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그물 스타킹

19세기 말 ‘물랑 루즈’ 댄서, 40년대 핀업 걸, 80년대 마돈나… 한 세기가 넘도록 남자들의 시각으로 고착된 그물 스타킹의 이미지는 그만! 이제 패션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용기를 낼 순간이다.

150702-06-004_V1_CMYK-1

민소매 톱, 양가죽 스커트, 체인 벨트, 메탈 장식 백과 앵클 스트랩 펌프스는 모두 루이비통(Louis Vuitton), 귀고리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팔찌는 데이비드 여먼(David Yurman), 반지는 에프 컬렉션(Ef Collection), 스타킹은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한 달 전, 마돈나 인스타그램(@madonna)에 ‘거울 셀피’가 한 장 올라왔다. 화장기 없는 민낯, 몸에 딱 붙는 검정 보디 수트, 무릎까지 올라오는 구찌 레이스업 부츠, 그리고 촘촘한 그물 스타킹! 그건 ‘80년대 스타일’을 대표하는 마돈나 전성기 룩을 고스란히 재현한 모습이었고 여전히 관능적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고 보면 마돈나 이후 수많은 ‘디바’는 그물 스타킹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다. 극적인 체중 감량에 성공한 마일리 사이러스는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기 위해 늘 그물 스타킹과 마이크로 쇼츠 차림. 또 리타 오라, 리한나, 그웬 스테파니, 레이디 가가 등은 무대는 물론 평소에도 그물 스타킹을 즐긴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 여자들의 옷장에도 그물 스타킹이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지난 몇 시즌간 우리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맨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패션인 것처럼 세뇌당해왔다. 매년 혹독한 추위로 기록을 경신하는 1월의 뉴욕 패션 위크에서조차 맨다리에 힐을 신고 아슬아슬하게 살얼음판 위를 걷는 패션 피플들의 모습이 포착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는 조금 달랐다. 처음으로 그물 스타킹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건 뉴욕의 프로엔자 스쿨러. 얼핏 커다란 물방울무늬처럼 보이는 굵은 그물 스타킹 위에 롱 드레스 차림의 모델들이 등장한 것. 드레스의 컷아웃 사이로 살짝 드러나거나 시스루 드레스 안에 은은하게 비치거나 드레스 자락 아래 발목 부분에 살포시 보이는 그물 스타킹은 더없이 ‘하이패션’다웠다.

 

런던의 시블링, 밀라노의 파우스토 푸글리시에 이어 정점을 찍은 건 파리의 생로랑 쇼. 에디 슬리먼의 ‘로큰롤 걸’들은 아무렇게나 찢고 그 위에 철심을 연결해 독특한 무늬를 만든 그물 스타킹을 타이트한 가죽 미니스커트, 불량한 메이크업과 함께 매치했다(몇 시즌에 걸쳐 슬리먼의 주술에 빠져든 관객들이 이번에도 열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생로랑 룩으로 빼입으며 그물 스타킹까지 곁들인 안나 델로 루쏘, 프라다 미니 원피스와 그물 스타킹 차림으로 미우미우 향수 론칭 행사에 참석한 케이트 모스, 고상한 샤넬 트위드 수트 아래 굵은 그물 스타킹을 신어 반전 매력을 살린 앨리스 데럴 등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새로운 유행을 재빠르게 받아들이는 ‘패션 얼리어답터’다운 자세.

그나저나 평생 그물 스타킹을 신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대부분의 여자들에게도 이 유행이 전파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물 스타킹을 신은 여자를 실제로 거리에서 본 기억조차 없다. 누가 정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암묵적으로 그물 스타킹은 일상에서 금기시되는 패션 아이템. 하지만 여러 디자이너들이 그물 스타킹의 신분 상승을 위해 애쓰는 지금, 나에게 도전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패션 애호가들이라면 비슷한 마음이 들 것이다). 평소 과감한 아이템을 즐기는 어느 패션 기자는 생로랑 쇼 이후, 백화점 매장에 들러 그물 스타킹을 몇 차례 신어봤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사고 싶었지만 다리가 굵어 보이는 것 같아서 참았어요. 다리가 굵거나 휘어 있으면, 그 단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치명적인 아이템이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늘씬한 모델들조차 그물 스타킹을 신고 있으면 다리가 예쁘지 않게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스타킹의 구멍 사이로 살이 튀어나오거나, 스타킹을 벗은 순간 그물 모양대로 격자무늬 자국이 남는 불상사를 피하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

 

가을 컬렉션에 그물 스타킹 신은 모델을 잔뜩 내보낸 키미제이(Kimmy.J) 디자이너 김희진은 보온성이 없는 그물 스타킹이야말로 온전히 심미적 기능만 있는 진정한 패션 액세서리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스타일링 고수의 아이템인 건 분명해요. 모델들에게는 과감하게 연출하지만 직접 신을 때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긴 드레스 아래 신고 걷거나 앉을 때만 살짝 드러나도록 해요. 그래야 덜 부담스럽죠.” 그런가 하면 한때 온갖 최신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기 엄마가 된 친구는 ‘그림의 떡’이라고 표현했다. “프로엔자 스쿨러의 굵은 그물 스타킹부터 생로랑의 찢어진 그물 스타킹까지 전부 신어보고 싶어! 여자들의 로망 중 하나니까. 하지만 남편이 싫어할 것 같긴 해. 그물 스타킹 신고 아기 유모차 끌고 있는 모습이라… 상상이 잘 안 되잖아?”

아니나 다를까, 주위 남자들에게 그물 스타킹 신은 모델 사진을 보여주니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정말 유행이라고? 거리의 여자들이 전부 신고 다녔으면 좋겠다! 단, 내 여자 친구는 빼고! 소개팅 자리에 그물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나오면 왠지 ‘가볍게’ 느껴질 것 같아.” 평범한 회사원, 그야말로 ‘흔남’인 대학 동창들은 거의 똑같이 말했다. “안 신었으면 좋겠어. 왜? 혹시 신고 싶어?” 그동안 디스트로이드 진부터 타투, 피어싱, 분홍 머리 등 온갖 튀는 행동을 트렌드라는 핑계로 서슴지 않던 여자 친구를 묵묵히 지켜보며 어떤 불만도 제기하지 않던 내 남자 친구 역시 그물 스타킹만은 원치 않았다. 남자들이 그물 스타킹에 대해 부정적 편견, 혹은 독특한 판타지를 지닌 이유는 뭘까? “각종 미디어를 통해 ‘그물 스타킹을 신은 여자’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확립된 듯해. ‘베드신’은 늘 그물 스타킹을 찢으면서 시작되니까.” <GQ> 피처 기자인 친구의 해석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다 떠나 그물 스타킹이 정말 하이패션 트렌드라고 해도 모든 여자들이 무분별하게 시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왠지 모르게 여자들은 날씬하면 뭐든 어울린다는 잘못된 공식에 빠져 있지만 그물 스타킹은 단순히 날씬하다고 해서 어울리는 품목이 아닌 것 같거든. 진정 잘 어울리는 여자가 적절한 스타일링과 함께 그물 스타킹을 신고 나타난다면 환영!”

 

그물 스타킹에 대한 별별 관점과 해석에도, 당신이 지금 이 순간 ‘핫’한 패션 아이템에 직접 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면? 가장 부담 없는 방법은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모델들처럼 다리 전체를 덮는 롱 스타킹 대신,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 버전으로 시도하는 게 좋다(남성적인 스터드 장식 로퍼와 무척 잘 어울린다). 로다테, 혹은 레베카 밍코프는 단순한 격자 대신 레이스 느낌을 살려 좀더 여성스럽게 해석했다. 또 파스텔톤 꽃무늬를 더한 지암바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느낌. 다리 노출이 많을수록 그물 스타킹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으니 프로엔자 스쿨러처럼 롱 드레스에 곁들여 발목 부분만 살짝 드러내는 것도 아이디어. 그러나 이왕이면 생로랑 스타일로 화끈하게 신어보고 싶다면? 촘촘하고 얇은 그물 스타킹을 고른 후 무심하게 찢으면 된다. 양쪽 다리의 찢은 위치도 다르게 하고 구멍의 크기 역시 다르게 하는 것이 노하우(의상 역시 과감하게).

몇 개월 전 온라인에선 그물 스타킹을 둘러싼 때아닌 논쟁으로 시끌시끌했다. CNN 앵커 출신 저널리스트 피어스 모건이 57세 마돈나와 69세 셰어가 여전히 그물 스타킹을 즐겨 신는 건 전혀 멋있는 행동이 아니라고 트위터에 언급한 것. 마돈나와 셰어 팬들은 그의 발언이 성차별적인 데다 연령 차별적이라고 마구 비난했다. 그렇다면 거침없는 디바 셰어의 반응은? “내가 죽거든 그물 스타킹을 신긴 채 묻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