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어 라인

그동안 쇼츠와 스키니 팬츠에 빠져 있던 여자들이 자유분방하고 보이시한 팬츠 쪽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플레어 라인이야말로 이번 시즌 팬츠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스웨이드 재질의 코트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프릴 장식의 하이넥 실크 블라우스와 에스닉한 골드 메탈 목걸이는 에이치앤엠(H&M), 울 크롭트 플레어 팬츠는 매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 at Boon The Shop), 버건디 컬러 첼시 부츠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스웨이드 재질의 코트는 루이 비통(Louis Vuitton), 프릴 장식의 하이넥 실크 블라우스와 에스닉한 골드 메탈 목걸이는 에이치앤엠(H&M), 울 크롭트 플레어 팬츠는 매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 at Boon The Shop), 버건디 컬러 첼시 부츠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남성복처럼 재단된 팬츠나 몸매를 드러내는 섹시한 팬츠를 입는 것이야말로 도회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다. 지난봄 ‘와이드 레그 진’과 함께 70년대로부터 불어온 팬츠 바람은 매력적인 나팔 바지의 부활을 예고했다. 그로 인해 시작된 판탈롱 트렌드는 프린지와 데님, 롱 숄더백 등과 만나 모던 히피 룩을 완성했다(물론 사계절 내내 다리를 드러내고 싶은 여성들은 런웨이 트렌드와 상관없이 캐주얼한 쇼츠를 선택했지만). 그런가 하면 유틸리티 트렌드와 함께 간결한 큐롯 팬츠도 등장했다. 그러나 늘 인기를 끄는 건 밑단을 돌돌 말아 올린 데님이나 발목 길이 크롭트 팬츠처럼 편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의 짧은 팬츠. 하지만 올가을 많은 패션 전문가는 다시 플레어 팬츠를 밀고 있다. 미국 <보그>만 해도 패션 화보를 통해 길고 아찔한 플레어 실루엣을 잔뜩 등장시켰다(올가을 넘버원 트렌드로 ‘롱앤린’ 실루엣을 꼽으며, 캘빈 클라인, 프로엔자 스쿨러, 로에베, 스텔라 맥카트니 등의 플레어 팬츠에 짧은 울 드레스나 튜닉, 아찔한 힐을 매치했다).

플레어 팬츠의 매력은 성큼성큼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다. 높디높은 힐은 넓은 바짓단 속에 숨겨둔 채. 하지만 하이힐의 위태로운 매력보다 플랫 슈즈의 편안함이 좋다면? 놈코어 룩을 위해 잔뜩 사둔 스니커즈를 여전히 즐기고 싶다면? 올가을 플레어의 펄럭이는 매력을 즐기기엔 무리일까? “너도 빨리 판탈롱 팬츠를 ‘짤뚱하게’ 잘라 입으렴!” 얼마 전 친구가 짧은 메시지와 함께 보내준 사진 한 장은 이런 고민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검정 벨보텀 팬츠를 짧게 잘라 입은 파리 <보그> 편집장 엠마뉴엘 알트. 날씬한 벨보텀 팬츠를 싹둑 잘라 이브닝 룩으로 완성한 그녀의 룩은 새롭고 신선했다. 그러고 보니 디자이너들은 리조트 컬렉션을 선보인 이른 봄부터 짧은 플레어 팬츠를 지속적으로 준비해왔다. 요즘 등장하는 플레어 팬츠는 엉덩이나 허벅지는 쫙 달라붙으면서 종아리에서 나팔형으로 퍼지는 디자인이 대부분. 중요한 건 다들 길이가 복사뼈 위에서 끝난다는 사실. 그러니 굽 낮은 슈즈와 매치해도 팬츠가 바닥을 청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알트처럼 루스한 실크 셔츠와 입어도 되고, 개성 넘치는 재킷이나 가을 코트, 혹은 드레시한 튜닉과 연출하면 세련된 놈코어 룩을 즐기기에도 적절하다.

Versace, Fendi, Stella McCartney, Leandra Medine

Versace, Fendi, Stella McCartney, Leandra Medine

그런데 길거리를 싹 청소할 만큼 길고 펄럭거리던 플레어 팬츠가 별안간 왜 짧아진 걸까? 그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들의 룩을 몽땅 바꿔놓은 플랫 슈즈의 영향이 크다. 덕분에 여자들은 낮은 플랫 슈즈와 스니커즈를 신고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새로운 헴라인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달 <보그>에 실린 ‘Cropping Idea’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올가을 팬츠는 밑단이 복사뼈 위로 껑충 올라간 게 대세. 애매한 길이를 근사하게 연출하기 위해 궁합이 잘 맞는 구두도 중요하지만 플레어 라인으로 변화를 준다면 좀더 경쾌한 팬츠 트렌드를 즐길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모델 한혜진처럼 쭉쭉 뻗은 몸매가 아닌 이상 하체가 비교적 짧은 동양 여성들에게 과연 짤막한 플레어 라인이 잘 어울릴까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정쩡’하게 바닥을 질질 끄는 벨보텀보다 과감하게 짧은 크롭트 라인이 더 낫다. 동시대 여자들을 위한 패션 카운슬러 피비 파일로 역시 플레어 팬츠의 헴라인을 짧게 자르고 키튼 힐을 매치했다. 게다가 이런 크롭트 벨보텀 팬츠에 블레이저나 튜닉을 더하면 세련된 업타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니트 가운이나 드레스, 카키색 야상을 매치하면 좀 더 새로운 스타일이 완성된다. 그리고 실크 블라우스에 크롭트 플레어 팬츠를 입는다면? 로맨틱하고 트렌디한 가을 룩으로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