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돌아보는 향기

냄새에 민감해지는 계절이다. 이렇게 덥고 습하고 짜증나는 순간에도 남자들은 여자들의 어떤 향기에 이끌려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될까?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은 랩코스 ‘젤라이너 블랙 캐럿’, 립 컬러는 랩코스 ‘터치-업 립스틱 헤레이즈’. 보디수트는 월포드, 턱시도는 바톤 권오수 클래식, 시계는 불가리.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은 랩코스 ‘젤라이너 블랙 캐럿’, 립 컬러는 랩코스 ‘터치-업 립스틱 헤레이즈’. 보디수트는 월포드, 턱시도는 바톤 권오수 클래식, 시계는 불가리.

15세기 유럽에서는 아이리스가 사교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목욕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리스 향이 듬뿍 밴 옷을 입어(속옷부터 켜켜이) 악취를 감췄다. 오늘날 위생 관념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해졌지만, 우리의 한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몸에선 원치 않는 분비물이 분출하고, 높은 온도와 습도가 그 냄새를 어느 때보다 빠르고 널리 퍼뜨린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파티, 바캉스 등으로 새로운 만남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중요한 시기 아니던가. 한여름 밤의 열기와 흥분 속에서 한층 가까워진 순간, 물씬 올라오는 악취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면 이 기사에 주목하자. 덥고 습하고 짜증스러운 순간에도 남자들을 한번 뒤돌아보게 만드는 여름 향기에 대해서.

“시트러스 계열에 주목하세요. 산뜻하고 가벼운 느낌으로요.” 데메테르 퍼퓸 디자이너 안창선이 답했다. “연인 사이, 반대로 싫어하는 사이, 끈적이고 짜증나는 여름 일상 속 에서 시트러스는 큰 위력을 발휘할 겁니다. 시트러스를 메인으로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그린, 플로럴, 프루티 계열을 섞어 타인에게 어필해 보세요.” 시트러스는 레몬, 자몽, 베르가모트, 오렌지처럼 상큼하고 시큼한,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하는 향이다. 특히 레몬처럼 시큼하고, 오렌지처럼 달콤한 맛과 향을 지닌 베르가모트가 첫인상으로 등장하면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다.

조향사 임원철은 올여름엔 특히 그린 계열을 추천했다. “시원하면서도 세련됐죠. 풀잎을 손으로 으깨 보면 어떤 향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갈바눔, 바질 같은 천연 그린 향, 앙리 루소가 그린 녹색 수풀 같은 강렬한 합성 그린 향, 오이, 제비꽃 느낌의 그린 향도 있죠. 이런 종류의 향은 멀리서 맡으면 싱그럽고 은은하게 다가오지만 가까이에 코를 대고 맡으면 아주 강하고 자극적으로 느껴집니다. 때문에 다루기 까다로운 향 중 하나죠.” 그 때문에 그린 계열 향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프레쉬 ‘헤스페르데스’, 에르메스 ‘오 도랑 주 베르트’, 샤넬 ‘No.1 9’가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암울한 시대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 그린 향이 특히 유행했다는 것. 1940년대 전후 유럽이 그러했다. 이 시기는 패션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동경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뉴 룩’이 등장했는데 영국 정부가 물자 절약 등 애국을 이유로 이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긴축 생활에 지친 여자들의 새로운 열망을 막을 순 없었다. 이때 향수 시장을 강타했던 것이 녹색 바람, 최초의 그린계열 향수 ‘방 베르’였다. 달콤함이 억제된 상큼한 초록의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 향수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런 의미에서 불황에 허덕이는 지금의 대한민국도 시기적으로 그린 향에 열광할 적기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람들이 그린 향에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체취는 식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든요. 먹은 음식 냄새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밖으로 나오죠. 며칠 죽만 먹어 보세요. 곧 주변 사람들에게서 삭힌 식물 냄새가 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반면 서양인들에게선 고기 냄새, 강한 동물성 냄새가 나죠.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동물적인 향을, 동양인들은 식물 향을 선호하는 거죠.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친숙한 냄새에 끌리는 법이거든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 남자들을 열광시키는 향은 비누 향이다. 향의 마술사라 불리는 조향사조차도 ‘내 여자에게서 나길 바라는 향’으로 깔끔한 비누 향을 꼽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맡았던 향이 비누 향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죠.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여자의 모습처럼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향이랄까요. 샤넬 ‘No.5’를 탄생시킨 알데하이드도 대표적인 세제 향입니다. 방금 빤 빨래에서 나는 향이라고 표현하죠. 화이트 머스크도 알고 보면 비누 향인 알데하이드에 머스크가 더해져서 만들어집니다. 국내에서 유독 화이트 머스크의 인기가 높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죠.”

올여름엔 발랄한 과일, 화려한 꽃, 섹시한 오리엔탈은 잊어버리자. 시트러스, 그린, 그리고 비누 향 중 하나를 메인으로 내세운 향을 찾자. 포인트는 달콤하기보다는 상쾌하고, 오묘하기보다는 명쾌하며, 묵직하기보다는 가볍다는 것. 이미 이런 계열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면 흔히 뿌리던 손목, 귀, 뒷목보다는 15세기 유럽 여인들처럼 속옷이나 옷에 뿌리는 방법을 추천한다. 여름엔 아무리 좋은 향도 진하게 풍기면 마이너스! “옷으로 한 번 여과돼 은은하게 퍼지게 하세요. 향수를 속옷에 뿌리면 유화처럼 강했던 향도 파스텔 톤으로 부드럽게 바뀌거든요. 오드코롱, 보디 스프레이, 헤어 퍼퓸처럼 향이 강하지 않다면 머리카락에 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건 남자라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판타지거든요. 바람에 날린 향기로운 머리카락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상상,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에게 그건 사랑하는 강아지 솜털을 얼굴에 비비는 것만큼이나 매혹적인 순간이죠.”

“남자를 한 방에 훅 보낼 수 있는 향이요? 욕심도 많으시네요.” 임원철 조향사의 말처럼 기묘한 통신판매에 등장하는, 어떤 이성도 꼬실 수 있다는 마법의 페로몬 같은 절대 향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향의 가장 큰 매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 향기를 당신의 이미지로 치환해 받아들인다. 즉, 나의 매력 지수에 향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그러니 올여름 어디를 가든 가방 안에 나만의 향기를 장착하고 다니자. 당신의 등장만으로 주변 공기가 산뜻하고 생기 넘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