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무한궤도

광고가 산을 오른다. 바다도 건넌다. 장르는 물론 포맷, 구성도 아리송한 요즘의 TV 광고는 직접 드라마도 쓴다. 이들은 이제 좌판을 펼쳐놓고 물건만 파는 단순한 상인이길 거부한다.

planes flying over poster advertising clubs,  landing into Ibiza airport,  Ibiza, Balearics, Spain. ©Naki Kouyioumtzis/ Axiom.

물건 팔 생각은 않고 연애를 한다. 이제 적당히 카피를 던지고 상품을 알려야 할 때인 것 같은데 심각한 내면 연기 중이다. 한 채널에선 배달 어플 서비스를 갖고 한바탕 로맨스를 풀며, 또 다른 채널에선 인터넷, 이동통신 회사의 간판을 달고 시대극의 무대를 누빈다. 다양함과 규모로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못지않다. 광고 특성상 길이가 짧은 만큼 대부분 연작으로 이어지며, 그래서 더욱더 어엿한 드라마, 혹은 영화처럼 보인다. 광고가 시나리오 작가라도 된 모양새다. 5월 1일 첫 공개된 SK텔레콤의 ‘이상하자’는 너무나 아리송해 주목을 받았다. 고수, 박해일, 김응수, 그리고 걸 그룹 AOA의 설현이 사극 분장으로 대거 등장했는데, 일견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둘 다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리 차림새의 박해일은 수상한 물건을 갖고 나와 장광설을 풀고, 사소설 ‘수상한 박 상궁’에 빠진 라미란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며 딸과 전화 통화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충돌시켜 ‘이상한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고 제안하는 캠페인 광고다. 이 시리즈는 5월 1화를 시작으로 6월 현재까지 11편이 공개됐다. 러닝타임은 각각 1분 10초. 매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이야기를 만드는 구성이라 얼핏 짧은 시트콤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광고의 대범하고도 새로운 ‘스토리 셀링’ 전략이다.

요즘 노골적인 호객 멘트 대신 스토리를 새로운 상술로 삼고 있는 건 요식업계 쪽이다. 배달 어플 서비스 ‘요기요’는 차승원, 최지우, 유인나, 그리고 악동뮤지션 등을 캐스팅해 셰어하우스 드라마를 쓰고 있고, 또 다른 배달 어플 ‘배달의 민족’은 류승룡 주연의 ‘신의 배달’을 멜로부터 스릴러 액션의 포맷까지 종횡무진으로 찍어내고 있다. 둘 다 광고의 주인공 ‘배달’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남녀의 로맨스이거나 샐러리맨의 프로젝트 모험담이다. 대한항공을 타고 여행을 하지만 비행기보다는 우정과 모험에 대한 이야기 ‘대한항공- 러시아 여행자 클럽’ 역시 비슷한 예다. 실제로 러시아를 여행하며 만난 남자 넷을 캐스팅해 제작한 이 광고는 그들이 청춘을 함께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비행기의 이상, 여행의 낭만을 광고한다. 배달 어플, 항공사, 인터넷 서비스를 로맨스, 모험담, 청춘, 그리고 도전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이상하자’를 제작한 SK텔레콤 쪽은 “드라마타이징(Drama와 Advertising 의 합성 조어)은 최근 추세다. 브랜드를 직접 홍보하는 대신 이야기를 통해 이미지, 감수성을 전달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마치 인기 유튜브 영상을 감상하듯 자연스레 광고를 접한 소비자가 해당 상품,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터넷 동영상 광고에 옵션처럼 붙는 ‘건너뛰기’ 역시 ‘드라마타이징’ 광고 바람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내러티브로 구성된 광고는 15초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해 ‘건너뛰기’해버리는 시청자의 클릭을 최대한 막아주는 효과를 낸다. 너무 잦은 광고에 짜증을 내면서도 뒷이야기가 궁금해 ‘스킵’을 유보하는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광고와 함께 근래 미디어에서 주된 전략으로 도드라지고 있는 건 바로 푸티지(Footage) 광고이다. 기존 드라마나 영화, 혹은 인기 오락 프로그램의 장면을 그대로 차용하는 이 광고는 시청자에게 익숙함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기업들이 선호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드라마 <미생>. CJ헬스케어는 직장 생활에 지친 장그래와 오 과장에게 ‘헛개수’ 한 병을 들렸고, 어플 게임 회사 쿤룬코리아는 하대리에게 시달리는 안영이가 ‘크러쉬온액션’ 게임으로 스트레스 푸는 장면을 담아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출연자들의 커피 타임으로 등장한 ‘조지아 캔커피’,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 레터> 속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 ‘넥센 타이어’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푸티지가 한발 더 나아간다. 이미 제작돼 방영된 드라마나 영화의 컨셉, 혹은 장면을 단순히 빌려오는 대신 애초 프로그램 제작과 광고를 함께 기획하는 것이다. 가령 지난 2월 나영석 PD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삼시세끼-어촌 편>은 본 방송보다 SK텔레콤의 광고로 먼저 전파를 탔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삼시세끼-어촌 편>용 의상과 프로그램 컨셉 그대로 등장한 광고 ‘먼저 갑니다’는 광고 기획 단계부터 예능 프로그램과 협업한 작품이다. 모델, 대사, 상황 연출을 <삼시세끼-어촌편>의 티저 격으로 설정하고, 인기 시리즈 프로그램의 기대감을 광고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시켰다. 광고 업계에선 최근의 이 포맷을 엔터테인먼트와 애드버타이징을 합쳐 ‘엔터타이징(Entertis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예전엔 상품을 들이밀거나 기능, 효과를 홍보하느라 바쁘던 광고들이 이젠 기승전결을 갖춘 드라마로 다시 태어나거나, 유머와 감동의 서사를 담보하는 인기 프로그램과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견고하게 존재하던 콘텐츠와 광고 사이의 벽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 tvN에선 꽤 생소한 프로그램이 하나 반영됐다. 지휘자 금난새의 주도로 진행되는 클래식 공개 오디션 <언제나 칸타레>였는데 이 방송은 흡사 롯데칠성의 캔커피 ‘칸타타’의 홍보 영상처럼 보였다. 프로그램의 문을 열고 닫는 건 물론 ‘칸타타’ CF였고, 출연자들은 모두 ‘칸타타’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했다. 심지어 방송 후반부에는 ‘클래식에 어울리는 커피 상식’과 같은 부록 영상까지 붙었다. 그간 어색한 카메오 정도로만 출연하던 PPL을 조연 이상급의 출연진으로 등장시킨 거다. 방송을 제작한 tvN 쪽은 기획 단계부터 광고주가 참여해 프로그램의 전체 얼개를 짰다고 얘기했다. 방송 중간중간 억지로 끼어 넣어 욕먹기 바쁘던 게 기존의 PPL이었다면 <언제나 칸타레>는 광고 상품과 프로그램을 적절한 기획으로 엮어 광고도 방송처럼, 방송도 광고처럼 제작한 케이스다. 4회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획돼 아직은 테스트 단계지만, 광고가 운전대를 잡는 이 방식은 앞으로 콘텐츠 시장에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일본에선 <언제나 칸타레>보다 2년 먼저 커피 브랜드 네슬레가 토크쇼와 드라마 포맷을 뒤섞어 <하라주쿠 네스토 카페>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TV, 인터넷, SNS가 뒤섞이고 개인과 미디어의 위치 역시 수평화된 요즘 ‘순수 광고’,‘순수 콘텐츠’는 그저 ‘죽은 광고’,‘죽은 콘텐츠’일지 모른다. 지금 광고는 콘텐츠에 기생하며, 때로는 콘텐츠를 리드하며 미디어에서 생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