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뮤직 스타트

애플이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미국, 유럽 등 이미 서비스를 시작한 곳에서는 난리다. 그래서 이게 ‘멜론’, ‘벅스’랑 어떻게 다르냐고? 이건 지금 음원 시장의 판도가 새로 쓰이고있다는 얘기다.

WOO_171 3

지난 7월 애플의 본격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 뮤직’의 소식이 들리자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이팟시리즈에서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까지 애플에 죽고 사는 애플 옹호자들이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음악을 앞세운 취미 생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기도 했다. 얼핏 큰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집단이 꽤 큰 교집합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예술의 가치를 존중해온 애플의 경영 철학에 기인한다. 그 어떤 새로운 테크놀로지와의 결합에도 예술의 존엄과 장착의 권리를 해치지 않으려 애쓰는 세계적인 기업이라니! 단지 그런 척할 뿐이라는 이들의 비난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이다.

서비스 개시 4주 만에 가입자 1,000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인 애플 뮤직의 성장세는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쳐 공고히 해온 기업과 이용자 사이의 신뢰와 세계 최대의 온라인 뮤직 스토어 아이튠즈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 땅에 사는 이상 어차피 100% 이용할 수 없다는 핑계로 수년간 스포티파이(Spotify)며 판도라(Pandora) 등의 서비스를 애써 외면해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아마도 멜론, 벅스 뮤직 등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사 이력으로 몸이 기억하는 ‘수동적 소비 주체로의 전락’에 대한 저항감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은 다른 어떤 문화보다 고유의 자립성을 보장받기 힘든 장르가 아닌가. 심지어 한달에 9.9달러, 1만원 남짓한 돈으로 탐험할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세계는 깐깐한 비틀스와 테일러 스위프트마저도 너무 쉽게 훑어버린다. 스트리밍 세계에서 음악은 그저 흘러갈(Stream)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뮤직의 유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3개월 무료 이벤트와 해외 사용이 가능한 신용카드만 있으면 VPN 등의 방법을 이용해 서버를 우회하지 않아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계정에 쌓인 먼지를 털고 신용카드 홈페이지에 접속해 액티브 엑스와의 처절한 싸움 끝에 해외 주소를 입력하는 데 성공한 나는 드디어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앞에 섰다. 그들의 질문은 두 가지였다. 어떤 장르를 좋아하거나(한번 터치) 사랑하는지(두 번 터치), 그리고 어떤 뮤지션을 선호하는지를 물었다. 여기서 솔직하지 않으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모든 게 어그러질 듯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왜인지 조금 쑥스러운 기분으로 인디, 일렉트로니카, 팝, R&B, 클래식 록을 차례로 골랐고, 뒤이어 킹크스, 페이브먼트, FKA 트위그스, 휘트니 휴스턴을 터치했다. 유레카, 드디어 새로운 흐름(Stream)의 문이 열렸다.

훈풍이 가득한 음악의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건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허무해졌다. 새로운 음악과의 만남이 주는 짜릿함과 함께 그것을 충분히 음미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무력감이 커진 탓이었다. 이 배부른 투정은 SNS가 우리의 삶을 장악하면서 만연한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풍부한 정보량에 비례해 자라나는 상대적 박탈감. 비츠 뮤직(Beats Music)의 성공적 인수합병으로 롤링스톤스, 피치포크등 30여 개 음악 전문 브랜드 큐레이터들을 등에 업은 이들이 자존심을 걸고 차린 산해진미는 뛰어난 취향의 성찬이었지만,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취하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었다. 스트리밍에 의한 음악은 그저 ‘흐를뿐’ 곁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곁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선 또 다른 동력이 필요했다. 새로운 것의 ‘발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리스너들에게 스트리밍은 분명 혁신에 가까운 서비스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경험하고픈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딘가 초조한 서비스인 것이다.

누구도 돈을 주고 음악을 사려 하지 않는 시대다. 음반을 사는 건 음반이 ‘굿즈’ 역할을 하기 시작한 아이돌 음악 팬들이나 멸종 직전에 놓인 극소수 음반 수집가들뿐이고, 세계 최고의 음원 시장 아이튠즈를 보유한 애플마저 스트리밍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론칭하며 음원은 음반의 성공적인 대체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천명했다. 지금껏 우리가 정답이라 생각해온 그 무엇도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한 지금, 애플 뮤직을 위시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악계의 궁극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심지어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의 음악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애플에 반발해 싸워 이겼다. 궁극의 데이터베이스와 이용의 편의성, 그 모든 가치를 상쇄하고도 남을 합리적 가격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자신 있게 긍정의 푸른 깃발을 흔들지는 못할 것 같다. 커다란 레코드 위에 조심스레 바늘을 올려놓을 때의 감각이나 비닐을 뜯고 반짝이는 새 CD를 꺼내 들 때의 희열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곰방대를 휘두르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을 더 오래, 더 의미 있게 우리 곁에 잡아둘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절대자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단번에 해답을 구하리라는 헛된 기대는 이제 접어둘 때도 됐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시 처음부터 각자의 취향을 성실하게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뿐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새로운 흐름은 우리를, 음악을 구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