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 주연 시대

최근 오락 프로그램을 점령하던 셰프들이 드라마로 출격했다. 잘생기고, 상냥하며, 요리까지 잘하는 셰프들은 이제 달콤한 멜로의 주인공으로도 활약한다. ‘실장님’의 뒤를 잇는 새로운 ‘남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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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은 피쉬스 에디(Fishs Eddy)

MBC <파스타>에서 이탤리언 레스토랑의 셰프를 연기하던 이선균은 틈만 나면 고함을 질렀다.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마치 군인처럼 “예쉡!”이라며 그의 지시에 따랐다. 완고한 철학을 가진 주방의 지배자. 리얼리티 쇼 <헬스 키친>과 <마스터 셰프>의 고든 램지가 출연자들에게 ‘F***’ 워드를 날리고, <마스터 셰프>의 한국 버전인 올리브 채널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강레오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던 즈음이었다. 그러나 요즘 MBC <맨도롱 또똣>의 백건우(유연석) 셰프는 젊고, 잘생겼고, 무엇보다 손님이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의 권재희(남궁민) 셰프 역시 그에 관한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연예인 같은 외모에 누구에게나 친절한 스타 셰프라는 설정이었다. 요리 업계에서 손꼽히는 최현석 셰프가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스타가 된 후, KBS <인간의 조건 3>로 리얼리티 쇼를 찍는 요즘의 일이다.

<파스타>의 모델이었던 샘 킴 셰프가 MBC <진짜 사나이>를 찍을 만큼 셰프가 친근해진 상황에, 더 이상 드라마 속 셰프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군기를 잡는 캐릭터일 수만은 없다. 2007년 방영한 SBS <마녀유희>는 젊은 미남 셰프 조니 크루거 역으로 외국인 데니스 오를 캐스팅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미카엘 셰프처럼, 젊고 잘생긴 미남 셰프는 외국인, 특히 서구인의 이미지에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올리브 채널에서 쉴 새 없이 백건우나 권재희 같은 이미지의 셰프들이 실제로 요리를 보여준다. 젊고, 잘생겼고, 요리 실력으로 이미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셰프가 실제로 존재한다. 기존의 드라마에 출연한 재벌 2세 ‘실장님’은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인기 셰프는 TV에서 일주일 내내 볼 수 있다. 한때 유행하던 ‘실장님’이나 광고 회사의 이사처럼, 드라마는 다시 셰프라는 유행을 흡수한다. 게다가 ‘실장님’들의 기획 능력이나 업무 실적은 눈에 보여줄 수 없지만, 셰프의 음식은 지금 당장 시청자의 눈앞에 들이밀 수 있다. 직접 찾아가서 요리를 먹을 수도 있다. 음식을 플레이팅하는 솜씨는 미적 감각을 비롯한 문화적 취향에 대한 신뢰로도 이어진다. 권재희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수천 권의 책을 읽은 캐릭터로 묘사되고,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셰프는 요리 실력을 바탕으로 자존심이 강한 캐릭터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만에 온갖 기발한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철저하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백종원 셰프를 보면 그들이 오랜 생각에서 나온 각자의 철학을 갖고 있는것은 분명해 보인다.

앉은자리에서 명란젓과 마요네즈로 먹음직한 음식을 만드는 백종원은 만화 <심야식당>에서 비엔나소시지로 멋진 술안주를 만드는 셰프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곧 김승우를 주연으로 드라마화될 <심야식당>은 단지 동네작은 식당이라는 배경뿐만 아니라 셰프의 캐릭터 역시 현실적인 부분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백종원 셰프가 아니더라도 동네 어디선가 적당히 먹을 만한 음식을 하는 셰프는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들은 요리 실력으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삶을 산다. <파스타>의 일류 레스토랑 셰프든, <심야식당>에서 동네 손님들을 상대하는 셰프든,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결과물로 자립하며 살아간다. 이만큼 대중의 눈앞에서 현실인 동시에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를 동시에 갖춘 직업은 없을 것이다. 예능인이 <인간의 조건 3>에서 고생하는 것은 그들의 직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지만, 최현석과 정창욱 셰프가 <인간의 조건>을 통해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요리 실력이 뒷받침되면서 더 큰 매력이 된다. 그러니 <맨도롱 또똣>에서 백건우가 미남에 약간 푼수 같지만 유머 감각도 있고, 집안이 부자이기도 한 것은 과거 ‘실장님’에 비해 그렇게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미 실제 셰프들이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 맹기용은 잘생긴 오너 셰프라는 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미 예능프로그램에서는 현실의 권재희나 백건우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만약 맹기용이 지독하게 비린 고등어 샌드위치라는 희대의 메뉴를 내놓지 않았다면, 또는 김풍이 맹기용의 얼굴만 있었다면 백건우 같은 셰프는 이미 현실에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셰프가 출연하는 드라마는 ‘실장님’이 출연하던 과거와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셰프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이대 부근에 있는 파스타 중심의 레스토랑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셰프가 이미 요리를 하고 있고, TV에서는 백종원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tvN <집밥 백선생>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시청자들도 뚝딱 해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의요리법을 가르쳐준다. 그만큼 <심야식당>이나 <맨도롱 또똣>의 설정이 와 닿는 부분도 있지만, 드라마가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은 그다지 없다는 얘기다. 백건우의 부모가 재력가라는 것, 권재희가 비밀에 쌓여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 정도다.

<파스타>는 주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도 신선함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괴물이나 초인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셰프들이 TV에 나오는 요즘, 드라마는 그만큼 셰프 캐릭터를 만들기는 쉽지만 더 새롭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대부분의 드라마가 왜 이전만큼 반응을 얻지 못하는가에 대한 단서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특정 직업을 다룬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던 전문가들의 세계를,이제는 리얼리티 쇼가 쉴 새 없이 보여준다. 최현석이 15분 만에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인 명란 파스타를 직접 해내고, 맹기용 정도의 실력을 가진 셰프는 시청자에게 사정없이 비난받는 마당에 드라마가 셰프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의 ‘실장님’들처럼 전혀 현실감이 없는 캐릭터를 만들 수도 없다. 트렌드는 반영해야 하는데, 예능 프로그램이 그 트렌드를 먼저 시청자에게 퍼뜨리고 있다. 드라마는 그 이미지를 따라간다.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