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 트리밍 슈즈

누구는 강아지를 신은 것 같다, 또 누군가는 라푼젤의 머리칼 같다고 했지만, 수많은 패션 피플이 없어서 못 사는 바로 그 신발. 당신의 발을 포근하게 감싸줄 모피 트리밍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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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Gucci
(왼쪽, 중간) Mason Margiela, (오른쪽) Moschino

몇 달 전 구찌 F/W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지난 2월 밀라노에서 공개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데뷔 쇼 이후 패션계 모두가 이야기하던 바로 그 신발이었다. 티베트 염소털로 뒤덮인 거대한 슬리퍼, 캥거루털을 더한 로퍼 슬리퍼, 아프리카 염소털에 아스트라칸 기법을 적용한 샌들, 밍크 폼폼을 장식한 레이스업 펌프스 등등. 지난 몇 달간 패션 피플의 관심을 독차지한 이 슬리퍼에 직접 발을 넣어본 순간, 자칭 ‘슈어홀릭’인 나는 또 다른 포근함을 두 발에서 느낄 수 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내 발 위에 살포시 누워 잠든 듯했으니까. 아찔한 킬힐 위에서 중심을 잡은 채 발을 혹사시킨 지난날이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였다. 런웨이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과연 이것을 예쁘다고 해야 할지, 과하다고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신어보니 위시 리스트의 상위권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피였다! 모든 신발에 모피를 더한 구찌의 이번 컬렉션 중에서도 특히 주목 받는 건 안쪽에 캥거루털을 더한 로퍼 슬리퍼다(앞쪽은 분명 클래식한 홀스빗 로퍼지만 뒷부분은 뻥 뚫려 있다!). 미국 ‘보그닷컴’에서는 모든 에디터가 올가을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이 슬리퍼를 꼽을 정도. 마크 제이콥스, 케이티 그랜드, 브라이언 보이 등 진작에 ‘득템’한 패피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앞다퉈 ‘인증샷’을 올려 부러움을 샀다. ‘맨리펠러’의 린드라 메딘은 도저히 가을이 올 때까지 참을 수 없었는지, 7월 말 섭씨 32°C를 넘나드는 기후에도 이 슬리퍼를 신고 나와 파파라치들에게 찍혔다(짤막한 데님 팬츠에 꽤 잘 어울렸다). “이보다 편한 신발이 없어요! 그냥 보는 것보다 신었을 때 더 예쁜 데다 발도 편하니 자꾸 신고 싶죠. 오죽하면 피트니스센터에서도 신겠어요.”

BCBG Max Azria, Fendi, Thakoon, Blumarine, Antonio Marras, Derek Lam

BCBG Max Azria, Fendi, Thakoon, Blumarine, Antonio Marras, Derek Lam

그러고 보면 ‘입는 것’이었던 모피를 ‘신는 것’으로 활용한 디자이너가 구찌의 미켈레만은 아니다. 뉴욕 패션 위크의 첫 쇼인 BCBG 막스 아즈리아 런웨이에 등장한 모피 장식 앵클부츠는 예고편 같았다. 그 이후 런던, 밀라노, 파리 패션 위크에서 모피 트리밍 슈즈가 셀 수 없이 눈에 띄었다. 뮬의 발목에 양털을 더한 타쿤, 굽까지 모두 짧은 토끼털로 감싼 블루마린, 앵클 부츠 위에 모피가 눈처럼 쌓인 펜디, 얼핏 보면 과연 신발이 맞나 싶은 메종 마르지엘라(알록달록한 컬러가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자카드와 모피가 만나 한층 ‘고급진’ 발렌시아가, 발등에 풍성하고 길쭉한 모피 폼폼을 더한 디스퀘어드2와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등. 또 컬러풀한 인조 모피로 마니아들을 거느린 쉬림프는 뮬부터 부티까지 다양한 인조 모피 트리밍 슈즈를 선보였다(슈즈 디자이너 소피아 웹스터와의 합작품). 컬렉션 ‘쇼피스’가 아닌, 판매용 아이템 중에는 실용적인 디자인이 더 많다. 돌체앤가바나의 밍크 트리밍 플랫폼 샌들, 산뜻한 색감의 모피를 더한 메종 마르지엘라의 슬립온과 펜디의 스니커즈, 모스키노의 스노우 부츠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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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Balenciaga, Dolce&Gabbana, Fendi, Brunello Cucinelli, Disquared2, Dolce&Gabbana, Shrimps

 

그렇다면 패션계가 이토록 모피 트리밍 슈즈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패션 피플들은 익숙한 아이템이 신선하게 변신했을 때 엄청난 관심을 보입니다.” ‘야후 스타일’ 편집장 조 지(Joe Zee)는 설명했다. “2013년 봄 피비 파일로가 선보인 셀린의 ‘퍼켄스탁(Furkenstock)’이 대표적인 사례죠. 흔하디흔한 버켄스탁에 모피를 더해 전혀 새로운 아이템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번 시즌의 구찌 로퍼 슬리퍼도 마찬가지예요.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접해온 고전적 홀스빗 로퍼를 슬리퍼로 재해석한 뒤 모피를 더한 순간, 그 화려한 변신에 열광할 수밖에 없죠.” 게다가 한동안 지속된 미니멀리즘과 놈코어 시대가 저물고 있는 시점이라는 사실도 한몫 거들었다. 남들과 비슷하고 평범한 아이템 대신 더 재미있고 화려하며 소장 가치 있는 아이템을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달 ‘Return of Glamcore’ 기사를 참고하시길).

물론 모든 모피 아이템이 그렇듯 모피 트리밍 슈즈 역시 동물 보호 단체의 비난을 피하긴 힘들다. 흔히 볼 수 없던 캥거루털을 사용해 비판의 대상이 된 구찌는 호주의 야생 캥거루털을 이용한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환경친화적(Environmentally Friendly)’ 방식으로 얻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동물 보호 단체로선 캥거루를 ‘환경친화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캥거루 개체 수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신발을 만들기 위해 그 모피를 쓴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게다가 캥거루는 상당한 지능을 지닌 사회적 동물입니다. 이를 죽이는 건 비인간적 행동이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패션계와 동물 보호 단체가 서로 공존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인조 모피가 갈수록 인기를 끄는 건 긍정적인 현상). 이런 예민한 상황 가운데 2016 S/S 패션위크 기간에 모피 슈즈를 신은 패션 피플들은 카메라 표적 대상 1순위다.