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를 맡게 된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의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가 된 무명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는 자신이 찬양하는 여성들과 많이 닮았다. 대담하고 강렬하고 신비롭고 별난 사람이다. 구찌의 새 역사를 쓰는 것은 물론, 당대 패션에 새로운 경향을 제시한 그를 〈보그〉가 만났다.

Michele at his flat in Rome. Details, see In This Issue.

구찌 하우스에 새로운 언어와 질서를 제시한 알레산드로 미켈레. 로마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젊은 패션 황제답게 포즈를 취했다.

올해 초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구찌 새로운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을 때, 유서 깊은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수장 자리에 상대적으로 무명인 인물을 배치한 것에 대해 패션계는 놀라워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놀란 건 미켈레(42세) 자신이었다. 메로빙거 가문의 왕처럼 긴 머리에 유별난 모습, 리사 코르티(Lisa Corti)의 꽃가지 무늬 블라우스, 그가 직접 인도 실크를 길게 잘라 만든 네커치프, 그리고 손가락을 뒤덮은 앤티크 반지들에 이르기까지 이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소유자는 전임자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세련되게 통제된 절제와 거리가 멀다. 지아니니는 지난 1월 당시 구찌 CEO였던 연인 파트리치오 디 마르코와 함께 갑자기 회사를 떠났다.

“저는 후보자 명단에도 올라 있지 않았어요.” 미켈레는 이 탐나는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 디자이너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디 마르코의 후임인 마르코 비자리(그는 일찍이 케어링 그룹 내에서 진취적 리더십을 발휘하며 보테가 베네타의 수익을 두 배로 올려놓았다)는 그 대신 막후에서 일하고 있던 구찌 디자이너 중 한 명을 선택했다 (미켈레는 2002년 런던에서 톰 포드와의 작업을 시작으로 구찌 그룹에 합류했다). “패션에서 중요한 건 감정을 끌어내는 겁니다. 그러니 반드시 이성적일 필요는 없지요.” 비자리의 설명이다. 처음에 1시간 정도로 잡힌 미켈레와의 미팅(디자이너의 아파트에서 이뤄졌다)은 3시간에 걸쳐 브랜드의 미래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가 우리의 유산을 멋지게 해석할 수 있는데, 그리고 구찌의 가치가 이미 그의 핏속에서 흐르고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아니니는 이미 무대에 올릴 준비가 된 2015년 가을 남성복 패션쇼를 앞두고 구찌를 떠났다. 그래서 미켈레는 곧바로 일해야 했다. 지아니니의 남성복 컬렉션을 대체할 작품을 디자인할 시간은 겨우 일주일뿐. “일주일이 아니라 정확히 5일이었어요”라고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의 2015년 가을 여성복 컬렉션은 한 달 후 선보일 예정이었다). 새로 임명된 수석 디자이너는 매일 아침 9시부터 남성복 디자이너들과 집중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리고 저녁 8시에는 여성복팀에 합류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대기업이 어떤 건지 알게 됐어요.” 현재 약 70명의 디자이너를 스태프로 둔 미켈레가 말했다. 즉시 샘플이 만들어졌고, 패브릭은 수소문해서 공급받거나 새로 제작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옷장에 소중히 보관해둔 여러 벌의 빈티지 의상을 꺼내왔다. 그리고 직접 수집한 앤티크 텍스타일에서 많은 프린트를 참고했다. 전 세계 앤티크 매장과 시장을 자주 방문해 사 모은 패브릭뿐 아니라, 그의 집에 깔린 카펫과 가구 커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에 대해 ‘그런 종류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다고 그는 표현한다(나중에 그는 자신이 키우는 보스턴테리어 ‘보스코’와 ‘오르소’의 침대-인도 가마를 재활용한 아기 침대-에 깔아둔 19세기 장미 프린트 리넨을 굴레 문양의 잠금장치가 달린 구찌 백의 안감으로 사용했다).

HIGH AND MIGHTYMichele and his partner restored a ruinous house built into a precipitous cliff face that supports the medieval village of Civita di Bagnoregio, seen here from a neighboring village.

미켈레와 그의 연인 아틸리는 치비타 디 바뇨레조의 절벽 위에 위치한 중세풍 저택을 재건축했다.

미켈레는 매 순간 컬렉션에 집착했다는 걸 인정한다. 가령 영화 <버드맨>을 보러 갔지만 “영화는 보지 않았어요”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대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눈에 확 띄는 복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복도는 곧 인더스트리얼 메탈 바닥과 지하철 흑백 타일을 붙이고 새빨간 색으로 칠한 벽으로 구성된 구찌 여성복 컬렉션의 도회적인 세트로 바뀌었다. 미켈레는 무대를 창백하고 성별이 불분명한 젊은이로 가득 채웠다. 그들은 각자 개성 있는 외모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특이하게도 그는 자신의 쇼를 직접 스타일링했다). 남성복 쇼는 소매가 팔찌 길이까지 내려오는 슈렁큰 재킷과 더플 코트와 매치된, 목에 나비 리본을 맨 엷은 비단 크레이프 블라우스나 코럴 레드 레이스 소재의 긴소매 티셔츠가 특징이었다. 한편 베레모와 만화 <레프트 뱅크(Left Bank)>에 등장하는 지식인 뿔테 안경, 목에 맨 패턴 스카프, 그리고 반지를 잔뜩 낀 손 등은 미켈레 자신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했다(쇼가 열리고 두 달 후 우리가 로마에서 만났을 때 미켈레는 2016년 리조트 컬렉션 작업으로 바빴다. 그는 반지 열한 개를 끼고 있었는데 한 손가락에 세 개를 끼고 있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르데코풍의 플래티넘&사파이어 반지, 조지 왕조 시대의 카보숑 에메랄드 반지, 베니스 코도냐토의 핑크색 해골 반지, 눈이 루비로 장식된 빅토리아 시대풍 뱀 반지, 새로운 구찌 디자인, 그리고 작은 마디를 두른 수녀 반지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절묘한 오마주로 영화 <싱글 맨>에 사용된 아벨 코르제니오프 스키의 잊히지 않는 주제가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포드와 보낸 시간은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톰에게는 영화 <슈퍼스타> 같은 면이 있어요. 저는 그런 아름다운 70년대 할스턴 스타일의 미국 여성에 대한 그의 비전을 사랑합니다.” 미켈레의 데뷔 컬렉션은 ‘지아니니와의 확실한 거리 두기’였다. “우리는 정말 너무 다릅니다. 밤과 낮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회사 내에서 작은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어요.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 다른 방식을 밀어붙이고 있지요. 그건 낡은 단어예요. 지금 중요한 건 관능미입니다. 첫 컬렉션을 시작할 때 저는 패션보다는 태도에 대해 생각했어요. 제가 구찌처럼 유서 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브랜드를 위해 찾으려 했던 그런 미적 감각 말이에요.”

수다스럽고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미켈레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에 여전히 놀라고 있다. 그는 비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주었어요.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는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라. 돈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어요. 저 역시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있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을 파괴했으니까요.” 이것은 아주 매끄러운 미학적 변화는 아니다. 미켈레는 값비싼 액세서리와 더불어 기발한 빈티지 느낌이 가미되고 절충적으로 믹스매치된 세퍼레이츠라는 아주 현대적 언어로 작업하면서, 구찌가 대변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리는 꿈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처럼 뭔가 낭만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한 그는 이 회사의 팝 심벌을 이용한 작업을 즐기고 있다. 가령 더블 G 로고와 이 회사의 트레이드마크인 줄무늬 같은 요소 말이다.

미켈레의 어머니는 로마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던 영국 회사인 ‘랭크(Rank)’ 영화사 임원의 수석 비서였다. “극도로 세련된 세계에서 일한 정말 멋진 숙녀였어요”라고 그는 그녀를 추억한다. “지금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녀 같은 인물들에게는 뭔가 별난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개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제 패션쇼를 구축하고 싶어요. 당신이 옷 입는 방식은 당신이 느끼는 방식, 당신이 사는 방식, 당신이 읽는 방식, 즉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것이 제가 구찌에 불어넣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약간 샤먼 같은 사람이었다. 미켈레는 아버지가 자연의 상징과 시적인 문구를 새겨 넣은 지팡이를 모두 모아뒀다. “아버지는 아주 단순하지만 굉장히 파워풀한 분이셨어요. 소리만 듣고 새를 구별할 수 있었지요. 그 소리를 휘파람으로 불면 새가 날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성 프란체스코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의 유일한 꿈은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닮는 거예요. 정말 행복하셨으니까요.”

THE SLOW FADEMichele's florals look like they've emerged, tinted by passing decades, from a time machine. Gucci silk creponne dress ($4,900), hat, and necklace; select Gucci boutiques.

구찌 하우스의 유산인 플로럴 패턴은 알레산드로 미켈레에 의해 보다 낭만적이고 앤티크하게 재해석됐다. 미켈레의 구찌 플로럴 드레스와 티베트 염소털 슈즈를 신은 모델 미카 아르가나라츠(Mica Arganaraz@DNA).

미켈레가 자신의 모든 컬렉션에 사용하려고 하는 수작업과 더불어 꽃과 동물 모티브는 아버지가 보여준 히피의 매력과 어린 시절의 다른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의 이모는 다루기 힘든 그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위해 뜨개질을 가르쳤다. “저는 지금도 손으로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그는 현재 유튜브로 새로운 스티치를 배우고 있으며, 런던에 있을 때는 자수 장비를 사기 위해 전설적인 백화점 리버티를 순례한다고 말했다.

최근 구찌 디자인팀은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포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런던에 그것을 집중시킨 반면, 지아니니는 피렌체(1921년 회사를 설립한 구찌오 구찌가 태어난 곳)로 사업체를 옮겼다. 그리고 비즈니스의 많은 부분은 밀라노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밀라노에서 구찌는 무솔리니 시대에 비행기 격납고로 사용된 곳으로 이전하는 중이다. 미켈레는 이곳에서 컬렉션을 열 것이다. 그러나 미켈레는 로마를 더 좋아한다. “그곳엔 50년대 문화와 영화와 관련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요”라고 자신의 고향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저는 여행도 필요해요. 런던에 가야 합니다. 그곳엔 모든 것이 있으니까요. 현재, 과거, 미래, 전시회, 극장 등등. 그리고 영국인들에겐 아직도 기발함이 살아 있어요. 이스트엔드의 아이들, 아름다운 영국의 노부인들!” 그는 현대적인 LA식 옷 입기도 좋아한다. “시크하진 않지만 영감을 주죠.” 그리고 뉴욕도 사랑한다. 뉴욕에 가면 빈티지 매장에서 쇼핑한다(최근 그곳에서 2016년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였다). “차고에서 열리는 꾸뛰르 쇼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꾸뛰르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거리도 사랑하죠.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믹스해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뉴욕과 런던에 갔을 때 젊은이들이 얼마나 용감한지 보는 게 좋아요. 그들에겐 규칙이 없어요. 이레네 갈리친(Irene Galitzine) 공주처럼 과거에 아주 시크하던 부인들도 굉장히 모던한 태도를 지녔어요. 그들이 살아 있다면 아마 거리 스타일에 반했을 거예요.”

미켈레는 로마의 아카데미아 디 코스튬 에 디 모다(Accademia di Costume e di Moda)에서 공부했다. 처음에는 코스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는 비스콘티, 파솔리니, 그리고 펠리니처럼 이미지를 중시하는 감독들을 위해 헤어와 메이크업 디자인뿐 아니라 코스튬을 디자인하던 전설의 피에로 토시가 학교를 방문한 것에서 자극을 받았다. “그는 기념비적 인물이에요. 신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패션이 보다 실용적인 커리어라고 생각한 뒤 스물두 살에 로마를 떠나 볼로냐에서 레 코팽 니트웨어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3년 후 그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와 작업하기 위해 로마로 돌아갔다. 그는 그녀가 모든 것에 호기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함께 일하기에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패션계에서 일한다면 재미가 꼭 필요하죠. 그리고 펜디 바게트 백은 ‘유물’에 대한 제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어요. 바로 그것이 제가 구찌에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켈레는 디자인팀이 따라오기엔 자신의 절충적 비전과 레퍼런스가 복잡하다는 걸 인정한다. “저는 현대의 엠마에게 딱 어울리는 드레스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는 제인 오스틴이나 옛날 펠리니 영화 속의 기묘한 파스텔 느낌을 인용할 것이다. “저는 과거에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미켈레는 자신의 작품을 ‘가짜 빈티지’라 부른다. 그리고 고색창연한 느낌을 내기 위해 옷감을 세탁한다. “저는 미래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와 현재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제 아파트는 앤티크로 가득하지만 현대적인 설치 작품처럼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그는 18세기에 지어진 시적인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도시계획과 교수인 연인 조반니 아틸리(Giovanni Attili)와 함께 살고 있다. 미켈레는 학구적인 아틸리에게 360켤레의 신발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 말했다.

THE BODY ELECTRICNEAR RIGHT: Model Tami Williams wears a Gucci lace top ($1,180), leather pleated skirt, rings, and fur slippers. FAR RIGHT: Model Mica Arganaraz wears a Gucci embroidered-tulle shirt ($1,400), leather skirt ($4,500), and sandals. All at s

모델 타미 윌리엄스(Tami Williams@Elite New York)가 입은 레이스 톱과 가죽 플리츠 스커트, 그리고 미카 아르가나라츠가 입은 튤 셔츠와 가죽 스커트는 구찌가 지향하는 ‘Young & Beautiful’ 컨셉이자 새로운 럭셔리.

“그의 취향은 전염성이 있어요”라고 아틸리는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파트 수리를 시작할 때 엄격한 편집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 아파트는 본래 천장이 높은 방(현재 여러 가지 물건과 가구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으로 복원하기 전엔 일련의 암울하고 천장이 낮은 사무실이었다. “혼자 살 때는 완전히 정신이 없었어요”라고 미켈레는 말했다. “저에겐 방 하나에 의자 스무 개를 놓는 건 정상이었어요. 꼭 창고 같았지요.” 의자뿐 아니라 미켈레 컬렉션에는 수많은 미니어처 초상화, 마이센 도자기 퍼그, 빈에서 구입한 색칠한 새, 그리고 조지 왕조 시대 금박 새장 뮤직박스 안에서 지저귀는 새가 포함돼 있다. 두 사람은 시골 별장도 갖고 있다. 미켈레는 그곳에 고립된 채 데뷔 컬렉션 작업을 했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Civita di Bagnoregio)는 로마에서 북쪽으로 2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림 같은 마을로 작은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 다빈치가 그린 성모마리아 뒤에 있는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 같다.

그곳에선 17세기 말에 일어난 지진으로 32명이 사망했다. 그 후 마을이 본래 크기의 일부로 줄어들 때까지 화산암이 천천히(때론 극적일 정도로 빠르게) 부서져 내렸다. “그곳은 괴짜들에게 어울리는 별난 곳이에요”라고 미켈레는 토리노의 페레로 후작 부인 같은 과거 거주자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그녀는 침실이 열두 개 있는 자신의 목사관에서 영화 <라 돌체 비타>풍의 파티를 열어 이레네 갈리친 공주와 아녤리스(Agnellis) 부부를 초대했으며, 방은 자홍색과 진홍색으로 칠해졌고, 워홀과 폰타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그림은 느릿느릿 걷는 당나귀들에 의해 마을로 운반됐다. 미켈레는 아틸리가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순간 이곳을 사랑하게 됐다. 그들은 곧 에트루리아 동굴 위에 과거 수도원의 돌 잔해로 지어진 심하게 파손된 집을 발견했고, 그 후 1년 반 동안 그 집을 복원했다.

알베리니(Alberini) 궁에 자리한 구찌의 웅장한 본사에 들어서면 로마의 특별한 매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고전주의 파사드는 19세기에 반짝이는 트래버틴으로 다시 도포됐지만 이 건물은 본래 16세기 초 라파엘로의 지휘 아래 지어졌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포푸리의 머스크 향이 나는 미켈레의 널찍한 스튜디오는 과거 이 궁전의 2층 예배당을 구성하고 있던 방 두 개를 합한 것이다. 이곳은 다양한 컬러의 정교한 천장이 특징이다. 그것은 숨을 멎게 한다. “이것이 진짜 로마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런 건 꿈도 꿔본 적 없어요.” 미켈레는 반짝이는 모던한 트래버틴 슬래브 바닥 위에 앤티크 페르시아 러그와 오우샤(Oushak) 러그를 깔고, 그 위에 커다란 19세기 책상(지금은 경매와 전시회 카탈로그, 장식잡지, 장식미술 책이 잔뜩 쌓여 있다)을 놓았다.

집 안은 미켈레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18세기 앤티크 소품들로 꾸몄다. 로코코풍 나무 장식 위에는 마이센의 동물 도자기와 비엔나의 새 조각상 등이 놓여 있다.

집 안은 미켈레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18세기 앤티크 소품들로 꾸몄다. 로코코풍 나무 장식 위에는 마이센의 동물 도자기와 비엔나의 새 조각상 등이 놓여 있다.

그는 나폴레옹 3세 시대 가구로 담소 공간도 만들어놓았다. 가구 본래의 달걀노른자색 브로케이드는 그대로 뒀지만, 못대가리가 박힌 코럴레드의 리본으로 가는 파이프 장식을 더했고, 데이비드 힉스가 그만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1960년대 기하학 프린트로 등판을 댔다. “저는 패션에도 기하학적 무늬와 꽃무늬를 믹스하길 좋아해요.” 미켈레는 2016년 리조트 컬렉션 피팅 사진으로 뒤덮인 위층 스튜디오의 메모판을 살피며 말했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에요. 하지만 이건 아름답군요.”

그가 모든 사진과 패브릭 샘플을 꼼꼼히 평가하던 그날 미팅에는 디자이너 열네 명이 참석했다. “저는 단 두 개의 프린트만 있는 패션쇼는 좋아하지 않아요. 저를 미치게 하죠.” 자신의 쇼에 사용될 프린트가 잔뜩 꽂힌 벽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차라리 여자들이 코트나 셔츠를 고르는 데 5시간이 걸리는 게 나아요. 저는 그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게 좋습니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판매팀 직원들은 약간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 옆방에는 셀러브리티 드레싱 프로젝트를 위한 스케치가 있었다. 여기에는 뉴욕에서 열리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갈라를 위한 조지아 메이 재거의 드레스(중국 자수로 장식된 라일락색 드레스)도 포함돼 있었다(몇 주 후 미켈레가 그 파티에 그녀를 에스코트해서 갔을 때 <China: Through the Looking Glass> 전시를 보고 “제 컬렉션 전체를 다시 디자인하고 싶을 정도로 영감이 넘쳤어요”라고 말했다).

“정말 행복해요.” 그는 세심하게 정돈된 혼돈 속에서 말했다. “제게는 작업하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기 때문이지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어요. 구찌에서 일한다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일입니다. 저의 모든 열정을 디자인으로 해석해낼 수 있고, 제가 원하는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