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부부와 일곱 자매의 하루

제주도에서 ‘느리고 단순한 삶’을 사는 이효리·이상순 부부. 이 사랑스러운 부부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일곱 마리 강아지와 고양이 이야기.

 

화창한 5월의 봄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은 노란 유채꽃을 보기 위한 관광객과 한라산 등반객, 그리고 올레길 순례자들의 아웃도어 의상으로 울긋불긋했다. 오늘 제주행은 친구 부부를 만나기 위해서다. 결혼과 함께 제주에 집을 마련하고 자연인으로 사는 이효리·이상순 부부다. 그들과는 뉴욕에서 지낼 때 가까워졌다. 그들이 뉴욕에 놀러 오면 우리 부부도 함께 여행길에 나섰다. 도시에선 맛집을 찾아다니고, 미술관에도 가고, 힙하다는 카페에도 들르며, 넷이서 실컷 수다 떨며 서울에서처럼 지냈다. 그런 부부의 제주 집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내게는 다른 미션이 있다. <보그>에서 의뢰한 이효리·이상순 부부의 일곱 마리 강아지와 고양이 촬영. 물론 부부는 원하지 않겠지만, 미션엔 부부의 모습도 포함돼 있다.

초행인 촬영팀을 위해 공항까지 마중 나온 이상순을 보니 갑자기 반가움이 솟구쳤다. 그는 얼굴을 구기는 특유의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줬다. 차로 30분쯤 달리자 소길마을 입구가 나왔다. 차를 세우자 대문 앞에 있던 하얀 털의 구아나와 석삼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현관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이번엔 순심이와 모카, 희망이가 마중을 나왔다. 아빠 상순과 함께여서 그런지 낯선 사람을 향해 짖어대지 않았지만 경계하는 눈빛은 역력했다. 우선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낮은 자세로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쓰다듬었다. 애교가 많은 구아나는 내 손길이 싫지 않았는지 몸을 배배 꼬아가며 몸을 비벼댔다. 겁이 많은 모카는 선뜻 곁에 오지 못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피는 중. 낯선 사람에 대해 도무지 경계심이 없는 순심이는 초연한 자세로 촬영팀 주변을 서성였다.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생명체는 고양이 미미와 순이. 무심한 듯 도도한 표정의 고양이들과 흥분해서 꼬리 치는 강아지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다르구나 싶었다. 다섯 마리 강아지와 두 마리 고양이는 생활 터전을 공유할 뿐, 철저히 각각의 생활 방식대로 살며 사생활을 보호받고 있었다.


이상순이 내온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마실 때쯤, 아이들의 엄마인 소길댁 이효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매 특허인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매력적인 눈웃음으로 촬영팀에게 인사하는 이효리. 그러면서도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을 번갈아 안아주느라 바빴다. 그녀는 요가 레슨을 다녀오는 길이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요가를 하러 가는 그녀. 물론 남편도 함께 가야 했지만 오늘은 공항 픽업 때문에 포기했다. 요가 하는 시간만 빼면 그들은 온전히 하루를 개, 고양이들과 함께한다. 거의 집 안에만 있는 미미와 순이의 삶은 단조롭기 짝이 없지만, 다섯 마리의 견공은 우애 깊은 자매들이다. 텃밭에 흩뿌려놓은 채소와 보리밭길, 작업실과 집 안 구석구석을 하루 종일 오가며 그 어떤 강아지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오늘 산책에는 순심이, 구아나, 모카가 따라나섰다. 엄마 아빠가 들판에 벌러덩 눕자 애교쟁이 구아나가 냉큼 그 옆을 먼저 차지했다. 따뜻한 햇살이 그들을 향해 내리쬐자 엄마 품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구아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른 셔터를 눌렀다.

순심이는 왕언니답게 엄마 품을 그리 탐내지는 않는 눈치다. 엄마의 첫사랑이기도 하지만, 한쪽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엄마의 관심 1호는 바로 순심이 자신이라는 걸 잘 안다. 부부가 촬영을 의식하지 않고 나란히 누워 담소를 나누는 동안, 모카가 갑자기 들판을 향해 뛰어갔다. “새를 쫓는 거예요!” 이상순이 외쳤다. 야생 꿩이나 새를 잡으려고 들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카. 잡지는 못해도 ‘쫓기’는 모카가 가장 즐기는 놀이 중 하나란다. 엄마 효리는 수풀에 뛰어들어 뭐가 잔뜩 묻은 모카와 구아나를 꼼짝 못하게 붙들고는 한참이나 검불을 뜯어내느라 낑낑댔다. 점프 실력이 일취월장한 구아나를 위해 아빠 이상순은 나뭇가지를 던져주며 공중 부양 연습을 시켰고, 그 모습에 엄마는 또다시 눈가에 주름살을 마구 만들며 웃었다.

‘독수리 5자매(모두 암컷이다)’처럼 정답게 붙어 다니는 다섯 마리 강아지는 알다시피 모두 유기견이다. 각자 슬픈 사연을 갖고 왔지만 이곳에서 한마음으로 다정하게 생활한다. 자연인으로 사는 만큼 집 인테리어는 편안함 그 자체다. 억지로 꾸민 듯한 데는 한 곳도 없다. 모든 것이 놓여 있을 데 놓여 있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정리돼 있다. 순심이가 부부의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가면 나머지 네 마리가 따라 올라온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부부의 침실을 감히 사진에 담았다. 침대 위에 올라와서도 강아지들은 엄마의 시선을 좇기 바쁘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스르르 눈을 감지만, 엄마는 연신 딸들을 보듬어준다. 강아지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희망이와 석삼이는 아주 친해서, 희망이가 마당에서 잠을 자면 석삼이도 슬그머니 옆에 따라 눕는다. 또 구아나와 석삼이는 차 소리에 예민해 손님들이 올 때면 제일 먼저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 나간다.


다섯 마리가 각자의 꼬리를 흔들며 하루를 명랑하게 살아가는 아가씨들이라면, 그들과 동떨어진 듯한 생활을 하는 미미와 순이의 하루는 어떨까?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다니는 두 마리 고양이는 한곳에 자리 잡으면 온종일 움직이질 않는다. “주방 옆에 있는 오디오 위를 제일 좋아해요. 음악을 틀어놓으면 열이 나면서 따뜻해지거든요.” 이효리가 다정한 표정으로 고양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강아지들이 침대 위를 차지하면 미미와 순이는 침대 위 창문틀에 앉아 느긋하게 그들을 바라본다.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은 싸우는 법이 없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 방식대로 살아갈 뿐. 자연 속에서 자연처럼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 복잡한 도시 생활을 내려놓고 단순하고 느린 삶을 선택한 이효리 부부와 일곱 자매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