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 아뜰리에로의 초대

하우스 창립 55년 만에 로마로 돌아온 발렌티노!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촐리 듀오의 꿈이 담긴 오뜨 꾸뛰르 패션쇼와 이 모든 것이 탄생하는 아틀리에를 〈보그〉가 방문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를 먹던 장면으로 유명한 로마의 명소, 스페인 계단.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발렌티노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발렌티노가 파리가 아닌 로마에서 오뜨 꾸뛰르 쇼를 선보일 예정이라는 소식은 많은 패션 피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로마는 1960년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첫 컬렉션을 공개한 도시가 아닌가! 발렌티노 하우스의 고향 로마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Maria Grazia Chiuri)와 피엘파올로 피촐리(Pierpaolo Piccioli) 듀오에게 어떤 영감을 줬고, 이것이 컬렉션에서 어떻게 표현됐을지, 부푼 기대를 품은 채 기자들은 로마에모여들었다. 쇼 당일, 발렌티노 본사 앞에는 아티스트 ‘피에트로 루포(Pietro Ruffo)’가 로마 포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작한 야외무대가 준비됐고, 프로그램 노트에는 어떤 드레스는 900시간의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었다.

드디어 시작된 쇼! 고대 로마 시민들이 입던 토가와 케이프, 고전적인 사제복 등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실루엣과 밀, 석류, 독수리 등 로마의 상징적 요소를 표현한 화려한 디테일이 런웨이를 가득 채웠다(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벨벳 케이프의 아치형 실루엣은 고대 콜로세움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것). 살갗이 비치는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에 납작한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매치한 룩은 더없이 관능적이었고, 하우스의 아이코닉한 ‘레드 드레스’ 시리즈는 그 어느 때보다 우아했다. 여기에 알레산드로 가지오(Alessandro Gaggio)의 화려한 골드 목걸이까지. 로마가 지닌 역사적인 유산과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남긴 하우스의 정체성, 그리고 듀오의 상상력이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신화 속 여신 같은 발렌티노 모델들의 피날레 워킹이 끝나고 디자이너들이 런웨이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쇼 다음 날, 이 환상적인 컬렉션을 만들어낸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새로 오픈한 플래그십 매장 옆에 위치한 팔라초에 들어서자, 발렌티노의 크림색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담당자 레이첼이 반갑게 맞이했다. “발렌티노 아틀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녀는 이탈리아 남부 사람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한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건, 발렌티노 하우스의 아카이브 사진이 가득 걸려 있는 하얀 벽면, 그리고 왼쪽 가슴에 빨간 글씨로 ‘V’라고 수놓인 하얀 가운을 입은 장인들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Buòn giórno a tutti! Vogue Corèa(안녕하세요, 모두들! <보그 코리아>에서 왔어요).” 레이첼이 첫 번째 방문을 열며 힘차게 우리를 소개하자, 열심히 작업을 하던 장인들이 고개를 들고 환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은 옷의 가장 기본인 패턴을 뜬 후 가봉하는 곳이에요. 저희 브랜드만의 마네킹에 맞춰 가봉한 후 디자인이 잘 나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테이블 위에는 수십 가지 원단이 펼쳐져 있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발렌티노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이스! 골무를 낀 장인들이 레이스 위에 한 땀 한 땀 비즈와 꽃을 달고 있었다. “수놓인 원단을 사서 자수 부분만 잘라낸 후, 다시 튤 위에 붙이면 발렌티노만의 섬세한 레이스가 탄생합니다.”

옆방은 벽면에 검은 전선이 가득하고 테이블 위에 온갖 종류의 다리미가 올려진 다림질방. “이 다리미의 무게는 5kg 정도입니다. 완성된 레이스 위에 도장을 찍듯 무거운 다리미로 꾹 눌러 힘껏 다리죠. 12kg짜리도 있답니다.” 그다음 작업실엔 솜으로 감싼 여러가지 체형의 마네킹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몸이 마네킹과 같이 완벽할 수는 없죠. 그래서 고객의 체형을 측정한 뒤 마네킹 위에 솜을 붙여서 고객의 몸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만들죠. 뚱뚱한 고객일수록 솜이 많이 필요하겠죠? 하하.” 레이첼은 이곳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바로 저 독수리가 이번 오뜨 꾸뛰르 컬렉션의 일등 공신이죠! 건축물부터 벽화까지 로마의 유물에서 영감을 얻은 다채로운 디자인이 컬렉션에 녹아들었지만, 그중에서도 드레스 위에 수놓인 독수리는 여기서 출발한 겁니다.”

아틀리에의 여러 작업실을 둘러보면서 인상 깊은 점은 의외로 젊은 장인이 여럿 있다는 것. 나이가 많은 베테랑 장인 옆에는 그 뒤를 이어갈 젊은 청년이 반드시 함께 있었다. “우리만의 기술을 계속해서 지켜나가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적극 채용해서 기술을 전수하는 이유죠.” 놀라운 건 기술을 전수해주는 장인이나, 이를 전수받는 연습생들이나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이었다는 것. 발렌티노가 반세기가 넘도록 끊임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레이스 한 조각도 정성을 들여 만들고 있는 장인들이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