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My Fur Lady

2016.03.15

by VOGUE

    My Fur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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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희한하게 생긴 신발 한 켤레가 출현해 육지를 휩쓸고 있다. 정말이지 ‘휩쓴다’는 표현이 이토록 적절한 신발이나타날 줄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를 새롭게 가다듬으며 내놓은 신발이 화제다. 구찌 웹사이트에서는 이 신발을 판매하며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The goat slipper has long hair goat inside and out then finished with our signature horsebit detail.” 쉽게 말해, 염소털 슬리퍼라는 얘기(웹사이트에서는 1,800달러에 판매 중).

    아인슈타인 박사가 자주 신었던 모피 슬리퍼를 기억하는지. 그걸 쏙 빼닮은 구찌 염소털 슬리퍼는 패션쇼 사진으로 봤을 때만큼 발을 밀어 넣을 때의 기분도 끝내준다. 물론 처음엔 기형적 외모에 발끝을 머뭇거린 것도 사실이다. 털북숭이 인형인지 어딘가에 팽개쳐진 금발 가발인지 대관절 정체가 불분명했으니까. 실제로 청담동 구찌 쇼룸에서 이 신발을 신어본 <보그> 여기자는 티베트 염소털의 보드라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품평했다. 내친김에 ‘슈피’를 찍어 <보그>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무려 100여 개의 댓글이 뒤따랐다. “아무리 봐도 라푼젤 머리채 잡은 듯” “웬 머리털이…” “바닥 먼지를 다 쓸고 다니겠네요” “발에서 털이 난 느낌” 등등(한글 품평과 함께 수많은 제2 외국어 댓글들도 줄줄이 달렸다). 재치로 치자면 개그맨도 울고 갈 네티즌들의 품평이 전부 딱 들어맞지 않나. 어디 이뿐인가? TV홈쇼핑에서 파는 바닥 청소 걸레가 떠오른다느니, 털이 너무 치렁치렁하게 긴 나머지 좀 다듬고 싶을 땐 애견 미용실로 가는게 좋겠다느니, 바야바가 따로 없다느니.

    ‘털북숭이’ 슬리퍼보다 좀더 현실적인 홀스빗 가죽 로퍼 모피 슬리퍼(요 다섯 가지 요소로 완성됐으니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다)는 현재 패션 애호가들 사이에 물건 중의 물건으로 꼽힌다. 밀라노 패션 위크 현장에서(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첫번째 컬렉션인 남성복 쇼가 이 신발의 데뷔 무대) 홀스빗 모피 슬리퍼와 첫 대면한 기자들은 물론, SNS에 가장 많이 올라왔던 이 신발 사진을 보며 흥분한 패션 팬들 사이에서. 심지어 구찌쇼 다음 날에는 “어제 그 신발 봤어?”가 아침 인사였다. 또 가을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도 “그 털 신발은 언제 매장에 진열되죠?” “가격은 얼마쯤 되려나?” “미리 예약해도 되나요?”라는 대화만 들릴 정도.

    절반만 로퍼 형태고 절반은 슬리퍼인 ‘쿨’한 용모와 달리 완전체로서 로퍼 버전(안쪽에 쌓인 모피가 바깥으로 삐죽삐죽 나온)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신던 추억의 털 고무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패션에서는 물의를 빚거나 논란 속에 태어난 것들이 패셔너블하다고 귀결될 때가 많다. 그런 관점에서 털북숭이 슬리퍼야말로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구찌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키고 반향을 일으키게 한 일등 공신. 이렇듯 독보적 존재감을 과시한 채 혼자서 세상의 주목은 다 받고 있는 홀스빗 로퍼 슬리퍼는 아쉽게도 한국 오프라인 매장엔 채 스무켤레도 바잉되지 않았다. 그래서 홈쇼핑에서 미리 주문하는 시스템으로 물건이 재빨리 매진되는 것처럼, 선주문을 통해 몇몇 패피들에게 삽시간에 입양됐다. 물론 해외 사이트나 외국에서 쇼핑한 사람들은 누구보다 빨리 슈피를 찍어 SNS에 올려 ‘인증욕’을 과시하는 중.

    모피로 꾸민 신발은 나올 때마다 인기다. 지난 2013년 셀린을 위해 피비 파일로는 버켄스탁을 닮은 슬리퍼에 모피를 깔았다. 심지어 그것도 겨울 컬렉션이 아닌 봄 컬렉션. 또 포근하게 양털을 뒤집어쓴 어그도 마찬가지. 이제 또 하나의 관전이 남았다. 이 털북숭이 슬리퍼가 휩쓸고 간 자리는 과연 얼마나 깨끗할까?

      에디터
      신광호
      일러스트레이션
      SNOW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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