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칫솔

라이프스타일 숍에 등장한 멋진 칫솔들은 양치질을 일상의 의무가 아닌 감성의 영역으로 이동시킨다. 치카치카가 훨씬 즐거워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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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유마키, 아이졸라, 레데커, 노메스 코펜하겐, 래디어스 소스, 모요, 블랙 위 러브 칫솔, 튜브 링거는 아이졸라.

당신이 사용하는 칫솔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칫솔은 그냥 소모품이다. 책상 위에 던져놓고 다녀도 남들이 어떤 칫솔을 쓰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족과 함께 살면 내 칫솔이 어떤 건지 헷갈릴 정도로 무취향 영역에 가깝다. 엄마가 오빠만 좋은 칫솔 사준다고 울어본 경험이 없는 걸 봐도 남녀노소 평등한 품목이었다.

칫솔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건 다 아이졸라 때문이다. 일단 플라스틱이 아니다. 미끄럼방지 고무도 달려 있지 않다. 반듯한 일자 모양 나무 바에 하얀 솔이 달려 있을 뿐. 칫솔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우는 그림책에 그려져 있을 법할, 그야말로 칫솔다운 모습이다. 아이졸라 칫솔은 손잡이는 대나무, 칫솔모는 나일론으로 만들었다. 아이졸라 관계자는이 칫솔을 두고 처음에는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용하다 보면 좋아지는 때가 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빳빳하기보다 매끈하고 적당한 강도를 지닌 편에 속한다. 칫솔모보다 매력적인 건 나무가 주는 느낌이다. 아이졸라 칫솔에서는 나무 향이난다. 아이스크림 막대나 나무젓가락이 주는 나무 느낌과는 다르다. 사용할수록 치약의 향이 더해져 나만의 칫솔 향이 만들어진다. 쌓여가는 향기 때문일까. 칫솔도 길들일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아이졸라 칫솔에는 브랜드명 대신 ‘Ruminate’ ‘Meditate’ 같은 마음이 편안한 단어, ‘Mine’ ‘Yours’ 같은 센스 있는 단어가 적혀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칫솔을 교체하라는 의미로 네 개를 한 세트로 구성하기도 한다. 아이졸라 칫솔을 선택한다는 건, 반듯하게 다림질한 화이트 셔츠를 입는 마음과 비슷하다. 엑스트라 딥클린 크로스액션 칫솔은 평상시에도 아웃도어 룩으로 중무장하고 있는 느낌이니까. 클래식에 대한 동경, 기본기가 충실한 제품에 대한 기대가 어우러져 아이졸라 칫솔은 양치질 이상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레데커 칫솔은 아이졸라보다 칫솔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인상을 준다. 너도밤나무와 돈모로 만든 칫솔이라니. 실제로 역사서에 따르면 최초의 칫솔은 말, 돼지, 오소리 털을 나무나 상아, 또는 동물 뼈에 끼운 모습이다. 공대 출신 남자가 보면 구둣솔이냐고 물어볼 디자인이지만, 75년째 브러시를 만들고 있는 레데커 칫솔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담고 있다. 마이크와 비트 외엔 필요 없다고 말하는 힙합 뮤지션처럼 목재와 천연 브러시뿐이다. 평생 매끈하게 커팅된 칫솔만 사용해온 입장에서 레데커 칫솔의 사용감은 투박하다. 거칠고 풍성한 솔은 치아에 닿는 면적이 넓고, 쓸어내리고 올리며 칫솔질하게 한다. 원하는 구석구석 닦인다기보다 자연에서 온 재료가 내 몸에 닿는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천연모 칫솔은 치아표면과 잇몸에 손상을 덜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 차이는 미비하다. 치과 의사들은 칫솔질로 치아와 잇몸이 마모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온라인 편집숍 마지꽁뜨에서 판매하는 노메스 코펜하겐 칫솔은 나무 칫솔 특유의 클래식함에 경쾌함을 더한다. 노메스 코펜하겐은 ‘깨끗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칫솔모에 블랙, 화이트, 핑크, 옐로, 블루 컬러를 입혔다. 하나만 두고 쓰기보다 다섯 개를 한꺼번에 세워놓고 쓰고 싶어지는 제품이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대나무 특유의 향 역시 머금고 있다. 앞서 언급한 칫솔에 비해 칫솔모가 부드러워 시중의 미세모 칫솔과 거의 유사하다. 사실 나무 칫솔은 물기가 빨리 마르지 않기 때문에 관리에 좀더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나일론 칫솔 하나가 썩는 데 30년 이상 걸리는 현실에서 나무 칫솔은 환경에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그 마음 하나로도 충분히 사용할 이유가 생긴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연장선에는 유마키 칫솔이 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회사와 100년 넘게 구강 제품을 생산해온 일본 제조사가 함께 만들었다. 일자형 바를 중간중간 살짝 들어 올린 디자인으로 편안한 그립감을 만들어낸 유마키 칫솔은 재료에서 실험 정신을 발휘한다. 사탕수수 플라스틱, 인조 거북 등껍질 등으로 손잡이를, 차콜 혼합물, 자연 분해 칫솔모 등으로 칫솔모를 만든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편리하다. 게다가 탱글탱글 탄력 있는 모는 상당히 중독적이다. 브리지 하듯 칫솔모 몇 가닥 색깔을 바꾼다거나 손잡이에 무늬를 새겨 넣는 디자인 센스, 칫솔 하나마다 붙여둔 이름이 양치질을 일상의 의무가 아닌 감성의 영역으로 몰아넣는다.

래디어스 역시 유마키처럼 기술과 디자인을 내세운다. 건축가 두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래디어스는 스팅, 우피 골드버그 등 셀럽들이 사랑하는 칫솔로도 유명하다. 래디어스 소스 칫솔의 미덕은 입안 가득 밀려오는 풍성한 부드러움이다. 5,000가닥에 달하는 풍성한 칫솔모가 과장 조금 보태서 입안을 보드랍게 어루만진다. 손잡이는 지폐, 종이, 나무 등을 재활용한 바이오 플라스틱. 헤드만 교체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다. 착한 메시지를 담고, 보기 좋으며, 실제로도 품질이 좋은 칫솔은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취향이 되는 중이다.

모요는 작은 칫솔 헤드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칫솔이다. 헤드가 작아 어금니 깊숙한 곳까지 닿고, 칫솔모는 단단하여 마치 한 몸처럼 흐트러짐이 없다. 일본에서 10년간 치과에서만 판매된 칫솔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상큼 발랄한 패턴을 둘렀고 선택지는 수십 개다. 온라인 편집숍 29CM가 구강용품 회사 치아랑과 함께 만든 ‘Black We Love’도 비슷한 만족을 준다. 칫솔을 하나만 사용하면 충분히 건조되지 않아 세균이 생길 수 있으니 흰색과 검정 칫솔을 번갈아 쓰도록 한 구성이 귀엽다. 모요만큼 헤드가 작진 않지만 구석구석 닦기에 충분하고, 이 중 슬림모가 상당히 부드럽다.

치과 의사들은 이들 칫솔을 두고 ‘좋은 도구’라고 표현하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교과서적으로 말한다. 은치과 이가은 원장은 나이, 잇몸 상태, 식습관 등에 따라 칫솔을 고르라고 권한다. “이를 닦는 건 청소와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박박 닦는 게 최고예요. 하지만 마음이 통한 칫솔은 정신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죠. 양치질의 목적에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멋진 칫솔은 인간이 가진 ‘그루밍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1+1 묶음 할인도 없는 칫솔을 왜 사용하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나는 소중하니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뽀송하게 말려서 고이 접어둔 하얀 타월, 튜브 링거로 살뜰히 짜놓은 마비스 치약, 그리고 아이졸라 칫솔보다 일상을 상쾌하게 해주는 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