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살아있다 ③ -아르마니/사일로

당대 패션, 예술, 건축, 문화 등의 다각도&입체적 협업으로 건설된 3대 박물관이 유럽에 개관했다. 그 빅 3는?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vs. 폰다치오네 프라다 vs. 아르마니/사일로.

www.armanisilos.com

‘부드러운 어깨의 모래색 정장같은 패션 성전’의 성대한 개관식이 지난 4월 30일에 있었다. 이 대단한 패션 연회를 주최한 인물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천하에 둘도 없는 이 패션 마에스트로가 개관한 성전의 명칭은 ‘아르마니/사일로’다. 케이트 블란쳇, 글렌 클로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티나 터너, 힐러리 스웡크, 로렌 허튼, 소피아 로렌 등이 81세를 앞둔 아르마니의 패션 제국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위한 이벤트는 어느덧 열 살이 된 아르마니 프리베 꾸뛰르쇼, 그리고 50년대부터 사용된 곡물 저장소를 재단장한 패션 박물관 전격 대공개(공식 오프닝 행사는 아르마니를 패션 부문 스페셜 앰배서더로 임명한 2015 밀라노 엑스포 론칭과 동시에 밀라노 시의 후원 아래 진행됐다)!

“아주 벅찹니다.” 귀빈들에게 사일로를 개방하며 아르마니 옹이 감격에 겨워 말했다. “지난 40년을 산책하는 것 같군요. 저와 일한 모두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네 가지 주제(1층은 ‘Daywear’, 2층은 ‘Exoticism’, 3층은 ‘Color-scheme’, 4층은 ‘Light’)로 분류된 전시는 600벌의 옷과 200개의 소품이 차지하고 있다. 그중엔 꼭 패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옷도 수두룩하다. 1978년 다이안 키튼이 <애니 홀>로 오스카상을 수상할 때 고른 재킷, 리처드 기어가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빼입은 1980년 봄 컬렉션의 재킷과 팬츠, <카지 노>로 1996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샤론 스톤의 드레스 등등. 또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게 디지털 아카이브에서는(맨 꼭대기 층) 피터 린드버그가 사이프러스에서 촬영한 아르마니 옷차림의 앰버 발레타는 물론, 애송이 시절의 조디 포스터, 로렌 허튼 등을 보며 감회에 젖을지 모른다. 그의 스케치, 테크니컬 드로잉, 패브릭 전시 등도 물론이다(패션 학도들과 자료 조사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개방된다).

아르마니는 이 건물을 탈바꿈하는 데 5,000만 유로, 다시 말해 약 6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4,500m², 그러니까 1,360평 규모의 4개 층에 걸쳐 40개 방으로 구획된 건물 외관은 거의 변형하지 않았다). “저는 이곳을 ‘사일로스’(Silo는 곡물 저장소라는 의미) 라고 표기하기로 했어요. 과거에 식품을 보관하던 곳이죠. 식품 역시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저에겐 음식만큼 옷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고 보니 음식 엑스포가 10월까지 밀라노에서 열린다. 올가을 밀라노 패션 위크로 출장 가는 사람이라면 이곳 커피 바에서 차를 마시며 아르마니의 위대한 유산을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는 예전에 없었지만 이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새 공간을 갖게 됐습니다. 누구든 입장할 수 있어요. 제가 대중에게 주는 선물이니까요. 하지만 옷들은 제 것입니다. 하하!” 이탈리아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이탈리아 패션을 만방에 알린 그를 치하하기 위해 그가 직접 그린 아르마니/사일로 스케치를 담아 800,000개 한정판 우표를 만든다. 또 9월엔 그의 삶과 패션을 아우른 전기를 출판할 예정. 이제 그에게 더 필요한 건 뭘까?

미우치아 프라다는 렘 쿨하스와 함께 영구적인 폰다치오네 프라다를 건설했다. LVMH그룹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건축을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 누구도 의지하지 않은 채 50년대부터 쓰던 곡물 저장소를 직접 개조했다. 다시 말해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기존에 운영되던 곳의 확장판이요,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은 문화와 예술, 럭셔리와 패션의 대성전이며, 아르마니/사일로는 이탤리언 패션 황제의 거룩한 박물관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은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전이나 V&A 박물관의 패션전, 혹은 MoMA의 현대미술 못지않은 전시를 새로운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쯤에서 드는 간절한 소망 한 가지(게다가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젊은 천재적 예술가들에게 어떤 물리적 제한도 없이 판이 주어지는 레이 카와쿠보 아트스퀘어, 아메리칸 클래식과 할리우드 드레싱으로 요란하게 광채를 발산할 랄프 로렌 뮤지엄도 상상해볼 만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