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지금이 유아인의 시대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만 영화 〈베테랑〉과 천만 감독의 영화 〈사도〉를 나란히 극장에 건 이 야심만만한 배우는 과녁을 벗어난 자유로운 화살처럼 이미 다음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오늘을 사는 배우 유아인의 끝없는 절정.

“저 명함 주세요.” 새벽 1시. 촬영을 끝내고 스튜디오 위층 사무실로 올라온 유아인이 허겁지겁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기며 말했다.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1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매니저의 관리 감독 아래 주어진 시간을 채우고 나면 딱히 논란이 없는 한 인터뷰어는 영원히 익명의 존재로 잊히게 마련이다. 가끔은 알아서 써달라며 창작을 강요하는 무례한 요청도 있다. 그래서 과거 어떤 기자는 미리 기사를 써두고 형식적인 절차상 인터뷰 현장에 나간다고도 했다. 덕분인지 그는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승승장구 중이다. 어쨌든 유아인은 좀 다르다. 이건 통성명의 예절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초저녁부터 <보그>와의 화보 촬영 때문에 꼼짝없이 스튜디오에 잡혀 있던 그는 누군가 갖고 온 완도산 전복의 껍데기를 따고 직접 내장을 손질했다. 반쯤 만지다 만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개수대 앞에 선 그는 한참을 전복과 씨름하며 아무런 스스럼없이 스태프들과 농담을 나눴다. 스튜디오엔 한동안 바다 냄새가 진동했다. ‘보통의 존재’ 엄홍식(그의 트위터엔 ‘가장 보통의 존재의 진심 가득한 논알콜 140자 콤보 퍼포먼스’라는 자기소개 문구가 적혀 있다)과 톱 배우 유아인의 삶을 제집 방문 여닫듯 자유롭게 오가는 그는 확실히 일반적인 청춘스타의 범주를 벗어난 독특한 존재다. 지난해엔 예술적 재능 충만한 친구들과 함께 창작 집단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설립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단단해져 가는 동안 배우로서의 커리어도 착실히 쌓여가고 있다.

요즘 그는 영화 <사도> 개봉을 앞두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보 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곧 시작될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와 옴니버스 영화 <해피 페이스북>의 촬영장을 번갈아 오가는 중이다. 그 사이, 그가 주연을 맡은 또 한 편의 영화 <베테랑>은 천만 관객의 기록을 세웠다. 사실 숫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한 소년의 성장담과도 같은 그의 필모그래피는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했을 때 유아인은 실제로 미술을 전공한 고등학생이었고, 줄곧 작품 속에서 그가 맡은 인물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에 이르러 눈부시게 만개했다.

2005년 <왕의 남자>로 이미 천만 관객의 신화를 이뤄낸 이준익 감독의 신작 <사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임오화변’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새로운 각도에서 풀어낸 영화다. 혜경궁 홍씨나 영조, 혹은 정조와 같은 살아남은 자들의 입장에서 기술돼온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그간 역사의 주변 인물로만 머물렀던 사도세자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 것이다. 영화는 사도세자의 광기 어린 행적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하며, 정치적 희생양이 된 300여 년 전의 슬픈 가족사를 신·구세대의 갈등이라는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유아인은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의 사도세자 역을 맡아 왕권 유지를 위해 아들마저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송강호)와 대립한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던 영화 속 사도세자는 부러질지언정 방향을 바꿀 수는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말은 역할을 맡은 배우가 유아인이기에 공감을 넘어 공명을 일으킨다. 유아인은 배우로서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도구로 소비되길 거부해왔다. 대중에게 인정받기를 악착같이 갈망하면서도 스스로를 내다 팔진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화살의 본질처럼 타고난 그의 기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물아홉 해가 되던 해 사도는 결국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지만, 유아인은 끝내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스타라는 왕좌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로 그는 사도보다 한 살을 더 살았다. 누구도 지금이 유아인의 시대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그야말로 유아인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나더군요. <베테랑>은 천만이 넘었고요. 요즘 기분이 어때요? 
모르겠어요, 사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이런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겸손을 떨어야 하는지, 교만을 부려야 하는지, 아님 장난으로 받아쳐야 할지. 어제도 <해피 페이스북>을 촬영하는데, 미연 선배가 “야, 대세! 대세!” 이러고 놀리기에, “아니, 대세 아니고 실세~” 막 이러면서 농담으로 넘겼는데. 하하. 물론 그 모든 마음이 제 안에 있겠죠. 크게 어색하진 않아요. 저한텐 그런 야심과 욕심이 있으니까. 오히려 전 더 확고해졌으면 좋겠어요. 어깨에 벽돌을 좀 쌓은 느낌이 들려면 겨우 이거 가지고는 부족해요.

<사도> 촬영이 끝난 건 언제예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여름 한가운데서 <베테랑>이 끝났고, 또 그 여름 한가운데서 <사도> 촬영을 시작해 작년 이맘때 끝난 것 같아요.

무더운 여름을 뒤주 속에 갇혀 지냈군요. 
너무너무 더웠어요. 한복 입고 있는 것 자체도 덥고, 그 부안 세트장이 굉장히 멋있긴 하지만 촬영하기엔 최악의 조건이었어요. 뒤주에 들어가 있을 땐 진짜 말도 못해요.

사도가 세상을 떠날 때 나이가 스물아홉이었어요. 지난해 아인 씨의 나이도 그렇고요. 
정확히 같은 나이였죠. 그래서 더 애착이 가요. 제 개인의 욕망이 워낙 많이 닿아 있는 작품이라 이게 잘되면 아주 기분이 좋을 거 같고, 좀 아쉽거나 그러면 많이 반성하고 후회하고 그럴 거 같아요.

이번 영화 몇 번이나 봤어요? 
세 번이오. 기술 시사랑 언론 시사 땐 감상이란 걸 하기가 쉽지 않아요. 객관적으로 봐야 하니까. 개봉하면 못 보니까 VIP 시사 땐 일부러 친구들이 있는 상영관에서 같이 봤어요. 좋더라고요.

영화 개봉했을 때 극장 가서 자기 영화 본 적 없어요?
안 봐요. 얼마 전에 <뷰티 인사이드> 보고 극장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오는데, 관객분들이 <베테랑> 본 거냐고 물어 되게 민망했어요.

<사도>의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던가요? 
오프닝 시퀀스인데, 이건 뭐 누구라도 좋아할 거예요. 임팩트가 강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에 내 얼굴 나올 때. 배우의 입장에선 최악의 컨디션으로 죽음을 맞이했다가 뽀송뽀송한 얼굴이 다시 나와주니까 좋더라고요. 죽은 사도의 얼굴에 마지막으로 천이 덮일 때도 좋고요.

자신이 죽는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영화는 죽은 사도에게 수의를 입히고 입안에 쌀을 물리는 장례 의식을 오랜 시간 공들여 보여줘요. 관객 입장에서도 묘한 느낌이었어요. 
찍을 때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어야 한다는 생각뿐인데, 보는 건 되게 좋아요. 최고의 체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비록 가상이긴 하나 죽은 내 얼굴을 보는 건 되게 매혹적인 느낌이에요. 제가 <패션왕>을 했던 결정적인 이유도 영걸이가 마지막에 죽을 거라는 설정 때문이었어요. 현실에선 못하는 거잖아요. 죽으면 끝이니까. 아등바등 살고 있으니까.

“서른을 내 인생의 마지막 지점이라고 생각하며 산다”고 종종 말했죠? 
뭐, 20대의 허세, 허풍, 허영 그런 거죠. 생물학적인 나이로 딱 끊어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젊음에 대한 집착 같은 건 있어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그리고 지금도 알아요. 그걸 아는 만큼 제가 대단히 열정을 불태우며 뜨겁게 산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나이가 갑이라고.

돈이 갑이 아니고요? 
한 살이라도 어린 게 갑인 거 같아요.

<사도>를 보고 나니 배우 유아인의 시작점이 궁금해지더군요. 주연을 맡았던 첫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라고 묻는 꼬마에게 아인씨는 씩씩하게 “네!”라고 답했죠. 
저도 그 영화 못 본 지 오래됐어요. 한 번씩 DVD를 소장하고 계신 팬분들이 사인 받으러 오시면 이거 어떻게 구하셨느냐고, 제가 막 달라고 해요. 지금 제 영화가 천 개의 극장에 걸린다면 그땐 두세 개 극장에 걸렸어요. 우리 살면서 그런 ‘쌈마이’ 질문 많이 하잖아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그럼 전 그렇다고 아주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내 통장에 0이 지금보다 몇 개가 적더라도.

예전 작품을 가끔 다시 꺼내 보는 편인가요?
최근엔 <밀회> 클립을 한 번씩 보곤 했어요. 다시 봐도 별로 민망하지 않은 작품 중 하나예요. 연기도 그렇고. 하하. 무엇보다 그 드라마 속에서의 유아인이 전 너무 좋은 거 같아요. 물론 제가 유아인이긴 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말이죠.

<좋지 아니한가>의 4차원 소년도 사랑스러웠어요. 짝짓기 하는 개들한테 돌을 던진 아저씨한테 바락바락 대들던 거. “그럼 눈을 똥그랗게 뜨지, 아저씬 네모나게 뜰 수 있어요?!” 
아, 제가 너무 좋아하는 대사예요. 그 대사가 바로 저의 엑기스인 거 같아요. 지금도! 제가 참 그런 인물들한테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았나 봐요. 저 역시 당돌하고 혼란스럽던 시기여서 역할에 대한 몰입이라고 할것도 없이 인물과 제가 완전 뒤엉킨 상태로 그들과 같이 유아인이라는 덩어리가 이렇게 굴러온 거죠.

이준익 감독이 그려낸 영조는 우리가 흔히 ‘꼰대’라고 부르는 기성세대의 전형이더군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훈계만 일삼는 데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감정 기복까지 심하죠. 가장 최악은 사람을 못 믿는다는 거예요. 같이 일하기 싫은 상사 1위감이랄까? 
하지만 영조는 성군으로 칭송받은 역사적 인물이기도 하죠. 물론 해석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조선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굉장히 검속했다고도 해요. 아버지라는 한 인간으로서는 아니지만, 직업적인 면에선 왕 역할을 썩 잘해냈으니 그런 소리를 듣는 거겠죠.

그런 영조와 대립하는 사도로 유아인을 캐스팅한 건 신의 한 수 같아요. 뒤틀린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반기를 드는 사도처럼 SNS를 통해 제 할 말 다 해온 배우잖아요. 요즘 젊은 세대를 대표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 뭐 사도도 뒤주에 갇혀서는 후회했을 수도 있죠. 사도가 아름다운 인물이긴 하나, 꼰대에게 당당히 맞서는 대단한 ‘정의의 사도’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양면성이 있는거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마냥 나이스하고 똑똑한 그런 놈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일할 때만큼은 내가 옳다는 아집을 가진 인간이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영조처럼 굴고 있지는 않나. 하하.

기성세대의 모습 중 어떤 게 제일 싫어요? 
최악은 뭔가에 갇혀버린다는 거예요. 문을 닫아버린다거나 거기에 뿌리를 내려버린다거나 하는 것. 다양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이 정답인 양 구는 게 제일 안타깝고 슬프고 못생긴 일인 거 같아요. 그게 보수이건 진보이건, 이쪽이건 저쪽이건 간에.

<베테랑>과 <사도>를 연달아 보고 든 생각은 ‘중독되는 건 돈이 쉽고, 더 지독한 건 권력’이란 거였어요. 자본주의 시대의 왕자라고 할 수 있는 조태오는 끝까지 발버둥치던 사도세자와 달리 쉽게 괴물이 되었고, 절대 군주 시대의 왕은 권력때문에 아들마저 포기했죠. 그래도 재벌 회장님은 최소한 제 새끼만큼은 끔찍이 아끼잖아요.
어떻게 우열을 가리겠어요. 모두가 돈과 권력을 향해 살아가는데. 그 허상에 빠져 그것만 알고 살아가다 그렇게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어쩌면 그게 허상이 아닌 진실일 수도 있고. 요즘은 어느 한쪽을 콕 짚어 ‘너희는 못생겼어, 구려’ 이렇게 말 못하겠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 스스로에게서 그런 못생긴 구석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도려내기가 점점 힘이 들고요. 내가 얼마나 불여우 같은 놈인지 자각할때도 있고.

2차 공개 화보&인터뷰 보러가기 ▷ 유아인의 끝없는 절정②

 

ⓒVOGUEKOREA 사전동의 없이 본 콘텐츠(기사, 이미지)의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