠겠나! 패션과 유행의 세계에서는 흔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가끔 예외일 때가 있다. 이건 <보그>가 발행되는 컨데나스트 잡지들의 멋진 흑백 아카이브 사진들을 두고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그 코리아> 19년 전 패션 비주얼을 봐도, 차마 눈뜨고 못볼 정도로 촌스러운 게 있는가 하면(이건 순전히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탓!), 지금 봐도 세련되고 진보적인 비주얼도 있다.

모델 이혜상이 뱅헤어의 아리따운 상하이 소녀로 분한 이 패션 화보는 분명 후자다. 진행 기자는 당시 <보그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서울에 온 진 크렐과 패션 수석 조명숙 기자. 둘은 유난히 쿵짝이 잘 맞아 곧잘 화보 진행을 함께 했다. 생각해보니 진 크렐은 아시아 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지닌 흔치 않은 외국인이었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기에 서울 땅에 홀홀단신 왔어도 한국인과 한국 음식에 금새 잘 적응했다. 지금도 “헤이, 미스 리!”하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가 생각난다(한국을 떠난 후엔 파리 패션 쇼장에서만 가끔 만난다).

아무튼 그 화보 현장은 두 사람의 열정과 진 크렐이 외치는 감탄사로 가득했다. “고저스! 뷰티풀! 어메이징! 그레이트!” 아마 사진가 조남룡의 점쟎게 낮은 목소리는 진의 호들갑스런 외침에 파묻혔을 것이다. 두 사람은 화보에서 의상만큼이나 중요한 메이크업을 중국 경극에서 힌트를 얻어 아방가르드한 붉은 이미지로 표현했고, 대신 머리는 소녀처럼 단정하게 묶거나 땋은 머리를 귀옆에 붙여 귀엽게 표현했다. 의상은 그야말로 중국풍. 마침 프라다가 미니멀한 차이니즈 룩을 발표했기에(97년 봄여름 컬렉션) 이 화보엔 딱이었다. 특히 첫 페이지를 장식한 새빨간 옷과 새빨간 배경의 컷! 빨강 코튼 셔츠와 빨강 코튼 롱 스커트, 빨강 벨벳 샌들을 똑같은 채도와 명도의 빨강 배경천 앞에서 촬영함으로써 절제되면서 훨씬 강렬한 컷을 건질 수 있었다. 예술에 일가견이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는 분명 이 컷을 좋아했을 것이다. 비록 그때는 ‘프라다 코리아’가 한국에 없어 잡지가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