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도 유행이 있나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밀로의 비너스 이야기,
그러니까 시대마다 미인의 기준이 달랐다는 건 말해야 입만 아프다.
그런데 그게 그냥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일 뿐일까? 지금, 우리는?

3개월 전 운동을 시작하려고 휘트니스 클럽을 찾은 나는 트레이너와의 미팅 10분 만에 마른 여자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신체 측정을 마친 후 트레이너가 던진 첫마디가 “하체가 약하시니 하체를 우선 키우시죠”였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장난하나? 내세울 것 없는 소박한 내 몸에서 그나마 등급 괜찮은 게 가느다란 다리(무릎 뼈가 살짝 어긋나 무릎이 두꺼운 게 흠이지만)인데 그걸 키우라니!

그래도 나는 완곡하게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운동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튼튼한 몸 말고 그냥 좀 날씬한 몸인데요.” 그러자 트레이너는 세게 한방 날렸다. “그러면 늙어서 고생하십니다. 그리고 요즘 여성분들이 선호하는 몸은 볼륨감 있고 탄력 있는 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릎 바로 위는 가늘고 위로 올라갈수록 탄력 있게 튼튼한 허벅지와 엉덩이, 그리고….” 그 다음은 나도 알겠다. 허리는 가늘고 가슴은 크겠지. ‘보이프렌드 진을 예쁘게 입으려면 엉덩이가 작아야 되거든! 여자는 무조건 말라야 한다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트레이너들은 선택지를 줬다. “윤아 같은 몸이요? 아니면 이효리 같은 몸?” 하지만 지금은 그냥 씨스타의 허벅지, 리한나의 엉덩이다. 동굴 속에 사느라 나만 몰랐을까? 뭐 그런 것도 같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몸매 다음에 연상하는 단어가 다이어트다. 곰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미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라 건강하게 먹고 사는 쪽으로 기울었고, 청순 가련형의 미인이 아니라 운동 좀 할 줄 아는 여자 쪽으로 호감도가 옮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내 주변 대부분의 여자들은 여전히 ‘날씬하다’와 ‘말랐다’ 를 혼동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지려면 우선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믿음이 너무 강해서 트레이너의 코칭 방향에 대한 불신을 엉뚱한 쪽으로 표출했다. ‘아니, 유행 따라 옷 챙겨 입는 것도 모자라 이제 내 몸까지 유행에 맞춰야 돼?’

내가 트레이너와 함께 한 유행하는 몸(?) 만들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3대 웨이트 운동인 스쿼트와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대부분의 여성들은 팔에 힘이 없기 때문에 대체 운동 방법을 찾는데 나는 힘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무릎 대고 하는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과 복근 운동. 처음에는 몸에 자극이 되는 부위를 정확히 알기 위해 기구를 이용하고, 지루함을 막기 위해 변형된 동작들이 추가 되고, 심폐 기능을 위해 서킷 트레이닝(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하지만 결국엔 자기 체중과 약간의 추가 무게(그러니까 덤벨이나 바벨을 드는 것)를 이용해서 하는 이 네 가지 동작들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건 집에서 생수 병 들고 혼자 해도 된다는 뜻이다.

3개월 간의 운동 후에 나는 이 건강한 몸의 유행이 갖고 있는 놀라운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체중과 사이즈로부터의 자유! 애초에 나는 출산 후 불어나 여태 해결이 안된 3kg의 잉여 체중을 제거하려고 했으나 운동 후 체중은 오히려 1kg이 늘었고(그래서 키 160cm에 체중 50kg의, 결코 마르지 않은 몸이 되었다), 문제의 허벅지 둘레는 1.5인치나 늘었다. 하지만 옷을 입었을 때의 모양새는 훨씬 좋아졌다. 아이를 낳은 후에 사이즈를 늘려 산 그 많은 청바지들은 죄다 나를 뚱뚱해 보이게 했는데(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치마만 입어야 했다), 오히려 체중이 늘어난 지금 그 바지들을 기분 좋게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몸에 라인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 무엇보다 체중이 늘면 화들짝 놀라 저녁을 굶었다가 자정에 군것질을 하고는 자괴감에 빠져 잠드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하지 않아도 되어서, 그러니까 내가 굶고, 살찌고, 마음만 상하는 등신이 아니어서 좋다.

트레이너에게 당신이 이겼다고 백기를 들었을 때 그는 말했다. “대부분의 여성 분들이 회원님 같습니다. 우선 살을 뺄 생각부터 하죠. 하지만 차근히 얘기해 보면 그분들이 원하는 건 다른 겁니다. 비만체형이 아니라면 살을 빼는 것보다 적절한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하고 예쁜 몸매를 만드는 데 훨씬 효과적입니다. 체중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리고 잘 드세요. 굶으면 근육이 잘 생기지 않고 라인도 더디게 만들어 집니다.”

만약 당신이 극세사 다리를 뽐내기 위해 절묘한 각도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려는 참이라면 ‘이게 과연 자랑할 일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다. 당신보다 옷 사이즈가 작은 친구 앞에서 괜히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세상의 눈은 달라지고 있으니까.

스쿼트(Squart)
하체운동의 기본. 허벅지와 엉덩이를 탄력 있게 만든다. 무릎과 엉덩이의 높이가 수평이 될 때까지 앉았다가 일어난다. 앉았을 때 무릎이 앞으로 빠지지 않아야 하고, 천천히 앉고 빨리 일어서는 게 포인트. 익숙해 지면 적당한 무게의 덤벨을 들고 한다. 무릎에 무리가 올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너무 낮게 앉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데드리프트(Dead-lift)
등부터 허리,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까지의 라인을 예쁘게 만들어 준다. 적당한 무게의 덤벨이나 바벨을 들고 손이 허벅지 앞쪽에 닿도록 놓은 다음 무릎은 살짝 굽힌다. 손은 허벅지를 따라 스치듯 천천히 내려오고 엉덩이는 살짝 뒤로 빼면서 상체를 내렸다가 들어 올린다. 이때 허리가 아치형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펴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 무릎을 굽히지 않고 데드리프트를 하면 허벅지 뒷부분의 이완이 많이 되는데 하이힐을 자주 신어 허벅지 뒤쪽이 뭉쳐있는 경우에 좋다.

윗몸 일으키기
3대 웨이트 운동의 마지막은 벤치프레스(누워서 바벨을 들어올리는 동작)지만 나는 팔에 힘이 너무 없어서 무릎 대고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가슴 근육을 단련해 가슴이 처지는 것을 막고 클리비지의 모양을 예쁘게 만든다. 어깨와 팔 윗부분의 라인을 다듬어 주는 효과도 있다. 사실 윗몸 일으키기는 상체와 복부, 허리와 엉덩이, 허벅지 라인을 다듬는 데 효과적인 마법 같은 전신 운동이다.

복근 운동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무릎을 굽힌 채로 누워 상체를 들어올리는 등 자신이 편한 복근 운동 동작을 하면 된다. 물론 유산소 운동 없이 복부 지방이 제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데드리프트와 복근 운동, 평소 허리를 펴는 자세 습관의 조합 만으로도 납작한 배와 가느다란 허리에 근접할 수 있다.

*모든 동작은 15개씩 세 세트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 차츰 개수와 세트 수를 늘린다. 스쿼트를 20개씩 5세트를 하면 어느새 하루에 100개를 하게 된다.

황진선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뒤 <마리 끌레르>와 <보그>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했다. 웬만한 문장가 뺨치는 어휘력과 우아한 비유, 세련된 상상력과 약간의 괴짜 기질을 지닌 A형 여자. <보그>에서 패션 에디터로 이름 날릴 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며 스테파노 필라티, 크리스토퍼 베일리, 프리다 지아니니 등 패션 슈퍼스타들과 독대해 그들의 속사정을 들었다. 현재 아내와 엄마를 겸하며 ‘보그닷컴’을 위해 전성기 시절의 필력을 다시 발휘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